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 스토리텔링> 매튜 룬 지음, 박여진 옮김, 현대지성 펴냄.

저자는 픽사 최고의 스토리텔러였다. 〈토이 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라따뚜이〉 〈몬스터주식회사〉 〈몬스터대학교〉 〈업〉 〈카〉 등 걸작이 그의 손을 거쳤다.

현재 컨설턴트 겸 강연자로 활동하는 그는 20년간의 스토리 제작 경험을 통해 스토리가 메시지나 데이터에 ‘힘’을 부여한다고 말한다.

스토리 없이 통계자료나 정보를 보았을 경우 10분 지나면 머릿속에는 정보의 5%밖에 남지 않는다. 반면 인지 심리학자 제롬 브루너에 의하면, 스토리를 통해 정보를 접할 때 사람은 해당 정보에 대한 기억을 22배나 더 잘하게 된다고 한다.

저자는 매력적인 스토리는 고객의 시선을 사로잡고, 공감을 사고, 가슴을 뛰게 하고, 궁극적으로 삶을 변화시키는 마법 같은 힘을 지니고 있다면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토리 법칙을 정리했다.

책에는 후크, 변화, 교감, 진심, 구조, 영웅, 조연, 혁신, 영감 등 9가지 키워드로 소개돼 있다.

◇ 스티브 잡스의 후크 “호주머니에 수천 곡 담아 다닐 수 있다면?”

2007년 스티브 잡스가 선보인 전설적인 아이폰 PT 출처:애플 유튜브 캡쳐
2007년 스티브 잡스가 선보인 전설적인 아이폰 PT 출처:애플 유튜브 캡쳐

사람의 집중력이 지속되는 시간은 평균적으로 8초라고 한다. 투자자 앞에서 사업을 설명할 때, 회사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대중에게 광고를 할 때 8초 안에 관심을 끌지 못하면 이미 끝난 게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8초 안에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아주 좋은 낚시 기술이 필요하다. 후크(hook) 기술이다.

후크로 승부수를 던지려면 “만약에”로 시작하는 시나리오가 도움이 된다. “만약에 프랑스 요리전문가 되는 것이 꿈인 생쥐가 있다면 어떨까?”라는 후크가 <라따뚜이>에 사용되었다.

“만약에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지 않아 공룡이 멸종하지 않았다면?” 이라는 질문에서 <굿 다이노>가 시작되었다.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소행성은 영화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훌륭한 후크가 되었다.

토이스토리 출처:네이버 영화
토이스토리 출처:네이버 영화

“만약에 어떤 아이에게 가장 아끼던 장난감 대신 새 장난감이 생긴다면?” 이는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스토리>에서 첨예한 갈등을 일으킬 후크였다.

스티브 잡스는 2001년 아이팟을 소개하면서 이런 후크를 던졌다. “만약에 여러분의 주머니에 수천 곡의 노래를 담아서 다닐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당시는 10여 곡 담긴 워크맨을 들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잡스는 8초 안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일론 머스크도 테슬라를 소개하며 이런 후크를 사용해 관심을 집중시키는데 성공했다. “만약에 한 기업에서 미적(美的)으로 대단히 매력적인 전기 자동차를 만든다면 어떻겠습니까?”

◇ 영화 <몬스터주식회사> 로그라인 분석

픽사의 애니메이션 '몬스터주식회사' 출처:네이버 영화
픽사의 애니메이션 '몬스터주식회사' 출처:네이버 영화

물론 후크는 스토리가 아니다. 스토리에 구미가 당기도록 만드는 일종의 맛보기 장치다. 후크를 스토리로 전환하려면 로그라인(logline)부터 만들어야 한다.

로그라인은 30초~3분 사이에 콘셉트, 방향 등을 간결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엘리베이터 피치(elevator pitch)라고도 한다. 그 안에는 네 가지 요소가 포함되어야 한다. 영웅, 목표, 장애물, 변화이다.

애니메이션 영화 <몬스터 주식회사>의 로그라인은 이런 내용이다.

‘몬스터 세계에서 최고의 ‘겁주기 몬스터’는 설리이다. 설리는 우연히 인간 아이와 친구가 되면서 아이들이 몬스터에게 해로운 존재가 아니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때부터 온갖 위험이 닥친다. 직업을 잃게 되고 감옥에 가기도 하고 친구와 멀어지게 된다. 하지만 설리는 더 이상 아이들을 겁주는 행위를 하지 말자, 그것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폭로하고 만다.’

