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동훈 기자] 국내외 완성차 업체들이 최신 전기차를 대상으로 보닛 아래 수납공간인 ‘프렁크(frunk)’ 설치에 대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누군가는 설치하지만 누군가는 설치하지 않는다.

프렁크는 내연기관차 대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는 전기차의 장점을 드러내지만 이를 설치하지 않는 이유도 따로 있다. 이유가 뭘까?

현대자동차의 준중형 전기 SUV 모델인 아이오닉 5의 PE룸 전경. 사진= 이코노믹리뷰 최동훈 기자
현대자동차의 준중형 전기 SUV 모델인 아이오닉 5의 PE룸 전경. 사진= 이코노믹리뷰 최동훈 기자

9일 현재 국내 판매되고 있거나 공개된 전기차 제품들을 종합 분석한 결과 현대자동차, 기아, 테슬라 등 업체들의 전기차는 프렁크를 갖추고 있다. 반면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 브랜드의 신차에는 프렁크가 없다.

완성차 업체마다 프렁크를 달리 취급하는 건 보닛 아래 영역인 전동 파워트레인(PE)룸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달렸다.

프렁크는 통상 50ℓ 안팎의 용량을 갖춘 채 PE룸 중앙부에 탑재된다. 기존 내연기관차의 엔진룸과 동일한 영역에 엔진, 변속기, 냉각팬 등이 배제됨에 따라 비는 공간을 차지한다. 프렁크를 제공하는 업체들은 고객에게 추가 적재공간을 제공하는데 PE룸을 활용했다.

반면 프렁크를 장착하지 않은 업체들은 PE룸을 다른 요소들로 채웠다. 메르세데스-벤츠는 대형 전기 세단 EQS의 PE룸에 초대형 헤파필터(Hepa filter)를 장착했다. 부피 10ℓ에 A4 4장(A2)을 합한 너비의 면적에 달하는 필터는 가정용 공기청정기와 동등한 수준의 실내 공기정화 성능을 제공한다.

BMW는 공차중량을 줄임으로써 주행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대형 전기 SUV iX에서 프렁크를 배제했다. 이에 따른 iX 공차중량은 2,415㎏으로, 더 작은 제원을 갖춘 아우디 e-트론(2,640㎏)보다 가볍다.

BMW의 대형 전기 SUV 모델인 iX. 보닛을 열 수 없도록 설계됐다. 사진= 이코노믹리뷰 최동훈 기자
BMW의 대형 전기 SUV 모델인 iX. 보닛을 열 수 없도록 설계됐다. 사진= 이코노믹리뷰 최동훈 기자

“더 안전해져” vs “탑승칸 줄어”…업체간 의견 분분

프렁크의 유용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미국 뉴미디어 BDG그룹의 기술 전문매체 인버스(INVERSE)에 따르면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프렁크를 탑재함으로써 유사시 승객과 보행자 모두에게 비교적 적은 피해를 입힐 것이라고 주장했다.

머스크 CEO는 지난 2016년 테슬라 주주와 통화하는 과정에서 “테슬라는 차량의 후드를 일종의 트램펄린처럼 설계했다”며 “(이에 따라) 테슬라 차량이 전면 충돌할 경우 스프링 효과가 발생하고, 이는 (내연기관차에 비해) 보행자의 생명에 (끼치는 영향에) 있어 큰 차이를 보여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일본 완성차 업체 닛산의 알폰소 알바이사(Alfonso Albaisa) 글로벌 디자인 수석 부사장은 프렁크를 탑재할 경우 해당 전기차의 정체성을 내연기관차와 구분할 수 없을 것이라 주장했다. 공조 시스템 같은 차량 내부 구성요소가 프렁크에 밀려 다시 탑승공간을 차지함에 따라 실내 규모를 좁힐 수 있을 것이란 주장이다.

알바이사 수석 부사장은 지난해 1월 미국의 친환경차 전문 미디어인 그린카 리포츠(Green Car Reports)와의 인터뷰를 통해 “닛산은 전기차 컨셉트카 아리야(Ariya)의 엔진룸 부위에 공조 관련 장치 등 실내 요소를 집어넣음으로써 승객에게 완전히 열린 탑승공간을 제공한다”며 “프렁크를 설치할 경우 센터콘솔을 다시 차량 안으로 들여야하는 등 전기차 고객에게 내연기관차와 같은 구조를 강제로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테슬라 중형 전기 세단 모델3의 PE룸에 조성된 프렁크. 사진= 이코노믹리뷰 최동훈 기자
테슬라 중형 전기 세단 모델3의 PE룸에 조성된 프렁크. 사진= 이코노믹리뷰 최동훈 기자

소비자들의 반응도 제각각인 것으로 확인됐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프렁크에 대한 소비자들의 의견을 살펴본 결과 ‘반찬통 같이 냄새나는 짐을 싣거나 모자란 실내 적재공간을 보완하는데 유용하다’는 긍정적 반응이 나타났다. 반면 ‘작은 짐을 실어야 하지만 차가 움직일 때 덜컹거리는 소리가 거슬리고, 보닛을 열고 닫기도 어려워 잘 쓴다’는 등 부정적인 목소리도 나왔다.

학계에서는 설계 자유도 높은 전기차 플랫폼이 최근 들어서야 널리 보급됨에 따라, 현재로선 프렁크의 유용성에 대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모양새다. 다만 프렁크 탑재 여부가 차량 상품성에 대한 장단점을 모두 드러내기 때문에 이를 결정하는 것은 업체 몫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김흥규 국민대 자동차공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기차 플랫폼이 새롭게 (제품에) 도입됨에 따라 기존 차량에 대해 앞서 설계적 측면에서 검증됐던 부분이 완전히 바뀌었다”며 “엔진룸(PE룸) 등 전기차 구성요소를 어떻게 재설계하고 활용하는지에 따라 차량의 안전성이나 주행 성능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