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붕구 코코타투자조합 대표.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조붕구 코코타투자조합 대표.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이코노믹리뷰=양인정 기자]  기업구조혁신펀드가 나온 지 이제 4년이 되어간다. 정부가 관치중심으로 해오던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을 자본시장에서 해보겠다고 추진한 민관합동 펀드였다. 지난해 1조원을 조성한 펀드는 올해 2조원까지 확대됐다. 펀드규모의 증액에도 중소기업들이 이 펀드의 혜택을 받기는 쉽지 않다. 자금난에 몰린 작은 회사가 보수적인 운용사를 설득해야 하는 구조에서 회사는 그럴만한 물적, 인적 기반이 없어서다. 본래 손실 위험이 큰 한계기업이니 운용사 투자 기준은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한계 중소기업은 운용사의 눈에 들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죽을 운명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코코타투자조합’의 조붕구 대표가 이런 위태로운 기업들에 투자하겠다고 나섰다. 그의 사무실에서 첫 만남을 가졌을 때 조 대표는 거의 40분을 늦었다. 겨우 도착한 그는 숨을 고르고 있었다. 분주해 보이는 그는 ‘투자를 요청한 한 기업가와 은행에서 일을 보느라 늦었다’며 양해를 구했다. 

안부를 주고받을 틈도 없이 그는 '은행에서 한 그 일'을 말했다. 조합에 찾아온 한 기업에 대한 얘기였다. 투자를 마무리하고 은행의 기업여신 담당자와 연계를 해줬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기자는 금감원이나 검찰청사의 시위현장이 아닌 곳에서 조붕구 대표를 보는 것이 낯설었다.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의 피해자들을 규합해 지난 5년간 정부기관과 은행을 상대로 투쟁을 해온 그였다. 몇 달 전까지 키코(KIKO)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의 위원장이 그의 직함이었다. 조 대표가 있던 곳은 항상 호소와 성명, 규탄이 있었다. 한동안 뉴스에서 그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조 대표는 투자한 회사의 얘기를 이어갔다. 그를 찾아온 기업가는 이미 한 번의 사업실패로 '채무불이행자'로 등재된 상태였다. 자신의 이름으로는 더 사업이 어려웠던 대표는 아들의 명의로 사업체를 만들었는데, 사업이 부진해 이제 아들마저 채무불이행자가 됐다. 대표이사의 신용이 '바닥'이니 더 이상 금융이 어려웠다. 그런데 회사의 상품과 사업의 아이템이 괜찮았다는 것이다. 조 대표는 '아, 돈만 대주면 시장에서 충분히 팔리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코코타' 투자조합을 통해 크라운딩 펀드로 이 회사에 5,000만원을 투자했다. 회사는 이 투자금을 운영자금으로 사용했고 투자조합은 실사 전문가를 파견해 회사의 가치를 다시 산정했다. 다음 수순은 세일앤리스백. 공장과 그 부지를 팔고 회사가 그 공장을 다시 빌려서 쓰는 일이다. 투자 조합을 찾았던 회사는 20억원을 확보했다. 

공대위 위원장직을 물려주고 그가 투자를 한다고 하니 궁금증이 커졌다. 투쟁가가 아닌 투자자로 변모했다는 것인데, 지쳐서 포기했던 것일까. 

조 대표는 "공대위의 활동은 궁극적으로 피해기업에 대한 실질적 보상을 받게 하는 것에 있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너무 험했다. 금감원을 넘으면 금융위를 넘어야 했고, 그다음은 검찰, 그다음은 법원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공대위 활동을 접고 한동안 유명한 산을 찾아 올랐다고 했다.

조 대표는 "투쟁의 방식으로 피해 기업을 돕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며 "실질적인 도움을 줄 방법을 생각하니 투자가 그 대안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한계기업을 살려 도움을 주겠다는 그의 생각은 변함이 없어 보였다. 투쟁의 방식에서 투자의 방식으로 전환됐을 뿐. 

