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정부가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참여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고민하는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13일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어 CPTPP 가입과 관련된 현안을 다룰 전망이다. 

미중 패권전쟁이 심각한 상태에서 정부의 CPTPP 가입 여부는 글로벌 경제협력의 판을 흔들 수 있는 민감한 문제다.

중국, 아세안 중심 RCEP 가입
한국은 지난해 11월 발족한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에 가입했다. 

RCEP는 싱가포르·필리핀·태국·말레이시아·미얀마·인도네시아·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브루나이 등 아세안(ASEAN) 10개국을 비롯해 한국·중국·일본·호주·뉴질랜드 등 총 15개 나라가 함께한다. 한국이 RCEP에 가입하며 5조4,000억달러의 무역규모를 자랑하고 22억6,000만명의 인구가 활동하며 글로벌 명목GDP 26조3,000억달러(전체 비중 30%)의 메가 FTA 시대가 열린 셈이다.

한국에서는 지난 2일 국회 비준안이 가결되어 내년 2월부터 정식 발효된다.

한국은 지난 2011년 아세안 정상회의 당시 처음 관련 논의가 시작된 후 31차례의 공식 협상과 19차례의 장관회의, 4차례 정상회의를 거쳐 지난해 11월 전격 가입을 선언했다. 

한국의 RCEP 가입은 메가 FTA 블록에 참여하는 수준을 넘어 정부가 추진하는 신남방 정책의 핵심 교두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아세안 국가인 AFP(ASEAN FTA Partners facilitator)를 이끌며 다자협상을 주도해 RCEP에 가입하는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민감한 구석도 있다.

최초 RCEP는 미국 주도의 경제 블록인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전신)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무엇보다 중국이 RCEP의 핵심이기 때문에 한국이 여기에 가입할 경우 미중 패권전쟁을 치르는 미국과 중국의 격돌에 휘말릴 가능성이 제기된 바 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해 11월 RCEP 발족을 두고 "중국의 승리"라고 평가한 이유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지역 경제 회복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 성장을 이끌 것"이라며 만족스러운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다만 쿼드의 핵심인 일본이 RCEP에 참여한 반면 진영의 핵심이 아세안 국가들에 치우쳤다는 점에서 한국의 RCEP 자체는 큰 무리가 없다는 평가도 많았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이 TPP에서 탈퇴한 상태에서 한국이 RCEP에 참여했다고 "미국을 버리고 중국과 손을 잡았다"는 평가는 성립되지 않는이유다. 청와대가 한국의 RCEP 가입 직후 "미국이 추진하는 CPTPP와 RCEP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한 이유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주도했던 TPP의 후신인 CPTPP에 한국이 가입한다면 온전한 균형잡기가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중국도 CPTPP 가입을 요청한 상태라 미중 패권전쟁의 치열한 전투속에서 의외의 다자간 경제협력 그림이 나올 여지도 있다.

미국의 선택은
한국이 RCEP에 참여한 가운데 중국도 참여 요청을 한 CPTPP에 가입한다면 또 하나의 메가 FTA가 찬성한다. 미국의 색이 강한 CPTPP의 특성상 미중 패권전쟁의 완충재 역할도 기대된다. 

변수는 미국의 선택이다.

미국은 트럼프 전 행정부 당시 TPP에서 탈퇴했으나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며 CPTPP 가입 의지를 강조한 바 있다. 보호 무역주의로 일관하며 대결국면을 고조시킨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바이든 행정부는 다자주의에 방점을 찍은 전략을 구사한다는 점도 이러한 전략에 힘을 보탰다.

다만 최근 미국 내에서는 CPTPP 가입보다 인도태평양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경제협력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실제로 지난 19일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과 캐서린 타이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아시아 지역 순방에 나선 가운데 이들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새로운 경제 틀을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예상됐던 일이기도 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집권 전부터 아시아 전략의 축을 동북아시아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삼았으며 노골적으로 인도와 함께 중국의 영향력을 남쪽에서 차단하는 로드맵을 가동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국도 CPTPP 가입 요청을 한 인상 내부 주도권 경쟁에 몰두하느니 차라리 인도를 중심으로 새판짜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이 아예 FTA의 틀을 넘어서는 이데올로기적 사고를 바탕으로 새로운 대중 포위전선을 구축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동아시아 정상회의 당시 처음으로 "인도태평양 경제 틀"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가운데 중국을 완전히 타자화시켜 민주주의 경제블록을 구상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미국이 9일부터 10일까지 전 세계 약 110개국을 초청해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화상으로 진행한 상태에서 FTA 방식이 아닌 민주주의 경제블록을 구축, 대중국 압박을 키우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그림이다. FTA 방식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 의회의 협력을 요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서는 매력적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과 대립각을 세운 인도와 손을 잡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의 길은
한국이 RCEP 가입에 이어 CPTPP에도 합류할 경우 대형 경제블록을 충분히 활용, 경제협력의 틀을 크게 키울 수 있을 전망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촉발된 글로벌 경제 위기가 여전한 상태에서 다자주의 경제모델은 한국 경제에도 든든한 우군이 될 전망이다.

다만 RCEP에 이어 CPTPP에 가입한다고 해도 미국과의 연대가 자동으로 강화될 가능성은 낮아졌다. 미국의 아시아 지역 전략에서 동북아가 아닌 인도태평양 지역의 전략적 가치가 더 높아졌으며, 새로운 경제협력의 틀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시작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통상전략을 새롭게 수립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는 이유다. RCEP 가입에 이어 CPTPP 가입에 있어 입체적인 전략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몇 차례 관련 회의가 연기된 상태에서 산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