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업의 질문]

“저희는 글로벌 기업입니다. 본사주도의 이슈 및 위기관리 체계를 가지고 있지요. 문제는 국내의 색다른 이해관계자 환경과 문화입니다. 부정 이슈가 발생하면 글로벌 대응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그냥 글로벌 가이던스에 따라 이슈 대응을 해야 하겠지요?”

[컨설턴트의 답변]

현실적으로 부정 이슈가 발생하였을 때 해당 이슈를 관리하지 않는 것과 관리할 수 없는 것에는 다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로벌 기업의 경우 대부분 아주 훌륭한 이슈 및 위기관리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에 기반하여 정기적 훈련과 시뮬레이션으로 지속적인 준비를 하기도 합니다. 위기관리 명언 중에 ‘예방하지 못하면 준비하라(Prevent or Prepare)’라는 말이 있는데, 대부분의 글로벌 기업들은 이 개념에 충실하려 노력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글로벌 본사와 국내 지사간 협업 체계입니다. 오래전 기업들이 진취적으로 전세계에 뻗어 나가던 시절, 글로벌 기업의 이슈 및 위기관리 시스템은 중앙집권적 체계였습니다. 로컬(해외 지사 주재 지역) 특수성이나 차이를 인정하기 보다는, 본사가 정한 원칙과 프로세스에 따라 메시지와 타이밍까지 통제했습니다. 당연히 지사는 본사의 지시에 따라 로컬에 본사 이슈대응 방식을 단순 딜리버리하는 수준의 역할에 충실했습니다. 이슈를 관리하려 했지만 관리할 수 없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이후에는 점차 로컬발 이슈나 위기가 증가하면서(민감도가 늘면서) 글로벌 본사에서 위기관리팀이라는 것을 만들어 해외 지사에 대형 위기가 발생하면 팀을 파견했습니다. 지금도 그런 팀 파견제도를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이 있습니다만, 글로벌 본사 직원들이 아무리 위기관리 전문가라 해도 문제 발생 이후 국내에 입국해 지사 위기관리팀과 협업한다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글로벌 본사와 대응 미팅 시 애를 먹었던 시차나 현장 감각 공유 부담이 좀 줄었다는 것 밖에 큰 개선은 없었습니다.

최근에는 일부 글로벌기업이 위기발생 시 상당부분 대응역할을 로컬 자체에 권한이양(empowerment)하려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따라 해외 지사내 의사결정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집중적 위기관리 훈련과 시뮬레이션 경험을 제공하고 있지요. 훈련받은 경험 있는 경영진이 글로벌본사의 기존 원칙에 따라 해외지사에서 초기 대응 전반을 손수 지휘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속적인 본사와의 교감은 있겠지요. 이는 소위 ‘지휘자의 의도(commander’s intent)’ 개념에 기반한 체계인 만큼 여러 진전은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글로벌 기업에서 위기관리를 하는 여러 경영진과 실무팀장이 가지는 고민은 대부분 유사합니다. 부정 이슈나 위기발생 시 적시대응이 어렵다. 본사 가이던스가 너무 강력해 적절한 메시지를 내기 어렵다. 기자의 추가질문이나 자료요청에 응대가 거의 불가능하다. 국내기업처럼 이해관계자 스킨십이나 수면하 대응이 정책적으로 불가능하다 등 여러 고민이 비슷비슷합니다.

글로벌 본사가 수십년간 위기관리 체계에 대하여 여러 고민을 하며 이런 저런 시도와 개선을 꾀한 것 처럼, 로컬에서 관련 업무를 하는 구성원들도 깊은 고민을 통한 나름의 개선 시도를 해 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봅니다. 로컬 경영진이 국내 상황과 변화를 들여다보며 얼마나 스스로 깊이 고민하고 예방 또는 대비를 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글로벌 기업이라 이슈나 위기관리는 그런 식으로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게 현실이니 결과가 어떻든 충실하게 그에 따르면 됩니다.”는 생각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순수한 이슈나 위기관리 관점에서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