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박주민 의원실
자료=박주민 의원실

[이코노믹리뷰=양인정 기자] 한 해 약 8만~9만여명이 신청하는 빚 조정 절차 개인회생. 사업 실패, 질병, 질식, 보이스 피싱 등으로 빚을 졌을 때 법원의 재판으로 재기할 수 있는 제도다. 이와 같은 개인회생이 배우자의 재산의 편입을 두고 법원마다 다른 기준을 적용해 혼란을 야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빚을 지고 서울회생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한 A씨의 재산은 약 150만원이다. 예금과 2010년식 중고 자동차가 그의 재산 전부다. 그의 급여는 200만원. 한편, A씨의 배우자는 1억6000만원 가치의 아파트와 금융자산 6400만원을 갖고 있다. 

서울회생법원 실무준칙에 따르면 36개월(3년) 동안 그가 매달 갚아야 할 변제금은 약 90만원이다. 월급에서 1인 생활비 약 110만원을 뺀 금액이다. 이렇게 갚게 되면 A씨는 3년동안 모두 3240만원을 변제한다. 채무자의 재산보다 많이 갚아야 하는 개인회생 원칙에도 부합한다. 

A씨가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개인회생을 신청했을 때 그의 재산은 150만원에서 1억1350만원으로 늘어난다. 배우자의 부동산과 금융자산의 절반이 A씨의 재산으로 평가되기 때문. 이렇게 되면 A씨가 개인회생 절차에서 매달 내야 하는 변제금은 약230만원이다. 그것도 60개월(5년)동안 갚아야 1억3800만원을 변제할 수 있다. 그래야 채무자의 재산보다 많이 갚아야 하는 개인회생의 원칙도 충족시킬 수 있다. 

결국 200만원의 급여를 받는 A씨는 230만원을 내야하는 개인회생을 통과할 수 없게 된다.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회생을 신청했다는 이유로 말이다.

◆ 부부 별산제 무색케 하는 개인회생

최옥환 박사(법무사)는 지난 16일 온라인으로 열린 한국채무자회생법학회 동계 공동 학술세미나에서 "각 지방법원의 개인회생 재판 기준이 달라 채무자가 재기하는 것을 포기하도록 만들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날 세미나 제1세션에서 발표자로 나선 최 박사는 서울을 제외한 지방법원의 개인회생 재판이 민법과 대법원의 판례을 정면으로 배치하는 방식으로 운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박사가 특히 문제를 삼고 있는 부분은 개인회생을 신청한 채무자의 '배우자 재산'이다. 지방법원들이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채무자에 대해 배우자의 재산의 절반을 무조건 채무자의 재산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이는 부부별산제를 원칙으로 하고 있는 현행 민법과도 맞지 않다는 것이 최 박사의 설명이다. 

현행 민법은 배우자가 결혼 전부터 가진 재산,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재산, 증여받은 재산은 배우자의 고유 재산이다. 이혼할 때도 나누지 않는 재산이라는 것.

대법원도 이와 같은 원칙을 확인해 왔다. 대법원은 “부부의 일방이 혼인 중 그의 명의로 취득한 부동산은 그의 소유재산으로 추정된다"면서 "상대방의 협력이 있었다거나 혼인생활에 있어 내조의 공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는 위 추정을 번복하지 못한다"고 다수 판례를 남겼다. 다만 부부가 각자 대금을 나눠 내서 취득한 부동산 등은 공유제산으로 본다. 

채무를 조정하는 개인회생 절차에서 배우자가 스스로 취득한 재산은 함부로 공유로 봐서는 안된다는 판례다. 

최옥환 박사가 한국채무자회생법학회 동계 학술 세미나에서 개인회생 재판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양인정 기자
최옥환 박사가 한국채무자회생법학회 동계 학술 세미나에서 개인회생 재판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양인정 기자

◆ 비판에도 아랑곳...위장전입하는 채무자들

최 박사는 지방의 일부 법원이 채무자에게 배우자의 재산관련 서류를 받아 그 절반을 채무자의 재산으로 취급한다고 현황을 전했다.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채무자의 재산에 배우자 재산의 절반을 포함시키면 사례와 같이 개인회생으로 빚을 조정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게 된다.

현재 대전, 청주, 춘천, 대구, 울산, 부산 지방법원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개인회생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 법원의 개인회생 재판은 이미 수년 전부터 국정감사에서 비판을 받았다. 주로 채무자에게 가혹하게 보완서류를 요구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월 변제금을 부과하는 것이 도마에 올랐다. 이 때문에 충청 이남 지역의 법원은 개인회생 통과율도 서울에 비해 턱없이 낮았다. 

지난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서울 은평구갑)이 법원행정처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최근 4년간 부산지법의 개인회생 신청 인가율은 43.4%로 전국 법원 평균(60.2%)보다 17% 포인트 낮았다.

인가율이 낮은 순으로 울산법원이 48.2%로 뒤를 이었고, 청주법원이 49.7%, 인천법원 51.4%, 대구 58.1%, 춘천 59.5%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서울회생법원의 개인회생 인가율은 73.7%였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일부 채무자들은 위장전입을 하는 방법으로 서울에서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고 최 박사는 밝혔다. 같은 조건이라도 서울에서는 회생이 되고, 지방에서는 안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파산법조계 일각에서는 개인회생과 같은 도산사건을 모두 전문법원인 서울회생법이 전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채무를 조정하려는 지방의 자영업자들이 개인회생 신청을 포기하는 데에 있다. 배우자 이름으로 된 전세보증금이나 부동산으로 월 변제금이 높아져 채무를 조정하러 법원에 갔다가 되려 지출 부담만 커지는 모순이 연출되는 것이다. 결국 재기의 시기를 놓칠 수 밖에 없다. 

재기를 원하는 채무자가 개인회생을 했다가 이혼하거나 가정이 파탄되는 사례도 나오는 상황이다. 

최 박사는 "개인회생절차에서는 월 소득에서 생활비를 빼고 나머지를 갚되, 채무자의 재산보다는 많이 갚아야 하는데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채무자가 기여가 없는 배우자재산의 1/2을 마치 채무자의 재산으로 취급하는 것이 관례가 됐다"며 "이런 이유로 가정불화를 겪거나 이혼을 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 박사는 "이것은 채무자의 가정을 보호하려는 개인회생의 본래 취지가 무색해 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6월 한국금융연구원이 발표한 '국내 가계부채 리스크 현황과 선제적 관리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가계의 채무상환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인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올 1분기 말 181.1%로 전년 동기와 비교해 18.0%포인트 올랐다. 가계의 채무 상환 부담이 그만큼 악화됐다는 의미다.

한편, 한국채무자회생법학회(회장 엄덕수) 국내 도산법 분야에서 한국도산법학회 및 도산법연구회와 함께 3대 학회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