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차가운 겨울바람이 물러가고 가로등 아래 핀 봄날의 꽃잎이 새롭게 피어오른 시간. 동네 편의점 앞에 주민들이 아이들 손을 잡고 삼삼오오 모여듭니다. 누군가는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같은 들 뜬 표정으로, 누군가는 초조한 얼굴로.

딸랑. 문이 열립니다. 하늘을 나는 루돌프에서 내려와 굴뚝을 통해 찾아온 편의점 주인 아저씨는 몰려든 주민들에게 숫자가 적힌 나무 젓가락을 하나씩 쥐어줍니다.

운명의 제비뽑기. 흥분된(?) 표정으로 나무 젓가락을 뽑은 누군가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고, 누군가는 기쁜 얼굴로 품속으로 달려오는 아이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환호성을 지릅니다.

때 마침 루돌프가 옵니다. 저 멀리 골목을 비추는 편의점 배송차의 환한 불빛이 어른거리나 싶더니 제비뽑기에 당첨된 주민들의 손에는 포켓몬빵이 하나씩 들려집니다.

숫자는 모두 5개. 아이는 뛸 듯이 기뻐하고 부모들은 뿌듯합니다. 오늘 따라 코 끝을 스치는 봄바람이 여유롭습니다. 내일은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네요.

포켓몬빵 입찰을 위해 늦은 시간 편의점 앞에 모여든 사람들. 출처=독자제공
포켓몬빵 입찰을 위해 늦은 시간 편의점 앞에 모여든 사람들. 출처=독자제공

돌고, 돈다
포켓몬빵의 인기가 단순한 일회성 유행을 넘어 트렌드가 되고 있습니다. SPC삼립의 포켓몬빵이 재출시 43일 만에 누적 판매량 1000만 봉을 돌파했으며, 안에 들어있는 띠뿌띠뿌씰을 구하기 위한 쟁탈전도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SNS에서는 포멧몬빵 성지가 공유되고 중고거래 플랫폼에서는 높은 가격을 감수하면서도 포켓몬빵과 띠뿌띠뿌씰을 구하려는 이들이 북새통을 이룹니다.

오프라인에서도 포켓몬빵을 구하기 위해 긴 줄을 감수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으며 동네 편의점에 포켓몬빵이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운명의 제비뽑기에 나서는 주민들의 발걸음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야심한 시간 동네 편의점은 노량진 경매시장의 열기가 펄펄 끓어올랐고, 아이들은 오랜만에 잠에 들 시간임에도 즐거운 추억을 쌓았습니다.

전문가들은 포켓몬빵 열기를 대중문화적 관점에서 이해합니다. 특히 아이들은 물론 MZ세대, 중장년층 모두 열광하는 현상을 두고는 '동일한 사회적 트렌드에 동참하고 싶어하는 일관된 문화현상'이라고 말합니다.

한 발 더 나아가면 유행의 영원한 연속, 그리고 좋았던 옛날에 대한 향수라는 키워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0년전 유행하던 떡볶이 코트와 어그부츠는 지금도 인스타그램을 수 놓고 있으며 가수 이효리는 여전히 문화의 아이콘이고, 포켓몬의 지우는 지금도 최고의 트레이너가 되기위해 모험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퇴보일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석양이 지는 놀이터에서 엄마가 밥 먹으라 부르기 직전까지 열심히 정글짐을 타는 아이들일뿐입니다. 그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갈 뿐, 내일이 되면 새로운 놀이터를 갈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여전히 만나고 싶다"
어느 주말 동네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들이 띠뿌띠뿌씰을 꺼내와 왁자지껄 노는 것을 봤습니다. 무언가 열심히 설명하는 아이,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하는 아이, 고개를 흔들며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는 아이까지.

아이들에게 포켄몬카드나 유희왕카드도 마찬가지겠지만 띠뿌띠뿌씰은 자랑의 아이콘이자 현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열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매개체였습니다.

눈을 돌려 주변을 더 둘러봤습니다. 엄마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띠뿌띠뿌씰 득템썰'은 이제 길 건너 생긴 학원정보 공유만큼이나 고급정보가 됐고 아빠들은 언제든 포켓몬빵이 나타난다면 원시시대 사냥본능을 되살릴 만반의 준비가 되었습니다. 아직 띠뿌띠뿌씰을 잘 모르는 어린 동생들도 초롱초롱 뜬 눈으로 유일하게 아는 "이브이"를 뻐끔거립니다.

