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가 있음을 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점에 당락이 결정되고 희비가 교차하는 곳이 한 둘이 아니겠지만, 가장 먼저 떠 오르는 것이 수능이다. 올해도 수능에서 생명과학Ⅱ과목에서 전원 정답 처리 판경이 나왔다. 국내에서 내노라하는 전문가들로 출제우원들을 구성하고 집에도 못가고 보고 또 보고 하는 검증과정을 필시 거쳤을 터인데 그래도 바로 잡지 못하는 일이 사람이라서 그렇다. 전원 정답으로 구제를 받는 학생들이야 다행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과목을 시험친 학생들이 모조리 1문제는 먹고 들어가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은 상대적인 피해를 보게 된다는 논리 때문에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볼 점이 있다. 고등학생들이 치는 시험문제에 대한 검증을 국내에서는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을까 하는 것이다. 수험생들은 지난 12월 2일 20번 문제에 오류가 있어 정답을 찾을 수 없다며 수능의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수능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한 덕분인지 재판부는 소송이 접수된 지 13일만에 정답을 취소하라고 선고해, 모두가 점수를 받도록 구제했다. 들리는 얘기로는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국내의 많은 저명한 교수들에게 먼저 검증 요청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거의 모든 교수가 회피를 했다고 한다. 국내에는 그 정도 수준의 문제를 평가할 실력을 갖춘 학자가 없었을까?

결국 11일 즈음에 집단유전학 분야의 세계 최고 석학 중 한 명이라고 알려진 스탠퍼드대학교의 빙(Bing) 석좌교수가 트위터에 이 문항에 대해서는 수학적인 모순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일단락 되었는데, 언론에서는 이를 국제적인 망신으로 표현하고들 있다. 아마도 국내 학자들이나 교수들은 문제에 오류가 있었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교육부나 국내 대학을 포함한 학계와의 관계에 있어 껄끄러움을 남기지 않기 위해 애써 입을 다물어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들을 하게 된다. 그런 석학의 지적과 함께 법원의 판단이 나오자 흥미롭게도 여기 저기서 지식인들이 달려들었고, ‘문제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며 거들기도 했다.

1994년 수능이 처음 시행된 이후 지금까지 7번째 수능에서 9문제에서 오류가 있었다고 한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사람이 신이 아닌 이상 출제자의 판단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보편타당성이라는 확장이 없으면 그의 판단이 틀렸다고 할 수 없다고 할 수 있고 또 출제자의 의도를 당시 검증하던 전문가들도 응당 그리 생각해 문제를 확정했지만, 막상 다른 생각도 있을 수 있는 상황도 벌어진다. 때문에 그 시험 문제 몇 개를 가지고 교육 당국이나 국내 학계에 대한 신뢰 문제까지는 끄집어 낼 필요가 있을까 싶다. 정말 문제는 그 다음이 아닐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미국의 학자가 지적하여 망신을 하기 전에 국내 어느 누구라도 눈치 보지 않고 바른 것이 무엇인지 얘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치나 행정이나 사기업에서는 그렇다 치더라도 학문을 다루는 곳에서는 적어도 달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올바른 신하보다 간사한 신하의 재주가 더 커

동서양을 불문하고 역사를 되돌아 보면 번성했을 때는 반드시 바르고 훌륭하다 평가 받을만한 신하들이 포진해 있다. 그리고 연장선상에서 한 국가의 몰락에는 반드시 그 몰락을 부추기는 간사한 신하들이 있었다. 그런 신하들의 능력과 재주가 부족해서 생긴 문제는 아니었다. 아마 전자인 바르고 훌륭한 신하와 후자인 간사한 신하를 일 대 일로 비교해 본다면 후자인 간신의 재주가 더 출중하지 않을까 싶다. 신하가 되기 위한 학문과 능력이라는 기본적인 소양과 함께 아첨하고 간사하고 흉계를 꾸미고 거짓에 대해 부풀어나는 거짓이라는 살을 갖다 붙일 수 있는 더 큰 재주가 있어야 간신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재주만 본다면야 마음가짐이 바른 사람보다는 간사한 무리들이 더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많을 수 있다. 때문에 예로부터 사람들은 일을 맡길 때 누구를 선택해야 할까를 늘 고민해왔고, 국가나 기업이나 하다 못해 동네 점빵에서도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그 나름대로의 기준을 두고 있다. 일의 성과만 놓고 본다면야 간사한 재주 많은 자를 뽑아 일을 시키는 편이 나을 수도 있고, 많은 곳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 조직에서는 재주나 능력은 시험과 같은 검증을 통해서 가려낼 수 있지만 올바른 마음가짐을 구분하는 시험이란 상상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들을 한다.

