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중국 포위망을 강하게 조이고 있다.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는 가운데 한국의 정책적 방향성이 더욱 입체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자칫 실수하면 19세기 말 열강들의 놀이터로 전락해버린 대한제국의 역사가 반복될 수 있다.

손 흔드는 바이든 대통령. 출처=연합뉴스
손 흔드는 바이든 대통령. 출처=연합뉴스

한국에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일 2박 3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후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을 전격 방문했다. 21일에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경제계 인사와 만난 후 방한 마지막 날인 22일 정의선 현대차 회장을 별도로 만나 독대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방한은 '경제동맹의 강화'라는 포석을 쌓기 위함이다.

실제로 한 때 문재인 전 대통령과의 만남 가능성이 제기되었으나 결국 없던 일이 된 상태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 일정 중 일본이 아닌 한국을 택한 것도, 그가 이번 방한의 목적에서 전통적인 북한문제를 배제하는 한편 반도체와 같은 최첨단 산업에서 두각을 보이는 한국과의 스킨십을 원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발 더 들어가면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 큰 그림'이라는 해석도 있다. 

지금은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와 난타전을 벌이고 있으나 이 전쟁이 어떤 방식으로든 결론이 나면 다음 전쟁은 미중 패권전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최근 캐나다까지 화웨이 5G 장비 금지 결정을 내리며 미국 주도의 파이브 아이즈가 전열을 가다듬고 중국과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남태평양의 작은 나라인 솔로몬을 두고 이미 미중 양국이 신경전을 벌이는 상태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방한을 통해 반도체와 같은 첨단산업을 두고 한국 정부와 보폭을 함께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방한 첫 날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을 방문한 배경이다. 

윤석열 대통령 시대를 맞이한 한국 정부도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 의도에 보폭을 맞추는 모양새다.

지난 16일 국회 첫 시정연설을 통해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참가를 선언한 상태에서 22일 윤 대통령이 직접 IPEF 화상회의에 참석했다.

IPEF는 바이든 행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한 인도 태평양 지역 경제협력 구상이며 무역 및 공급망, 인프라·청정에너지·탈탄소를 비롯해 조세·반부패에 방점을 찍은 역내 국가들의 협의체다. 다만 사실상의 대중국 포위망이라는 점에는 전문가들의 이견이 없다. 작게는 역내 국가들의 경제협력, 크게는 인도 태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 블록화를 통해 중국을 봉쇄하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바이든 미 대통령과 정의선 현대차 회장. 출처=현대차
바이든 미 대통령과 정의선 현대차 회장. 출처=현대차

일본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이 경제적 측면에서 한일 경제동맹을 강화시키는 한편 그 연장선에서 대중국 포위망의 얼개를 짜는 것이라면, 그의 방일은 다소 정치적 외교적 해법에 무게중심이 쏠렸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방한 일정을 마치고 23일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만나 일본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에 진출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뜻을 표명했다. 

안보리는 사실상 무기한으로 고정된 상임이사국 5개국과 교체가 계속 이뤄지는 임기 2년의 비상임이사국 10개국 등 모두 15개국으로 구성된다.

상임이사국은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로 구성됐으며 이들은 안보리 의결 거부권을 발동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한다고 선언한 행간에는 역시 대중국 포위에 대한 합의가 깔렸다. 두 정상의 회담 의제 자체가 중국 견제로 방점이 찍힌 가운데 미국의 우방인 일본이 상임이사국에 진출할 경우 유엔 차원의 협의에서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목소리가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상임이사국 5개국은 모두 2차 세계대전 승전국이다. 여기에 같은 패망국인 일본이, 그것도 유럽연합의 리더인 독일보다 먼저 상임이사국에 이름을 올릴 경우 국제정치의 판 자체가 흔들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를 감내해서라도 미국이 대중국 포위망을 강하게 구축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3일 도쿄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3일 도쿄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공짜점심은 없다"
미국은 팬데믹 종료 후 글로벌 공급망이 교란되는 순간 반도체와 같은 첨단 전략자산을 자국에서 생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를 위해 유럽연합은 물론 일본, 대만과 강하게 밀착하는 중이다. 대만의 파운드리 업체 TSMC는 대규모 미국 투자에 나서고 있으며 일본의 소니는 TSMC와 구마모토현에 합작회사를 설립해 미국과도 연계하고 있다.

한국의 입장은 다소 어정쩡했다. 문재인 대통령 시절 4대그룹이 막대한 미국 투자를 선언하기는 했으나 큰 틀에서 미국과는 안보에서 협력하고 중국과는 경제에서 협력한다는 안미경중(安美經中) 노선을 고집했다.

미중 두 나라 사이에서 실익을 잡자는 취지지만 그 자체로 양자택일의 순간을 뒤로 미루는 위험한 선택이기도 했다.

미중 패권전쟁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하며 상황이 또 달라지고 있다. 이제는 양자택일의 순간을 더이상 미룰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여기서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과 방일을 통해 한국과는 경제동맹의 강화를, 일본과는 정치동맹의 강화를 노리는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윤석열 정부는 일단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으로 전달된 미국의 의중에 반응하고 있다. IPEF 가입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정의선 회장이 바이든 대통령과의 면담 후 미국에 추가 50억달러 투자를 선언한 것도 비슷한 행간이다. 정치적으로도 미국과의 보폭을 맞추는 분위기도 연출된다.

문제는 양자택일의 후폭풍이다. 당장 중국 왕이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광저우에서 열린 중국-파키스탄 외무장관 회담 직후 IPEF를 두고 "분열과 대항을 유발하는 모임에 반대한다"고 날을 세웠다. 미국의 대중국 경제 포위망에 격렬하게 반발하는 모양새다. 

한국 입장에서 미국과의 경제동맹은 곧 중국과의 충돌이며, 이는 지정학적 위기를 고려할 때 불필요한 소모전을 의미할 수 있다. 아직도 사드 사태 후 중국에서의 한국 콘텐츠 산업은 개점휴업이며 그 여파는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을 갉아먹는 중이다. 이런 상태가 더 심해진다면 갈수록 커지는 대중국 교역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은 러시아에 강력한 규제를 가했으나 미군은 단 한 명도 보내지 않았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약 한국이 미중 패권전쟁의 대리전장이 된다면 그 피해는 돌이킬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편 미국과의 밀착도 속도조절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미중 패권전쟁의 큰 흐름에서 미국의 손을 잡았다고 미국이 한국에 무조건적인 우방이 될 것이라는 착각은 접어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짜점심'은 없기 때문이다. 

시간을 돌려 19세기 말로 가보자. 신흥 제국주의 국가 일본은 아시아의 대국 청나라와 유럽의 강국 러시아와 차례로 전쟁을 치뤘다. 그러나 가장 피해를 본 나라는 조선이었다. 두 전쟁 모두 한반도가 주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시 대한제국은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영세 중립국 스위스 흉내를 내며 남의 전쟁에서 희생되는 민초들의 비극을 무기력하게 지켜보기만 했다. 일본군대에 징발된 조선인들이 총칼에 위협당하며 얼굴에 파란색, 붉은색 페인트칠을 당한 후 보급전선에서 죽어나갈 때도 대한제국은 한없이 무기력했다.

물론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지금 대한민국은 힘없는 약소국인 대한제국이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하는 선진국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이라는 슈퍼파워 앞에서는 아직도 운신의 폭이 좁은 것도 사실이다. 바로 지금 입체적이고 고도로 계산된 정책적 방향성이 필요한 이유다.

강대국의 대리전장으로 전락한 후 양쪽 모두에게 이용만 당하는 역사는 19세기 말 청일전쟁, 러일전쟁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