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삼십여 년 넘게 교류해온 어르신이 얼마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내가 어찌할 바를 몰라 고민할 때 찾아가면 항상 희망의 말씀을 해주던 참 스승님이었는데, 이분이 떠났다고 하니 마음이 텅 빈 느낌이 들고, 많이 울적해졌습니다.

그러며 돌아가시기 십여 일 전에 찾아뵈었을 때가 생각났습니다. 종이장처럼 마르신 선생님은 의료용 침대를 벗어나 간이 소파로 옮겨져 나를 맞으셨습니다.

그간 고마웠다는 말씀에 낮은 목소리로 오히려 고마웠다며, 주위에 책을 가져오라는 겁니다.그러고는 어렵고, 힘들게 한 글자 한 글자를 적어나가시는 겁니다.

‘자신과 함께 즐겁게 일한 동반자 오각진에게’라고 쓰고는, 자신의 이름도 남겼습니다. ‘이어령 근정 2022.2.15.' 힘들게 쓴 글자는 그분의 글씨답지 않게 많이 흔들렸습니다.

글자 하나 하나가 무언가를 내게 떼어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책은 최근 출간된 메멘토 모리, 즉 ‘죽음을 기억하라’는 책이었으니 너무 상징적이었지요. 그러고 11일 만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너무 황망한 마음에 하루를 보내고 문상을 갔습니다. 조문을 한 후에 방명록에 편지를 남기기 위해 펜을 들었습니다. '지난 2월15일 찾아뵈었을 때, 저에게 자신과 즐겁게 일한 동반자라고 힘들게 책에 적어주셨는데, 그게 마지막 만남이 되었습니다.

박사님!

따듯한 눈길 잘 간직하겠습니다. 바쁨 없을 천국에서는 비로소 안식 누리시길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요'

잠시 글을 쓰는 동안 마음이 격해져 마지막 부분을 어찌 썼는지 모를 정도로 글씨들이 흔들렸습니다. 보내드리고 며칠이 지났습니다.

마음이 여전히 혼란스럽습니다. 그 와중에 묘한 가르침 하나가 떠오릅니다. 이제껏 삼십여 년 넘게 만나고 교류해오면서도 항상 바쁜 박사님으로 해서 만날 일시를 항상 몇 개 제안해서 만나곤 했는데, 지난 15일의 만남은 제가 마지막 인사라도 드리러 가겠다고 얘기 드리고 찾아뵈었던 겁니다.

마지막 만남이 이렇게 내 주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앞으로의 관계를 말해줌이 아닐까요?남은 자가, 또 더 사랑을 받은 자가 떠난 분을 기억하는 방식은 이렇게 남은 자가 선한 부담감과 온전한 마음으로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것이라는 것을 마지막에도 일깨워준 것 같습니다.

감사하고, 또 고마웠습니다. 잘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