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한국앤컴퍼니그룹의 조현범 회장, 조양래 명예회장, 조현식 고문. 출처= 한국앤컴퍼니그룹
(왼쪽부터) 한국앤컴퍼니그룹의 조현범 회장, 조양래 명예회장, 조현식 고문. 출처= 한국앤컴퍼니그룹

조양래 한국앤컴퍼니그룹(이하 한국타이어그룹) 명예회장에 대한 한정후견 개시 심판 청구가 진행된지 20개월만에 증거부족을 사유로 기각됐다. 이를 청구한 조양래 명예회장 장녀인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할 예정이다.

4일 법조계와 조희경 이사장 측에 따르면 서울가정법원 가사50 이광우 부장판사는 사흘 전 조양래 명예회장에 대한 한정후견 개시 심판을 기각했다.

한정후견은 질병, 장애, 노령 등의 이유로 사무 처리 능력이 부족한 성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당사자에게 한정후견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법원은 후견인을 선임해 재산을 관리하고 일상생활을 돕도록 할 수 있다

조희경 이사장은 지난 2020년 7월말 조양래 명예회장을 대상으로 법원에 이번 심판을 청구했다. 앞서 같은 해 6월말 조양래 명예회장이 돌연 차남인 조현범 한국타이어그룹 회장(당시 사장)에게 지분 전량을 장외 매각하기로 결정한 점에 의문을 표했기 때문이다. 조희경 이사장은 그간 경력 말년에 자선사업가로 활동할 것을 약속했던 조양래 명예회장이, 본인을 비롯한 자식들과 별다른 논의없이 조현범 회장에게 지분을 몰아준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조양래 명예회장에 대한 한정후견 개시가 필요할 것이란 점에 대한 증거가 부족함을 기각 사유로 들었다. 지난해 12월 조양래 명예회장을 소환해 심문한 뒤 이 같은 결론을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재판부는 “사건본인(조양래 명예회장)을 심문한 결과 사건 본인의 각 진료 기록, 가사조사관의 조사보고서 등이 이 사건기록과 심문 결과에 의해 의사 감정없이 심판했다”고 판단했다.

조양래 명예회장의 한정후견 개시 여부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은 청구가 이뤄지기 전인 지난 2020년 7월말 이전 진료기록을 바탕으로만 이뤄졌다. 그간 법원이 당초 조희경 이사장의 요청을 받아들여 조양래 명예회장에 대한 정신감정을 진행할 병원 4곳을 찾아 의뢰했다. 다만 각 병원은 기존 진료기록이 부족한데다 코로나19 확산세로 병상이 모자라다는 등 이유를 들어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조희경 이사장은 재판부의 이번 결정이 절차상 문제를 보일 뿐 아니라 공평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해 항소할 계획이다. 조양래 명예회장의 자녀 4명 중 조현범 회장을 제외한 3명이 입원 정밀감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지만 반영되지 않았고, 객관적 기관의 의료감정 절차가 이뤄지지 않은 점 등을 지적했다.

조희경 이사장은 “후견 사건에서 의료감정이 가장 중요하다는 재판부의 올바른 판단과 의지가 있었다면 얼마든지 더 적극적으로 기타 병원에서의 감정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며 “재판부는 법에 의한 판단 아닌 한쪽 편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독단과 비상식에 의해 판결했다”고 주장했다.

조희경 이사장은 “성년후견 심판은 법리적 판단에 앞서 의학적 판단이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며 “의료감정 없이 후견신청을 기각한 이번 판결은 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로 이러한 독단적인 판결에 대해 재판부는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희경 이사장은 이어 “사비로 사회적 약자를 보살펴온 대기업 총수이자 화목한 가정을 이루려 노력해온 아버지로서 회장의 유지를 받들 것”이라며 “객관적 입장의 제3자가 회장의 정신건강을 확인해 도움을 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없기 때문에 즉각 항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