조 대표의 투쟁활동에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공대위가 목소리를 높이면서 금감원이 키코상품의 불완전 판매에 대해 재조사를 결정했다. 그는 "과거 키코 피해 기업들은 마치 환투기꾼으로 보는 시각이 컸다. 그것을 바로 잡았다는 점에서 명예는 회복됐다"고 의미를 뒀다. 

조붕구 코코타투자조합 대표가 한계기업의 투자 시장 활성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조붕구 코코타투자조합 대표가 한계기업의 투자 시장 활성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 “경영해 본 사람, 기업가치 보는 눈 달라”

그가 대표로 있는 코코타 투자조합은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가 출자해 설립했다. 조 대표는 이 협회의 회장도 겸하고 있다. 코코타가 투자하는 회사는 구조조정이 필요한 기업들이다. 기업신용등급이 바닥이거나 한계기업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조합은 '전문위원'와 '투자자 그룹'으로 구성됐다. 전문위원 명단에는 자산운용 전문가, 회계사, 변호사, M&A전문가, 감정평가사 등이 있었다.

특이한 점은 투자자 그룹이다. 투자자 대부분이 자본가가 아닌 기업가들이다. 

"기업가들을 투자그룹으로 구성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라는 질문에 조 대표는 "운용사나 펀드 전문가가 보는 시각과 기업가가 보는 시각이 다르다. 수익률을 올리는 데 있어 과거 재무제표만을 보게 되면 어려운 기업에 자금을 공급할 수 없다"며 "중요한 것은 그 기업이 살아날 만한 기업가치를 가지고 있냐는 것인데, 그것을 사업을 해 본 사람이 평가하겠다는 것이다"라고 투자자의 구성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 대표는 "회사를 운영하다며 보면 유동성 위기 등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곤 하는데, 기업가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게 된다"며 "이렇게 습득한 경험을 한계기업에 접목해 회사도 살리고 수익도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투자방향을 밝혔다.

투자자들이 기업가들로 구성되면 M&A에도 유리한 점이 있다. 투자받는 회사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업을 ‘투자자 그룹에서 찾아 매칭’시킬 수 있다. 투자조합의 구조를 짤 때 조 대표의 기획이 이 지점에 집중돼 있었다.

하필이면 좋은 기업을 놔두고 한계기업이나 구조조정 대상기업에 투자하겠다는 것인가. 그 이면에는 ‘아쉬움’이 자리잡고 있었다. 키코 사태 당시 그는 유망한 회사들이 쓰러져 가는 것을 목도했다.  회사의 성장가능성을 보고 투자를 해 주는 곳이 있었다면 그렇게 많은 기업들이 파산하거나 기업가들의 구속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그는 늘 생각해왔다. 당시에는 법정관리 기업이나 한계기업에 투자를 해 수익을 올리는 DIP파이낸싱도 생소했던 때였다.

간혹 투자의향이 있는 기관이나 운용사도 한계기업에 건실한 재무제표를 바랐다. 무너져 가는 기업이 돈을 구하는데 재무제표가 좋을리 없다.  

한계기업에 대한 투자에는 재무제표를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는 것이 조 대표의 확고한 지론이다. 그는 코코타를 통해 전향적인 투자방식을 펼치고 있었다. 과거지표를 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돈이 될 만한 그 무엇을 보겠다는 것. 그것이 성공하면 회사도 살고 투자도 수익을 낼수 있게 된다. 그것은 또 하나의 투자 ‘시장’을 이룬다.

어려운 기업에 대한 관심은 그의 사업 이력과도 무관치 않다. 그는 사회운동가로 알려졌지만, 150여 곳의 나라에 중장비를 공급하는 회사의 대표이사이기도 하다. 한 때 잘 나가던 회사는 파국을 맞았다.

조 대표의 회사도 키코 상품에 가입했다가 회사가 파산의 문턱까지 갔다. 법정관리를 받고 파산을 겨우 면했다. 그 과정에서 회사의 영업라인은 모두 망가졌다. 그가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를 조직하고 키코 공대위 활동을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는 채무자를 위한 시민단체 조직에도 관여했다. 채무상담과 채권소각 운동을 해온 시민단체 ‘주빌리은행’의 창립멤버 명단에는 그의 이름도 올려져 있다. 

