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보는 범죄 수사 드라마에서 인상에 남았던 장면이 있는데 미국에서 제대로 정의가 실현되고 있는가에 대한 큰 의문이 생긴 때문이다.

늦은 저녁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걸어가던 흑인 남학생은 갑자기 자신을 가르키며 소매치기라고 소리지르는 관광객 때문에 졸지에 경찰에 체포되는 신세가 됐다. 학교 방과후 아르바이트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라고 항변했지만 경찰은 청자켓에 가방을 멘 흑인 남성이라는 인상착의가 동일하다며 학생을 체포했다. 현금 보석금을 낼 형편이 되지 않았던 이 학생은 재판을 받을때까지 구치소에 구금되면서 학교나 일터에 갈 수 없기 때문에 아르바이트에서는 잘리고 학교를 출석할 수 없어서 졸업도 불투명하게 됐다.

부유한 부모를 둔 아이비리그에 재학중인 백인 남학생은 친구들을 초청해 연 파티에서 동급생인 여학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피해자가 정확하게 해당 남학생을 범인으로 지목해서 경찰이 남학생을 체포했지만 오히려 남학생은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면서 현금 보석금을 내면 바로 내일이면 풀려날 거라면서 피해자를 비웃었다. 해당 남학생의 예상대로 부모로부터 돈을 받아온 변호사는 보석금을 즉시 낸후 가해자는 풀려났다.

한명은 억울하게 누명을 썼고 한명은 실제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현금 보석의 여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재판이 열리게 될 수주에서 수개월간의 기간동안 한명은 감옥에 머무르고 다른 한명은 집에서 편안하게 지내게 되는 것이다.

미국은 현금 보석 (cash bail)제도는 이 때문에 빈부 차별이라는 비난을 오랫동안 받아왔다. 미국은 여러 형태의 현금 보석 제도를 운용하고 있는데 용의자가 체포되면 법원이 석방의 조건으로 지불해야하는 보석금의 규모를 결정하게 된다. 범죄혐의가 악랄할 경우 보석금은 높게 책정되고 용의자가 해외로 도주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도 보석금을 높게 책정하고 여권을 압수하는 식으로 보석을 허락한다.

문제는 초범이거나 대마초 소지 등의 경미한 범죄혐의라고 해도 단돈 수백달러가 없는 사람들은 무조건 감옥에 가야하고 악랄한 범죄 용의자도 수만달러의 보석금을 지불하면 집에서 편안하게 일상 생활을 즐길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16년 뉴햄프셔에서는 버거킹에서 일하던 직원이 대마초 소지혐의로 체포됐는데 판사는 의례적으로 낮은 금액인 100달러를 보석금으로 책정했다. 그러나 단돈 100달러도 없었던 이 청년은 감옥으로 보내졌고 수감 5일만에 감옥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단순 범죄자들이 오히려 현금 보석 제도의 피해자로 감옥에 갇히고 실제로 악랄한 범죄자들은 돈으로 해결해서 감옥을 피할 수 있다는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이 미국에서도 통하는 셈이다. 이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유색인종들에게 더욱 큰 타격으로 자료에 따르면 흑인과 히스패닉 등은 백인에 비해서 현금보석을 하지 못해 감옥에 갇힐 확률이 2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석금을 내지 못해 투옥되는 사람들은 전체 수감 인원의 60%가 넘는다. 감옥에 수감중인 사람의 절반 이상이 아직 재판도 받지 않아서 유죄판결이 나오지도 않은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야하는 사람들임에도 보석금이 없어서 감옥에 있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점은 불과 며칠간이라해도 감옥에 갇힌 경험은 경제적, 물질적 손실과 함께 정신적, 신체적 손실을 가져온다는 점이다. 투옥으로 인해 학교와 직장을 가지 못하는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다수의 초범 경범죄자들이 감옥안에서 다른 죄수들에게 신체적, 정신적 폭력을 당하는가 하면 이들에게 다른 범죄를 습득해 추가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악순환이 생긴다.

미국 내 곳곳에서 현금 보석제도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뉴욕과 LA 등 일부 시와 지역에서 현금 보석제의 일부 폐지와 변경 등이 이뤄졌는데 주 단위로는 최초로 일리노이주가 올해 현금 보석 제도를 완전 철폐키로 했다. 해당 현금 보석 제도 폐지 법안은 2023년 1월 발효될 예정으로 이에 따라 모든 피고인은 재판이 진행될때까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