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지난 14일 미국 출장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본격 경영 행보가 시작됐다. 그가 경영 일선에 나서지 않는 동안 삼성이 많은 중대 결정을 보류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행보라는 평가다. 

반도체-배터리 부문의 결단

삼성전자의 반도체 인프라와 관련된 문제는 이재용 부회장이 가장 먼저 해결할 문제다.

사실 반도체 문제는 이번 미국 출장의 가장 주된 목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삼성전자의 현재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후 삼성전자 파운드리 부문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인프라 확장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170억달러(약 20조원)을 투자해 미국 현지에 신규 파운드리 공장을 짓겠다고 공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일선 경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동안 공장 부지와 건립의 확정은 계속 미뤄져 왔다. 그렇기에 이재용 부회장은 이번 방문에서 미국 각지의 공장 유치 요청을 검토하고, 오랫동안 미뤄졌던 사안을 확정지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에서 삼성전자를 크게 앞서고 있는 대만의 TSMC는 최근 미국-일본-유럽 등 세계 각지에 생산 인프라 확장을 선언했다. 

만약 이재용 부회장이 출장 일정 중이나 직후에 공장의 부지가 확정되면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인프라 확장에도 속도가 붙게 된다. 현재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는 텍사스 주 테일러 시가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박도 존재하는 만큼 상황은 더욱 지켜봐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출처= 삼성SDI
출처= 삼성SDI

한편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이번 출장에서 전 세계 초미의 관심사인 전기차용 배터리사업과 관련한 행보도 보여 줄 것 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근 삼성SDI가 대내외적 호재가 겹쳐 실적을 개선한 가운데 미국 시장 진출을 선언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10월 삼성SDI는 자동차 기업 스텔란티스와 손잡고 2025년 상반기부터 미국 현지에서 연 23GWh 규모로 전기차 배터리 셀, 모듈 등을 생산한다. 삼성SDI는 이를 통해 중국, 헝가리, 미국 등으로 생산 거점의 영역을 확장하며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이 부회장이 특별한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가적 위기의 ‘해결사’ 역할도?   

이재용 부회장은 출국 전에 기자들과 간략하게 나눈 대화에서 “(출장 일정 중에) 모더나 본사를 방문할 것”이라고 직접 말한 바 있다.

현재 위드 코로나에 들어간 우리나라는 이후의 추이에 따라 코로나19 백신의 재고가 추가로 필요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 부회장의 모더나 방문은 백신 재고의 안정적인 추가 확보를 위한 일정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현재 품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요소수·염화칼슘 등의 재고 확보를 위해 이 부회장이 미국 현지의 네트워크를 가동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다시 그려지는 삼성의 '청사진'

반도체·배터리·요소수 등과 관련되는 이 부회장의 행보는 ‘대외적’인 문제다. 이 부회장의 출장으로 시작된 본격 경영 행보는 동시에 삼성 ‘내부의’ 문제도 해결되는 계기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후에 예상되는 삼성의 내적 변화는 바로 조직 및 인사의 재구성이다.

이 부회장이 일선에 부재하는 동안 삼성의 인사와 조직구성에는 여러 가지 변화들이 있었으나 ‘대대적’이라고 할 만한 사례는 많지 않았다. 재계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이 다시 삼성 경영의 중심에 서게 되면 그간 보류된 삼성 내부의 변화가 일시에, 대대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코로나19라는 위기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기록한 호실적과 더불어 삼성 주요 계열사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보여준 활약은 분명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라면서 “그러나 시대가 변화하는 기로에서 늘 대외적으로, 내부적으로 과감한 변화를 추구한 삼성의 전례를 감안하면 ‘포스트 코로나’라는 새로운 시대에 대응해야한다는 차원에서 올해 삼성전자를 포함한 주요 계열사들의 인사에는 매우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미중 정상회담이 벌어지는 시기 이 부회장이 현지에 머물며 다양한 파트너들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글로벌 네트워크의 본격적 가동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13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를 찾아 EUV 장비를 살펴보는 삼성전자 경영진들. (왼쪽부터) 마틴 반 덴 브링크(Martin van den Brink) ASML CTO,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장 부회장, 피터 버닝크(Peter Wennink) ASML CEO. 출처= 삼성전자
지난해 10월 13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를 찾아 EUV 장비를 살펴보는 삼성전자 경영진들. (왼쪽부터) 마틴 반 덴 브링크(Martin van den Brink) ASML CTO,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장 부회장, 피터 버닝크(Peter Wennink) ASML CEO. 출처= 삼성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