물가 급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와 한국은행, 경제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이다. 국내외 경제학자 가운데는 경기 침체 속 물가 등귀를 뜻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예견하는 이들도 있다. 특히 정부는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대로 올라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금의 물가 상황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진짜 스태그플레이션이 약 60년전 이 땅에 있었다.

1962년 군정 때부터 밀어붙인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로 외환준비가 격감했다. 외환보유고는 1962년 초 2억 1300만 달러였는데, 자본재 도입이 일시에 늘면서 1964년 9월에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결국 외화 부족으로 원료와 자본재 수입이 막히자 광공업의 생산활동이 저조해졌다. 경기는 1963년 2월을 정점으로 급격히 위축되었다.

시중의 소비재는 품귀현상을 빚었다. 도매물가는 1962년 9.5%에서 1963년 21.1%, 1964년 35.4%로 수직 상승했다. 서울의 소비자 물가도 1962년 6.5%이던 것이 1963년 20.2%, 1964년 29.6%로 폭등했다. 가히 살인적인 물가였다.

박정희 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제2차 연도인 1963년, 경제정책 기조를 안정위주로 전환해야만 했다. 목표성장률도 낮췄다. 1964년도 재정안정계획을 통해 연간 통화량 증가를 7.2%, 즉 27억 원으로 억제하여 연말 통화량을 400억 원 선으로 유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통화긴축도 실패했다.

총체적 난국 속에서 나온 박정희 정부의 마지막 처방은 경제 정책의 리더십을 세우는 것이었다. 1964년 5월, 경제 부총리로 장기영이 발탁됐다. 신임 부총리는 취임 일성으로 “6개월만 기다리십시오'라고 대국민 약속을 하고는 내각에 “물가를 때려잡고, 저축을 늘리라”고 지시했다.

장기영은 경제장관회의를 강화하여 물가안정을 위한 ‘돌격 내각’으로 만들었다.

시멘트 품귀로 시멘트 값이 오르자 중소기업은행 본점 신축공사를 중단시켰다. 서울의 유명 커피숍 ‘본전다방’이 커피값을 20원에서 30원으로 50% 올리자 서울시를 통해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다양한 물가관련 조직이 만들어져 전방위적 물가 대응이 이뤄졌다. 물가대책위원회, 물가분석위원회, 수송대책위원회, 침수방지대책위원회 등이 이때 만들어 졌다. 침수방지대책위원회란, '대한민국 경제호(號)'가 침수되지 않도록 불법 외래품 거래와 암달러 거래 등을 철저히 단속하자는 취지로 출범했다.

규제는 과감하게 풀었다. 새벽 4시쯤 뚝섬으로 나간 한 관료가 통행금지에 걸려 한강 남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야채를 실은 리어카 수십 대가 일제히 동대문 시장으로 달리는 것을 보았다.

경제동향 보고회의에서 리어카상 이야기를 보고받은 장기영은 청와대로 달려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리어카 뿐만 아니라 전국 화물차의 통금 해제를 건의했다. 한발 더 나아가 충청북도-경주-제주도의 통금 전면 철폐까지 주장했다. 박 대통령이 즉각 수용했고, 이후 물류가 한결 원활해졌다.

결국 치솟던 물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전국 도매물가는 1965년 9.1%, 1966년 8.9%, 1967년 6.6%로 잡혔다. 서울의 소비자 물가도 같은 기간 13.8%, 12%, 10.9%로 수그러들었다.

세상이 바뀌었다. 1965년 경상GNP는 30억달러였으나 2021년 명목 ​GDP는 1조7978억달러다. 60년새 경제규모가 600배가 커졌다. 이제는 과거처럼 정책 효과가 곧바로 나타나기가 힘들다.

더구나 이번 물가 상황은 매우 복합적이다.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코로나 이후 수요 회복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확산되고 있다. 외부 요인이 큰 것이다. 장기간 고물가가 지속될 것이란 우려도 그래서 나온다.

한국은행은 부랴부랴 기준금리를 연 1.5%에서 1.75%로 인상했다. 정부도 민생안정대책을 마련중이라고 한다.

솔직히 말해 보자. 규모가 달랐다곤 하지만, 상황의 위태함은 과거가 현재보다 훨씬 컸다. 그러므로, 여전히 경제정책 리더십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게다가 지금처럼 가다가는 고물가에 고금리가 겹쳐 설령 물가를 잡더라도 하드랜딩으로 귀결되지나 않을 지 걱정이다.

최근 대기업들이 앞다퉈 대규모 국내 투자를 선언하고 있다. 투자 규모를 한데 모으면 한해 우리 예산에 맞먹을 정도라고 한다. 지난 5년간 56조원이나 해외 투자로 빠져 나가던 기업들의 자금이 국내 시설 투자와 고용 증대에 집중될 것이라는 기대는, 정부 당국으로서는 매우 고무적일 것이다. 국내 투자 증대는 경기 침체 가능성을 크게 줄여줄 것이다.

이제 정부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들을 적극 풀어야 한다. 의회도 동참해야 한다. 경제정책의 리더십이 할 일은 규제 축소 등 목표를 철저히 관리하여 물가 상승의 기세를 꺾어 소프트랜딩 시키는 것이다.

최근 한덕수 국무총리가 주재한 경제전략회의에서 기업 규제를 완화하여 ‘투자 주도 성장’을 이끌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걱정스런 경제 상황 속에서 그나마 다행스런 움직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