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동훈 기자] 프랑스 완성차 업체인 시트로엥(Citroen)이 한국에 진출한 이후 올해 세 번째로 영업공백을 선택했다. 앞서 10년 안팎의 주기를 두고 사업을 중단·재개하길 반복한 상황에서 또 한 번의 숨 고르기에 돌입한 셈이다.

철수는 아니다. 실제로 시트로엥 브랜드를 현재 한국에서 운영하고 있는 스텔란티스 코리아는 “시트로엥을 한국에서 철수시키는 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퀀텀점프를 위한 전열 추스리기라는 설명이다.

시트로엥의 한국 판매실적과 시장 점유율 추이. 출처= 스텔란티스 코리아
시트로엥의 한국 판매실적과 시장 점유율 추이. 출처= 스텔란티스 코리아

스텔란티스, 시트로엥 휴업 “전략적 의미있는 브랜드에 집중”

7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시트로엥의 연간 판매실적은 2012년 255대에서 2017년 1,174대로 최고기록을 세운 뒤 줄곧 하락해 지난해 603대에 그쳤다.

같은 기간 점유율도 2012년 0.01%에서 2017년 0.5%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0.22%에 머물렀다. 한국에서 날개를 펼치지 못한 시트로엥은 2002년 삼환까뮈(까뮤이앤씨 전신), 2012년 한불모터스 등에 이어 세 번째 ‘선장’을 만나는 등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시트로엥이 한국에서 기를 펴지 못한 건 브랜드의 장점이 한국 소비자에게는 역효과를 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트로엥은 그간 유럽에서 확보한 경쟁력인 대중성을 한국에도 무기로 활용하려 했다. 현지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소형차 라인업을 들여와 수입차 시장 안에서 비교적 낮은 가격대에 판매하는 전략으로 수요를 창출해왔다.

하지만 독일, 일본 등 두 국적별 브랜드 특유의 디자인 정체성이나 가성비에 익숙했던 당시 수입차 소비자들에게 시트로엥의 브랜드 위상은 애매하게 받아들여진 것으로 분석된다. 송승철 한불모터스 대표이사는 지난 10여년간 공식석상이나 언론 인터뷰를 통해 시트로엥의 유럽 내 입지를 마케팅 포인트로 강조해왔지만 한국에서 부진한 사유를 확실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제이크 아우만 스텔란티스 코리아 사장이 7일 온라인 기자 간담회를 열고 올해 사업계획을 발표하는 모습. 출처= 스텔란티스 코리아
제이크 아우만 스텔란티스 코리아 사장이 7일 온라인 기자 간담회를 열고 올해 사업계획을 발표하는 모습. 출처= 스텔란티스 코리아

스텔란티스(STELLANTIS)가 시트로엥 영업활동을 과감히 중단한 배경이다.

스텔란티스는 지난해 초 시트로엥, 푸조 등 브랜드를 운영하던 기업집단 PSA그룹과 지프와 크라이슬러 등 브랜드를 거느리는 FCA그룹이 합병함에 따라 설립된 기업이다.

스텔란티스의 한국지사인 스텔란티스 코리아는 이날 온라인 경로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올해 시트로엥 외 지프, 푸조, DS오토모빌 등 세 브랜드만 운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이크 아우만 스텔란티스 코리아 사장은 “스텔란티스 코리아가 출범한 뒤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브랜드를 모두 평가했다”며 “이에 따라 전략적으로 의미가 있고, 한국에서 역사가 긴 브랜드에 주력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스텔란티스는 시트로엥의 한국 사업을 재정비하는 것일 뿐 철수하는 것은 아니라고 못 박았다. 스텔란티스 관계자는 “시트로엥을 리빌딩(re-building)하려고 하지만 이를 매듭짓는 시점은 현재 알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날 서울 시내 시트로엥 전시장에 문의한 결과 “스텔란티스 코리아가 올해엔 시트로엥 차량을 더 이상 수입하지 않는다”며 “정확히 언제일지 알 수 없지만 현재로선 기존 시트로엥 전시장의 간판을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스텔란티스가 유럽에서 판매하고 있는 시트로엥 2인승 4륜구동 순수전기차 모델인 에이미(Ami). 출처= 스텔란티스
스텔란티스가 유럽에서 판매하고 있는 시트로엥 2인승 4륜구동 순수전기차 모델인 에이미(Ami). 출처= 스텔란티스

시트로엥 ‘친환경 소형차’ 적극 판매

스텔란티스가 추후 한국에서 시트로엥을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해선 알려진 내용이 없다. 다만 해당 정보를 종합할 때 시트로엥이 앞으로 친환경 소형차만으로 판매 라인업을 구축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 이날 스텔란티스 코리아는 ‘이-모빌리티 리더(e-mobility leader)’로 거듭나려는 본사의 경영 기조를 강조했다.

스텔란티스는 오는 2020년대 말까지 순수전기차 판매비중을 지역별로 유럽 100%, 미국 50% 등 수준으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이를 위해 순수전기차를 75종 이상 출시하고 2030년엔 연간 500만대 판매하는 목표를 제시했다.

아우만 사장은 “스텔란티스의 궁극적 목표는 모빌리티 테크 기업이 되는 것”이라며 “이-모빌리티 시장의 리더로서 혁신을 촉진하고 기업과 사람, 지역사회, 지구 등의 밝은 미래를 보장하는데 방향성을 뒀다“고 설명했다.

시트로엥이 지프나 푸조 등 그룹 내 주력 브랜드에 비해 전동화 전략에선 주목받고 있지 않지만, 상품성을 차별화한 소형 모델을 시장에 적극 홍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중 준중형(C-세그먼트) 전기 해치백 ‘e-C4’는 유럽의 동종 시장에서 점유율 9%를 차지하는 등 이름을 날리고 있다.

이와 함께 공들이고 있는 모델 에이미(Ami)는 2인승 4륜구동 차량으로 지난 2020년 중반 출시 이후 유럽에서 1만4,000여명의 고객을 확보했다. 디자인이나 차량 설계 등 측면에서 독창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온 시트로엥의 ‘새로운 도전’이 전동화 전략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시트로엥은 중국, 인도 등지를 현재 주요 공략 시장으로 삼고 전동화 라인업을 적극 펼쳐나갈 계획이다. 해당 시장 모두 소형차나 전동화 차량의 시장이 크게 형성돼 있는 공통점을 갖췄다. 한국에서도 완성차에 대한 소비자 니즈가 더욱 다변화할 경우 시트로엥의 성장세를 기대해볼 여지가 남아있다.

마지막으로 시트로엥은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주요 도시에서는 가장 오염이 심한 차량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 있다”며 “이를 고려할 때 (완성차 업체들은) 보다 깨끗하고 안전하며 저렴한 차량을 찾는 사용자의 요구에 맞는 모빌리티 솔루션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