지금은 주인이 바뀌었지만 1964년에 창업된 국내 굴지의 유제품기업이 있다. 사람들이 선호할만한 제품들을 생산해 내고, 유명 연예인부터 심지어 정치인까지 동원하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머리 둘레와 체중이 클수록 건강한 아기인지는 둘째 문제고, 우량아 선발대회를 개최하면서 방송으로 생중계까지 되면서 화제를 모았던 기업이다. 국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고, 마트나 편의점에서는 매대를 꽉 잡고 신제품을 쏟아내면서 시장의 흐름을 주도하면서 업계를 호령했다. 매출이 높아지고 남들은 망할 걱정하던 IMF 시기에 오히려 빚을 다 갚아 버리면서 무차입 경영을 했다. 주가도 고공행진을 거듭하면서 회사의 구성원들이나 투자자 입장에서나 행복한 비명을 지르던 때가 있었다. 국내 각종 경제연구소나 시민단체 그리고 심지어 외국계 컨설팅 회사들도 최고의 기업이라고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갑질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대리점주를 향한 욕설이 담긴 영업직원의 갑질의 목소리가 세상에 퍼진 뒤에는 한순간에 불매운동이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제 아무리 건실하고 우수한 제품을 쏟아내며 호평을 듣던 업계 탑티어에게도 소비자들의 외면은 견딜 수 없는 깊은 골짜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갑질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된 마당에 오너 일가의 특수관계인이 빚어낸 사회적인 물의는 싸늘하게 식어버린 국민 감정을 더 얼려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거기다가 결정타를 날려버린 것이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이 엄중한 코로나 시국에서 자사 제품이 코로나에 효과가 있다는 선전을 해버린다. 당연 이러한 연쇄적인 나비효과는 결국 회사 매출과 이익 그리고 주가의 추락을 당연히 동반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내놓은 제품에 회사 이름이 눈에 띄지 않도록 가리거나 없애버리는 묘책을 써보기도 했으나 터져 버린 둑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태를 진화하기 위해 들고 나온 대책은 국내의 모 사모펀드에게 경영권 매각이었으나, 이 마저도 애초의 발표와 달리 뒤집어 지면서 법정 공방전의 안갯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올해 3분기 영업손실만 58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실적을 정상화 시키기 위해서 재무, 회계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단이 달려들었다고는 하지만 상황은 예측불가다.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회사에서 살아 남느냐의 악전고투에 매달려야 하는 긴박한 상황으로 내몰린 것이 결국은 갑질에서 비롯된 것이다.

갑질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최악은 소위 ‘갑을’ 관계가 아닌 ‘을’들 속에서 이루어지는 갑질이다. 서로 같은 처지와 입장에 처해 있는 사람들 속에서 그나마 조금 먼저 왔다거나 먼저 겪어봤다는 이유만으로 뭔가를 요구하거나 되지도 않는 권모술수를 일삼는 무리들이 있다. ‘갑’이라는 위치에 있다면 처음부터 그런 마음을 먹지도 않았을 것이라, 비슷한 입장이라 생각하고 같은 생각일 것이라는 상황에서 당하는 갑질은 충격도 느낌도 훨씬 배가 된다.

근무했던 데가 여러 곳이었는데, 성장하는 조직에서 근무했을 때의 구성원들 간의 관계와 태도는 그렇지 않은 곳에서의 그것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전자의 경우에는 회사의 규모는 대기업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개발팀에서는 뭔가 하나라도 더 개발하고자 했고 그런 제품을 기반으로 영업팀은 심심찮게 수주 소식을 들고 왔다. 당연히 커뮤니케이션실에서는 그런 소식을 대외 뉴스로 내 보내게 된다. 심지어는 그런 뉴스와는 거리가 있었던 재무나 회계분야의 직원들도 금융권 사람들과의 미팅 전에는 혹여나 도움될만한 여의도발 자잘한 동향이나 소식이 없는 지 커뮤니케이션실을 찾곤 했다.