여기서 영웅은 설리이다. 목표는 아이들을 겁주는 행위가 잘못되었음을 폭로하는 것이고, 장애물은 해고당하고 친구와 헤어지게 되는 것 등이다. 변화는 순진했던 설리가 의식이 깨어 있는 몬스터로 바뀌는 것이다.

◇ “우리는 고작 2위”…대박난 에이비스 스토리텔링

에이비스가 스스로 업계 2위라고 털어놓았던신문광고 ​​​​​​​​​​​​​​출처:AVIS 신문광고 캡쳐 이미지
에이비스가 스스로 업계 2위라고 털어놓았던신문광고 출처:AVIS 신문광고 캡쳐 이미지

청중과 단단한 유대감을 쌓을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우선, 너무 똑똑한 척 하지 말아야 한다. 나약한 모습 그대로 솔직하게 전달해야 한다.

‘나약함’이야말로 스토리텔링의 핵심이다. 나약함은 사람들에게 강력한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 그 스토리가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인간적이고 진정성 있고 믿을 수 있는 스토리라고 생각한다.

1960년대, 자동차 렌탈업체 에이비스(Avis)는 압도적 1위 업체 허츠(Hertz)에 밀려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그러던 에이비스가 어느날 혁신적인 광고를 만들었다.

“고작 2등이라면 더 열심히 노력하라. 그렇지 않으면.” 이런 자학적인 문구 아래 느긋한 표정의 큰 물고기와 그 앞에서 겁에 질린 작은 물고기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 광고는 에이비스가 “우리는 약자(弱者)”라고 시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당시엔 기업이 스스로 약하다고 자인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광고를 본 소비자 반응이 예상 밖이었다. 소비자들은 에이비스가 1등은 아니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품질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기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후 소비자들은 약자인 에이비스를 응원했다. 광고가 나가고 1년 후 에이비스는 미국 내 1위 렌탈 업체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부족한 모습을 인정하는 것과 자기 비하는 다르다. 강연장에서 자신의 결핍과 나쁜 기억력, 왜소한 체구, 개인적 실패담을 털어놓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은 그냥 자신을 비하하는 것이다. 관객은 당신의 편에 서고 싶어 한다. 그렇더라도 희생자처럼 굴거나 자기 비하를 일삼는 사람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실패담을 솔직하게 털어놓곤 했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어지는 그의 스토리는 실패에서 배운 교훈을 통해 이뤄낸 성공담이었다.

◇ 전설적 ‘아이폰 PT’에 사용된 스토리 구조

호메로스부터 윌리엄 셰익스피어, 스티븐 스필버그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스토리텔러는 스토리의 구조에 공을 들였다. 스토리텔러라면 누구나 그렇게 해야 한다.

저자에 의하면, 국가와 문화, 나이와 성별, 사회적 지위와 계층을 막론하고 모든 스토리는 시작-중간-끝으로 이루어진다. 세상 모든 것은 시작-중간-끝이라는 구조를 이루기 때문이다. 태양도 아침에 떠서 낮에 빛을 비추다가 밤에 저문다. 인간은 태어나서 삶을 살다가 죽는다. 꽃은 싹을 틔우고 활짝 피었다가 시든다.

이 같은 시작-중간-끝의 순환 구조가 우리의 삶 모든 곳에서 일어나 스토리를 만든다. 한 마디로, 스토리 3단 구조는 본능에서 비롯된 인간 존재의 본질이다.

인간의 모든 경험이 그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따라서 90분짜리 영화든, 1막, 2막, 3막으로 구성된 연극이든, 30분 분량의 홍보 연설이든 시작-중간-끝이 명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객은 지루해하거나 혼란스러워하거나 실망한다.

스토리텔링의 천재 스티브 잡스가 2007년 아이폰을 세상에 처음 소개할 때도 시작(도입)-중간(전개)-끝(결말) 구조를 써먹었다.

▲도입=잡스는 스토리의 영웅이다. 그는 세상의 평범하고 형편없는 스마트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 제품을 만든 이야기를 들여준다. 그는 시중의 모든 스마트폰은 전혀 스마트하지 않다고 혹평했다.

▲전개=잡스는 자신의 스마트폰이 가정집의 컴퓨터보다 얼마나 스마트한지 보여줬고, 아이폰을 만들며 겪었던 온갖 어려움과 진통을 털어놓으면서 결국 자신의 팀이 이 문제들을 해결해낸 스토리를 들려준다. 무겁던 스타일러스 펜을 멀티터치 스크린으로 대체하고, 설치가 번거로웠던 프로그램들을 앱(Apps)으로 바꾼 과정을 이야기한다.

