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4일 미국 출장을 마치고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5년 만에 미국 출장이다.

이 부회장은 이번 미국 출장을 두고 글로벌 경영을 위한 네트워크 및 파트너십을 공고히 한 점에 의미를 뒀다. 그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비즈니스 파트너들과 회포를 풀었다"면서 "그들과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어 좋은 출장이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출장 기간 버라이즌 및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등을 방문했으며 미 의회 및 백악관 핵심 관계자들까지 만나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 이슈 및 지원 인센티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에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퀄컴과 AMD, 엔비디아, 애플 경영진들과도 회동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부회장은 귀국 현장에서 "현장의 처절한 목소리와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고 오니 마음이 무겁다"는 말도 남겼다. 

이 부회장이 어떤 의도로 이러한 말을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글로벌 경영을 위한 네트워크 구축 측면서 큰 성과를 냈으나 그와 비례해 뉴삼성을 그리는 이 부회장의 위기감도 커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역사적인 미국 출장, 그러나
이 부회장은 미국 출장 기간 현지 정재계 인사들과 연속으로 비즈니스 미팅을 벌이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완했다. 22일(현지시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 구글 본사에서 선다 피차이 CEO를 만난 후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반도체와 세트 연구소인 DS미주총괄(DSA·Device Solutions America), 삼성리서치아메리카(SRA)를 연이어 방문해 임직원들과 회동하기도 했다.

출장의 화룡점정은 미국 반도체 공장 부지 확정이다.

삼성전자는 23일(현지시각) 미국 텍사스 주지사 관저에서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그렉 애벗(Greg Abbott) 텍사스 주지사, 존 코닌(John Cornyn) 상원의원 등 관계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신규 파운드리 공장 부지로 테일러가 낙점됐다고 발표했다. 신규 라인은 2022년 착공해 2024년 하반기 가동이 목표다. 5G, HPC(High Performance Computing), AI(인공지능) 등 다양한 시스템 반도체를 생산한다는 설명이다.

1983년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동경선언이 나온 후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신화가 시작된 것처럼, 2021년 이재용 부회장이 주도한 170억달러 규모의 테일러 공장 부지 확정 선언은 삼성전자가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를 넘어 파운드리 등 시스템 반도체 시장의 판을 흔드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다만 이번 미국 출장이 역설적으로 미중 패권전쟁의 엄혹함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한편 삼성을 지탱한 초격차 전략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미중 패권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며 두 슈퍼파워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장군멍군을 거듭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그 격류에 휘말린 상태다. 미국이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을 강요하며 핵심기밀 제공을 요구하거나, 중국이 지나치게 미국으로 기울고 있는 국가의 반도체 흐름에 제동을 거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부회장이 미국 출장 기간 동분서주하며 반도체 공급망과 관련된 주요 인사들을 만난 이유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 홀로 해결할 수 없는 현안들이 산적했을 것으로 예상한다. 패권전쟁의 흐름속에서 힘의 논리에 따라 좌우되는 시장의 냉혹한 현실이다.

삼성을 지탱한 초격차의 미래에 대한 고민도 있다. 이 부회장은 DSA와 SRA를 방문해 임직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추격이나 뒤따라오는 기업과 격차 벌리기만으로는 거대한 전환기를 헤쳐나갈 수 없다"면서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를 개척해 새로운 삼성을 만들어가자"고 당부했다. 

초격차를 넘어서는 새로운 기술 퀀텀점프를 노린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뉴삼성을 향한 이 부회장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자리 수출? 아쉽다"

이 부회장의 미국 출장이 끝난 가운데 업계에서는 "한국의 인프라가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전자가 테일러에 공장을 건설하게 된 동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가 테일러에 공장을 건설하기로 한 이유는 오스틴 공장과의 거리가 가깝고 우수 인재를 흡수하기 용이한데다 풍부한 공업용수를 사용할 수 있는 등의 강점이 있기 때문이다. 

결정적 배경은 파격적인 인센티브다. 30년간 최대 90%의 재산세를 환급해주는 한편 테일러시 독립교육구는 약 3억달러의 추가 세금감면을 보장한다. 윌리엄슨카운티도 10년간 재산세 90% 환급, 이후 10년간 85% 환급을 약속했다. 여기에 미 의회에 계류중인 반도체 지원 인센티브까지 통과될 경우 막대한 보조금 혜택도 받을 수 있다.

테일러시도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다. 공장 건설 과정에서 6,500명의 노동자가 일할 전망이며 공장이 완성되면 2,000명의 일자리가 창출된다.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는 추가 일자리만 수 천개가 생겨날 것으로 예상된다. 당연히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전략이라는 연방정부 차원의 큰 그림도 완성된다.

한국은 어떨까. 삼성전자 평택 공장의 경우 주민 반대 등으로 공장 가동이 지연된 바 있으며 정부가 야심차게 키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도 역시 주민 반대 등으로 지지부진하다. 연내 착공은 물 건너갔다는 말이 나온다. 지난 5월 반도체 특별법이 발의됐으나 본회의 통과 가능성은 낮아지고 있고 그 마저도 누더기 법안이 되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미국 출장 기간 다수의 정재계 인사들과 만나 교류하며 엄혹한 미중 패권전쟁의 현장을 확인하는 한편 뉴삼성 전략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을 것으로 본다. 여기에 파격적인 인센티브로 외국의 공장을 유치하려는 미국 지자체의 행보와 한국의 지지부진한 상황이 오버랩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그 연장선에서 아직 가석방 상태인 이 부회장의 경영활동에 여러 제약이 많은 점도 새삼 회자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