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아직은 북유럽이 신화와 인간의 회색지대로 남아있던 9세기. 당시 지역을 제패한 용맹한 전사인 '천하장사 시구르드'는 적장인 '뻐드렁니 마엘 브릭테'와 전투를 벌여 그의 목을 벤다. 오랜 라이벌의 제거로 의기양양해진 시구르드는 브릭테의 잘린 목을 말안장에 매달고 귀환한다. 그러나 영광은 짧았다. 잘린 브릭테의 머리가 말을 타고 달리던 시구르드의 다리를 계속 긁었고, 그 결과 시구르드는 상처의 감염으로 며칠 만에 죽었기 때문이다. 

버즈피드 영국판 편집장으로 활동했던 톰 필립스는 저서 <인간의 흑역사>를 통해 시구르드 이야기가 전하는 교훈으로 '적의 치아 위생에 유의하자'와 함께 '자만은 금물이다'라는 키워드에 주목했다. 맞다. 우리는 간혹 스스로가 모든 것을 콘트롤할 수 있다는 자만에 빠져 말 안장 아래 발 밑의 함정을 간과하기도 한다. 말도 안되는 흑역사를 만들어내고, 심지어 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한다.

최근 대선정국의 주요 후보들은 MZ세대의 표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들이 MZ세대들이 60%를 차지하는 코인투자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이유다. 자연스럽게 규제 완화 이야기가 나오며 MZ세대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는 코인 시장 활성화 방안들이 나오고 있다. 

당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거래소 업비트를 방문해 이석우 업비트 대표 및 빗썸, 코인원, 코빗 등 주요 거래소 CEO들과 만나 암호화폐 과세 기준을 완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으며 최근 토론회에서는 "조선 쇄국정책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시장 활성화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비슷하다. 그는 "현행 250만원인 가상자산 양도차익 기본공제를 주식과 동일하게 상향하겠다"며 사실상 코인 투자자들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암호화폐 투자수익 비과세 공제한도를 기존 주식시장 기준과 맞추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시장 활성화에 한 발 다가선 정책이다.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선 후보도 "새로운 블루오션에 대해 전향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면서 "가상자산 시장은 우리가 선도적으로 개척할 분야"라고 말했다.

블록체인의 탈 중앙화, 마이크로 레코딩 등 기존 플랫폼 법칙의 상식을 뛰어넘는 새로운 가능성이 웹3.0 담론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코인 시장 활성화는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다. 당연히 투자자들도 환영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빛'에만 집중하고 '그림자'는 무조건 외면하는 장면은 왠지 씁쓸한 뒷 맛을 남긴다. 코인 시장 활성화를 위한 공약도 좋지만 그에 수반되는 부작용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표 경제학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가상자산 시장을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비유해 관심을 모았다. 저신용자들에게 담보대출의 파생상품을 무차별로 팔았던 은행들의 탐욕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된 것처럼 코인 시장도 결국 투기와 버블의 경계에서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서브프라임 사태 당시 최대 피해자들이 대부분 사회 취약계층이었던 것처럼, 코인 시장 파국의 최대 피해자들도 자산이 작은 젊은이 등 사회 취약계층일 것이라는 경고다. 시카고대 산하 내셔널오피니언리서치센터(NORC)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코인 투자자의 35%는 가계소득 6만달러 이하며 55%는 대학 학위 미소지자다.

여기서 한국의 대선 후보들에게 묻고 싶다. 코인 시장 규제 완화에 대한 고민은 충분했는가. 단순히 MZ세대의 표를 구하기 포퓰리즘에 빠져 발 밑의 함정을 외면한 것은 아닌가. 만약 고민하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고민하라. 브릭테의 뻐드렁니가 미래세대의 다리를 찌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