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업의 질문]

“저희가 전사적 위기관리 매뉴얼을 만들고 있습니다. 들어보니 위기관리 매뉴얼이라는 것의 실제 수명이 생각보다 짧다고 하던 데요.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만약 매뉴얼이 그렇게 단명한다면 굳이 매뉴얼을 만드는 데 투자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기업 위기관리 매뉴얼의 실제 사용 유효기간은 약 6개월가량 되는 것 같습니다. 기업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상당기간 동안 위기관리 매뉴얼을 열심히 만들어 놓고, 실제 사용 기한은 6개월가량이라고 하면 놀라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매뉴얼 완성 후 열심히 그에 대해 교육하고 훈련하고 하는 정착화 기간이 지나 어느 정도 기간이 흐르면 인사 이동이 생깁니다. 매뉴얼상에 정해진 각자의 역할과 책임이 변화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전에 배우고 훈련했던 그 내용이 바뀌게 됩니다.

체계가 갖춰져 있어서 정기적으로 변화된 역할과 책임을 반복 교육 훈련하는 기업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의 경우에는 불과 수개월만에 매뉴얼에 대한 구성원의 개념은 유효기간을 넘기게 됩니다. 특히 대표이사 같은 최고의사결정권자가 바뀐다 거나, CRO(chief risk officer) 같이 위기관리 조직을 코디네이션 해야 하는 중요 포지션의 임원이 바뀌어 버리면 말 그대로 자사 위기관리 시스템은 사라진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새롭게 그 자리를 맡은 분들 중 열심히 기존 위기관리 시스템을 공부하고, 신속하게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습득하려는 분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존 시스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고, 위기관리에 대한 우선순위를 높지 않게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전에 강하게 공유되었던 전사적 위기관리 마인드가 식어 버리게 되지요.

그렇다고 해서 위기관리 매뉴얼을 만드는 작업이 별 의미 없다고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위기관리 명언에 ‘플랜보다 플래닝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위기관리 매뉴얼은 플랜 자체일 뿐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은 그 매뉴얼을 만드는 과정에서 위기관리 조직이 구성되고, 그 각자가 자신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경험입니다.

평소에는 별 관심이 없었거나, 피상적 관심만 있던 위기 유형과 주제 각각에 대해 모두 함께 시간과 정성을 들여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매뉴얼 작업은 필요합니다. 진지한 고민을 통해 프로세스 그리고 체계에 대한 생각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는 것도 큰 가치입니다.

이를 통해 자사 위기에 대한 공통된 정의를 가지게 됩니다. 그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자사의 원칙과 우선순위에 대한 생각도 공유하게 됩니다. 각자 맡겨진 역할과 책임을 이해하게 되고, 그에 따라 실질적인 관리 전략과 프로세스를 밟아 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함께 모여 팀워크를 만들어 보는 연습도 하게 됩니다. 최고의사결정권자와 CRO가 실제와 같은 상황에서 여러 압박을 견뎌가며 의사결정하고 조직을 운용해 보는 기회도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인 플래닝이 곧 핵심입니다. 그 플래닝을 통해 탄생한 위기관리 매뉴얼은 플랜일 뿐입니다. 6개월짜리 생명의 플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