이를 문화적 키워드로만 이해하는 것이 과연 옳은 해석일까? 맞는 말이지만 2% 부족합니다. 

사실 포켓몬빵과 뿌띠뿌띠씰 열풍은 오프라인 만남의 관점에서도 해석되어야 합니다. 누군가와 소통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통의 주제이자 여전히 만나고 싶어하는 우리의 DNA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팬데믹이 종료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바로 지금, 우리는 억눌렸던 만남의 감정을 극대화시키면서 그 매개체를 간절히 찾고있는 겁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만나고 싶습니다. 포켓몬빵을 구하기 위해 야심한 시간 편의점 앞에 몰려온 순간, 그 곳에서 오랜만에 만난 이웃과 "포켓몬빵이 뭔지"라 너스레를 떨며 전화나 메시지로는 묻기 어려운 안부를 묻는 순간에 힌트가 있습니다. 온라인은 정제되고 핵심적인 메시지 전달에 강력하지만 오프라인은 그 주변부를 모두 아우르는 감정의 스펙트럼을 자랑합니다. 

유튜브 시대가 열리며 장안의 화제가 되어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핵심 콘텐츠가 부재한 지금, 우리는 만나서 소소한 이야기를 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찾고있었던 겁니다. 그것이 꽤 과거의 일이어도 상관없습니다. 만나는 것이, 소통하는 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김용현 당근마켓 대표. 사진=박재성 기자
김용현 당근마켓 대표. 사진=박재성 기자

36.5도의 경제학
지난해 너도 나도 메타버스 전략이 부상할 당시 김재현 당근마켓 대표와 만난 적 있습니다. 다양한 수익사업 전개를 다짐하면서도 당근마켓을 단순한 중고거래 플랫폼으로 키울 생각이 없다는 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습니다. 

오프라인 커뮤니티. 대면으로 만나 중고거래를 중개하는 것을 시작으로 전체 오프라인 공간을 묶어 새로운 기회를 찾겠다는 각오였습니다. 세상은 초고속으로 변하지만 천천히 동네를 보이면 기회가 보인다는 말.

김 대표는 "더 많은 동네를 연결해 동네의 가치를 연결하겠다"면서 "이를 통해 가치가 재생산될 수 있도록 하겠다. 그것이 당근마켓이 보고있는 세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온라인에서 절대 채울 수 없는 삶의 공허함을 채우겠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실제로 김 대표는 "최근 유행하고 있는 메타버스는 가상 세계에서의 만남을 주도하고, 지역간 경계를 허무는 최첨단 디지털 기술의 집약체지만, 모든 것이 디지털화된 세상의 이면에는 오히려 큰 상실감과 허무함이 남기도 한다"면서 "SNS로 전세계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시대지만, 현실에서의 삶은 오히려 공허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당근마켓은 모바일 기술로 이런 사람들의 상실감, 공허함을 채워주는 서비스가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온라인에서 충족할 수 없는 우리의 체온, 그리고 상실감과 오프라인의 기회.

현재 당근마켓은 그 꿈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비록 '오프라인 빌런 총량제 법칙'에 간혹 논란이 터지고 있지만 내가 사는 우리 동네를 묶어 오프라인 커뮤니티를 완성하겠다는 전략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온라인에서 시작된 혁신이 오프라인으로 번지면서 O2O 전략이 탄력을 받은 후, 이제는 온라인의 정체성이 온전히 오프라인을 투영하는 시대가 된 장면과도 오버랩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 만남의 계기, 즉 36.5도의 온기를 강하게 원하고 있습니다.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던 온택트 트렌드 시대도 좋지만 이제 우리의 시선은 오프라인 안에서 벌어지는 '부대낌'을 더 깊이 파고들고 있다는 뜻입니다. 

바로 여기서 새로운 혁신이 벌어지지 않을까요? 매개체가 필요할 뿐 우리는, 여전히 만나고 싶어하니까요.   

*IT여담은 취재 도중 알게되는 소소한 내용을 편안하게 공유하는 곳입니다. 당장의 기사성보다 주변부, 나름의 의미가 있는 지점에서 독자와 함께 고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