▲결말=연설 말미에 스티브 잡스는 새 아이폰이 세상의 평범한 스마트폰들을 어떻게 바꿀 것인 것 이야기한다. 관객은 흥분과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든다.

◇ “고객도 스토리 속 ‘영웅’ 될 수 있다”

훌륭한 영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저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영웅을 “자신보다 더 큰 존재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주인공이 충성도 높은 고객이든, 당신의 회사를 지지하는 사람이든, 기업의 CEO든, 영화 속 인물이든 영웅과 관객 사이에는 반드시 정서적 교감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관객은 주인공을 좋아하고 주인공의 대의명분을 신뢰해야 한다. 평범한 사람이든 CEO든 허구적 인물이든 관객이 매혹될 때 그 캐릭터는 영웅이 된다.

이 과정이 잘 이루어지면 영웅은 판매를 촉진하고, 브랜드를 강화하고, 고객과 긴밀한 유대감을 쌓게 된다. 이런 일은 어디서나 벌어진다.

영웅과 공감하는 사람들은 그 영웅이 운전하는 자동차를 운전하고 싶고, 영웅이 입는 옷을 입고 싶고, 영웅이 먹는 음식을 먹고 싶다.

영웅이 반드시 사람일 필요는 없다. 동물이나 사물, 만화 캐릭터도 영웅이 될 수 있다. 아이들이 만화영화를 보고 난 다음 그 만화 속 캐릭터에 푹 빠져 장난감이나 시리얼 심지어 샴푸까지도 사고 싶어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자신이 영웅이 되어 열악한 고객을 구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고객을 스토리의 영웅으로 캐스팅할 수도 있다. 비즈니스의 목표가 고객이 바라는 것을 손에 넣게 하는 것이라면 그런 생각이 가능해진다.

사실, 고객이야말로 영웅이 아닌가. 기업은 자신의 스토리에만 골몰한 나머지 자기 제품이 진짜 영웅이 아니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는다.

◇ “스토리가 좋으면 브랜드도 좋아져”

스티브 잡스는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은 스토리텔러다.”라고 말했다. 세계적인 작가 스티븐 킹은 “스토리를 시작하려면 첫 줄부터 고객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월트 디즈니는 “스토리가 좋으면 브랜드도 좋아진다.”고 설파했다.

스토리를 시작하려면 8초 안에 청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야 한다. 뭔가 특별하고 예측 불가능하고 흥미진진한 ‘후크’가 필요하다.

훌륭한 후크로 고객의 시선을 붙잡았으면, 스토리 변화를 암시해 고객의 가슴을 설레게 해야 한다. 스토리 속 캐릭터에게 온갖 어려움이 펼쳐져 있다면 고객은 캐릭터가 어떻게 이 과정을 극복해나갈지 궁금해하며 몰입한다.

고객은 자신과 상관없는 이야기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기업은 고객이 누구인지 충분히 조사하고 공감을 이끌어내야 한다. 기업이 고객과 정서적 유대감을 가지려면 솔직하고 진심 어린 태도가 답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 두려움과 욕망을 건드려도 좋다. 고객은 자기 자랑만 하는 기업을 싫어한다.

절대 고객을 가르치려 해서는 안 된다. 고객이 스토리 안에 녹아 있는 메시지와 교훈을 스스로 찾아내게 해야 한다.

세상 모든 일은 처음-중간-끝이 있듯이, 스토리에도 도입-전개-결말이 있다. 저자는 이를 좀 더 세분화해 ‘스토리의 뼈대’와 ‘6단계 구조’를 제시한다. 이 뼈대와 구조를 활용하면 누구나 멋진 스토리를 완성할 수 있다.

물론 고객은 이야기 구조가 아니라, 이야기 속 영웅(주인공)의 매력 때문에 스토리에 빠져든다. 완벽한 캐릭터보다는 결점이 있지만 끊임없이 분투하는 캐릭터에 더 매료된다. 그리고 고객은 영웅의 여정에 자신의 욕망을 투영한다.

이 과정이 잘 이루어지면 영웅은 판매를 촉진하고, 브랜드 가치를 높이며, 고객과 긴밀한 유대감을 쌓는 데 큰 힘이 되어준다.

기업은 자신이 영웅이 되어 고객을 구하겠다는 식의 태도를 보일 때가 많지만, 거꾸로 고객을 영웅으로 설정하면 기업은 진정으로 고객의 필요와 목표에 집중하게 된다. 고객을 영웅의 위치에 두는 것이 비즈니스가 올바른 자리를 되찾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