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 출처=두산에너빌리티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 출처=두산에너빌리티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가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여러 악재들로 부침을 겪었지만 올해 사명까지 변경하면서 에너지 사업 성장에 드라이브를 걸 계획이다. 특히 새정부가 ‘탈(脫)원전 백지화’를 내걸면서 박지원 회장이 공들인 소형모듈원전(SMR) 사업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쉬운 길은 아니었다. 팬데믹 기간 두산그룹 전체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지원 회장은 두산테크포럼 2019에 참석해 말한 것처럼 "중심을 지키면 생존할 수 있다"는 정신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한편 사업 다각화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그 결과 두산중공업은 올해 3월에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사명을 ‘두산에너빌리티’로 변경했다. 2001년 한국중공업에서 두산중공업으로 바뀐 지 21년만의 사명 변경으로, 올해를 재도약 원년으로 삼아 새롭게 출발하겠다는 포부다.

회사 이름에서 ‘중공업’을 뺀 것은 사업구조를 에너지 중심으로 탈바꿈하겠다는 의지다. 사명의 ‘에너빌리티’는 ‘에너지(Energy)’와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결합한 단어다. 결합을 가능하게(Enable) 한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현재 SMR·가스터빈·수소·해상풍력을 성장사업으로 적극 육성하고 3D 프린팅·디지털·폐자원 에너지화 등 신사업도 발굴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스피드 경영에 매진하고 있는 박지원 회장이 있다.

빠른 대처로 경영 위기 돌파

두산에너빌리티는 2020년 치명적인 경영 위기에 처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주력 사업이 원전 산업이 타격을 입고, 자회사인 두산건설마저 국내 건설업황 악화로 지속적인 적자를 기록하면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11년부터 2019년까지 누적 순손실 2조1,318억원을 냈다. 특히 2014년부터 2019년까지 6년 동안에는 단 한 해도 순이익을 내지 못했다. 이 기간 누적된 순손실은 2조6,877억원에 달한다.

두산건설도 2011년부터 2019년까지 누적 순손실이 2조8,338억원이었다. 해당 기간 두산에너빌리티가 유상증자와 보일러 열교환기 사업 현물출자 등 두산건설에 직간접적으로 지원한 자금은 2조원에 육박했다.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20년 5월 약 5,000억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상환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신주인수권부사채는 채권 금액만큼 발행회사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사채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신주인수권부사채 전환상환, 상환 만기 차입금과 외화공모채 상환 등 총 3조8,000억원에 이르는 부채를 한꺼번에 갚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결국 자력으로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산업은행 등 채권단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아 고비를 넘겼다.

박 회장이 전면에 나섰다.

그는 우선 경영 정상화를 위해 자산 매각에 돌입했다. 2020년 클럽모우CC를 1,850억원에 매각했고, 유상증자로 1조2,125억원의 채무상환자금을 확보했다. 2021년에는 자회사 두산건설 지분 절반 이상을 큐캐피탈파트너스 컨소시엄에 매각했다.

같은 해 그룹 핵심 캐시카우(현금창출원)였던 두산인프라코어 지분도 현대중공업그룹에 넘기고, 동대문 두산타워 등을 처분하면서 총 3조원을 상환했다. 그 결과 두산에너빌리티는 1년11개월 만에 채권단 관리에서 벗어나며 ‘조기졸업’했다.

미국 뉴스케일 소형모듈원자로(SMR) 플랜트 가상 조감도. 출처=두산에너빌리티
미국 뉴스케일 소형모듈원자로(SMR) 플랜트 가상 조감도. 출처=두산에너빌리티

SMR 선점한다

경영 정상화에 성공한 박 회장은 올해 에너지 사업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특히 새정부가 내건 탈원전 백지화 정책에 따라 박 회장이 추진해온 SMR 사업이 성장가도를 달릴 수 있을 것이란 평가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수소 병합 원전 개발과 수출 상품화, 수냉각 SMR 실증, 상용화 촉진을 통한 세계 SMR 시장 선점, 수소 생산과 재생에너지 연동이 용이한 혁신 SMR 개발, SMR 개발사업 수출지원 및 규제 선진화 국제협력 방안 모색 등을 주요 정책 과제로 내세웠다.

글로벌 원자력발전 시장은 안정성과 친환경적 측면에서 SMR을 중심으로 재편될 전망이다. 글로벌 SMR 시장은 오는 2035년 연 평균 75기가와트(GW), 6조9,000억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19년 4월 미국 뉴스케일과 소형원전 사업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IBK투자증권 등 국내 투자사들과 공동으로 지분투자를 진행하고 2021년 7월 추가 투자를 단행했다. 2021년 9월에는 미국 에너지부 지원으로 SMR을 개발하고 있는 미국 엑스에너지(X-energy)와 설계용역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달 25일에는 뉴스케일파워와 SMR 본격 제작 착수를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으로 2029년 준공을 목표로 뉴스케일파워가 미국 아이다호주에 추진 중인 UAMPS 프로젝트에 공급할 SMR 본제품 제작에 착수한다. 올해 하반기 SMR 제작에 사용되는 대형 주단 소재 제작을 시작하고, 2023년 하반기 중 본격적으로 SMR 본제품 제작에 돌입할 예정이다.

국내 대기업들도 협력에 나서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GS에너지·삼성물산은 지난달 26일 뉴스케일파워와 SMR 발전소 사업을 공동 추진하기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협약 이후 뉴스케일의 SMR 기술과 GS그룹의 발전소 운영능력, 두산에너빌리티의 원자력발전 기자재 공급능력, 삼성물산의 발전소 시공역량 간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은 “뉴스케일파워와 전략적 협력관계를 지속 강화하고 SMR 제작을 위한 준비도 빈틈없이 진행해 왔다”며 “앞으로 SMR 제작 물량이 본격 확대되면 협력사들의 참여 기회도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