조붕구 코코타투자조합 대표가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조붕구 코코타투자조합 대표가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 ‘망해 본 경험’ 속 다양한 투자기법 터득 

의욕이 아닌 전문적인 투자 노하우가 있을지 의문이었다. 어찌됐건 투자대상은 손실위험이 큰 한계기업들이다. 

그는 이에 대해 파산의 경험 속에서 다양한 투자방법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키코 사태로 회사들이 쓰러져 갔을 때, 그는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를 조직해 파산에 처한 기업에  실험적인 구조조정 투자를 해나갔다. 지금은 연매출 200억원을 달성하고 있는 갑산메탈이 그 대표 사례다. 

2015년 회생절차를 밟고 있었던 갑산메탈은 크라우드 펀드와 DIP파이낸싱을 유치해 기사회생했다. 조 대표는 그 투자유치의 국면을 주도했다. 일성하이스코, 유한기술, 뉴영테크 등 여러 기업들이 협회를 통해 재기에 성공했다. 협회는 이 과정에서 투자 노하우를 축적해 나갔다.

조 대표는 코코타투자조합에 기업회생지원협회의 투자 노하우를 접목시키고 있었다. 크라우드 펀딩 회사인 오마이컴퍼니의 지분 인수에 나선 것도 이런 맥락과 닿아 있다.

조 대표는 “온라인으로 투자할 기업을 찾고 기업가의 눈으로 투자를 결정한 다음 재무구조 개선에 회계사와 기업 전문 변호사들이 투입된다”며 “향후 이 전문가들이 사외이사로 파견돼 사후관리까지 하는 일련의 과정은 어느날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고 자신감을 들러냈다. 

그는 자신의 가야할 길과 해야 일을 찾은 듯 했다. 조 대표는 “나는 여기에 최적화 되어 있다고 본다. 내가 지금 이 일을 하려고 그렇게 고생을 했나보다”고 미소를 짓기도 했다.   

조붕구 코코타투자조합 대표.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조붕구 코코타투자조합 대표.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  “소외된 한계기업 투자시장으로 유입시키고파”

몇일 후 조 대표를 다시 찾았다. 그날도 그는 한 기업인과 구조조정을 논의하고 있었다. 코코타가 오마이 컴퍼니를 통해 긴급 공모자금을 투입한 회사의 대표였다. 

회사는 자산을 재감정받고 부채비율을 기존 450%에서 130%로 낮춘 상황이었다. 회사는 곧 세일앤리스백으로 자산 유동화를 앞두고 있었다.

조 대표는 이 회사에 대한 코코타 투자와 관련해 “자산유동화 절차가 끝나는 대로  20억원의 유동성 자금을 확보할 것이고 CC2등급의 신용도를 A1등급으로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신용등급이 상승되면 더 많은 투자를 유치해 IPO를 진행 할 것”이라고 회사의 구조조정 과정을 밝혔다. 

포부를 물었다. 그는 공공기관 투자방식의 문제점부터 들었다. 투자 받을 회사를 너무 잰다는 것이었다. 요구상황이 너무 까다로워 투자유치가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조 대표는 지적했다. 중소기업이 한계에 봉착했을 때 법정관리만이 유일한 구조조정 수단이 되는 상황은 이래서 나온다.

그는 코코타투자조합이 이와 같은 간극을 메울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조붕구 대표는 “정부의 기업 구조조정 정책이 관치에서 시장 중심으로 선회한 만큼, 코코타가 자본시장에서 한계기업 투자에 하나의 대안으로 부각되길 바란다”면서 “그 후 다른 투자자들과 자본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나가고 싶다”고 의지를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경쟁력 있는 회사들이 파산하는 것은 국가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마이너스다. 반대로 이런 회사를 살리게 되면 경제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라며 “회사가 망하면 기술력은 사장되고 근로자들은 일할 곳을 잃게 되는데, 전문 투자 조직이 그런 회사를 살린다는 것은 곧 사회경제적으로 중요한 기능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현재 코코타투자조합은 모두 46곳의 회사에 대해 투자와 구조조정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