조직을 사지로 몰아가는 ‘을’간의 갑질

뉴스가 온오프라인을 장식하고 난 뒤에는 영업팀장들은 위로부터 치하를 받고 다시 커뮤니케이션실에 들러서 그렇게 잘 알려준 데에 사의를 표했다. 또 은행원들도 미처 알지 못하는 따끈한 여의도발 뉴스를 들고 나갔던 재무실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심찮게 그런 팀에서 벌이는 회식자리에 초청 받았을 뿐더러 그들의 활약상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신경 써 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수평적으로 구성원들 간에 믿고 소통하고 지원해주는 남다른 분위기는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물론 글로벌금융위기 같은 심상찮은 내외부에서 파생되는 어려움에 등락은 거듭했지만, 사람들에게 내포되어 있는 DNA는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반면에 그와는 정 반대의 기질을 가진 조직도 있었다. 서로 간에 소통하면 큰 일이라도 나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 것인지 사무실마다 한 사람씩 첩자를 심어 놓고 누구와 통화를 하는 지, 어디를 들락 거리는 지, 일하는 것은 어떤지 하루 종일 뒤를 캐는 조직도 있었다. 당연히 그런 정보를 취합하는 사람은 같은 조직에서 근무하는 구성원이면서도 늘 남다르게 행동했다. 보고의 권한을 쥐고 있으니 은근슬쩍 경고를 날리기도 하고, 자기 휘하의 사람들만 관리를 하면서 새로 들어 온 사람들이나 맘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항상 거리를 두었다. 그 무리에 들지를 못하면 회사 내에서 제대로 자리잡고 인정 받을 수가 없었기에 결국에는 굽히고 그 무리에 끼게 되는 것을 여러 번 봤다.

기억나는 한 사람이 있다. 지금껏 싸움질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는 내가 멱살잡이까지 간 적도 있었다. 개발도 여러 가지가 있었고, 예상하고 있는 수주 건도 있었다. 때문에 그 사업부를 책임지고 있으면서, 위에다가는 개발이나 수주 같은 호재 거리도 많고 대외적으로도 알릴만한 무기들이 꽤 있다고 보고도 하고 공개적인 회의석 상에서 떠벌이기도 자주였다. 위에서는 상당한 기대감을 심어주고 조직을 휘두르다시피 했다. 그런 사업부를 지원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실의 당연한 미션이었기에 수시로 찾아가서 그런 성과와 관련된 참조자료를 요청하곤 했다.

하지만 주겠다는 자료는 늘 감감 무소식이었다. 많은 자료를 달라는 것도 아니고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 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메모지에 끄적거려 줘도 되고, 회의 때나 발표한 자료들을 추려서 복사해서 줘도 괜찮으니 참조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을 하다시피 했지만 번번이 헛일이었다. “왜, 바쁜 사업부를 귀찮게 하냐?” 그즈음 들려온 얘기였다. “알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직접 공장에 가서 라인을 들여다 보면서 파악을 하라”는 말도 있었다. 아무리 이공계 대학을 나와서 이해가 남들보다는 빠르다고는 하나 사전 공부 없이 공장에서 제품이 흘러가는 라인만 쳐다보고 제반 원리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 사업부의 이중적인 플레이에 번번히 농락만 당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사업이 대내외적으로 돋보이고 더 잘 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고자 하는 것을 애써 어렵게 만들어 버리는 행태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 중 몇몇은 입으로만 일을 하고 인정만 받고자 하는 속셈이었다는 것이 뒤늦은 나의 판단이다. 뉴스가 되고 알려진다는 것은 기록이 되고 약속되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어서 그들은 말로만 모든 것을 해결하고 싶어 했다. “뉴스가 되면 부담이 되어서 뭔가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는 것이 그들이 내세운 이유였다. 그냥저냥 회사 내에서 부산스럽게 뭔가를 하는 것인양 보여주기만 하고, 말로는 모든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내세우지만 어딘가 기록하는 것은 극구 사양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 중간에 끼인 커뮤니케이터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처한 상황의 연속이 있을 뿐이었다.

그 사람이 내세웠던 여러 계획은 결국 제대로 실현된 것이 없었다. 수주도 그랬고 제품 발표도 그랬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알멩이도 없이 포장만 그럴 듯하게 하는 행태가 간사한 신하의 전형적인 잔재주가 아니었나 싶다. 그런 DNA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조직에서는 항상 ‘을’ 속에서 피어나는 갑질이 빈번하다. 그런 조직은 갈 때까지 가야 겨우 알게된다. ‘되돌아 갈 수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