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이 지난 지 한 달이 안 된 손자를 신생아 때 이용했던 침대나 유모차에 태워보면 그간 얼마나 자랐는지를 실감나게 알게 됩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아기 침대가 꽉 차 여유 공간이 없어졌구요, 유모차는 무릎부터 발목까지의 길이 이상 부족해 그만큼은 유모차 밖으로 나와 계단식 발판으로 지지하게 되어있더군요. 물론 울거나 옹아리를 하는 목소리도 우렁차게 커져 사내 아이 같아졌고, 자면서 움직이는 행동반경도 커져 자다가 깬 밤에 위치가 바뀐 걸 보고 깜짝 놀라기도 한다고 하네요. 그렇게 몸무게나 키 등은 커졌는데도, 아직 완전히 목을 가누지 못하고 여전히 누워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기는 단계까지 가려면 더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런데 가끔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유모차를 타고 쳐다보는 눈빛이나 표정이 너무 멀쩡해서 우리가 있는 데로 걸어오라고 하면 걸어 올 듯한 착각이 듭니다.

그렇게 평온한 시절의 아이에게 얼마 전 놀랄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4개월이 된 아이를 가진 딸애가 10개월 된 아이를 가진 절친과 각자 아이를 대동하고 만난 겁니다. 숱하게 기회를 엿보다 우리 집에서 만나게 된 게지요. 그간 얼마나 기다려왔던 순간이었을까요? 그 넷이 만나 집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 적잖이 걱정되었었지요. 그날 아침 집을 나서면서 ‘둘이 동시에 울면 난감하겠다‘고 일단의 우려를 전하고 나섰는데 실제 상황은 휠씬 더 심했나 봅니다. 그 밤 아이를 데리고 잔 집 사람이 아이가 자다 여러 차례 흠칫 놀라며 우는 상황을 겪었다면서 간밤 손자 상황을 아침에 얘기해주었습니다. 전날 낮 동안 벌어졌던 일을 들어보니 손자의 곤욕이 이해되었습니다. 10개월 형(?)은 지금 걸을 수 있고, 걷는 것 보다 기는 게 빠른 아이였습니다. 걸을 수 있는 형에게 누워만 있는 아이는 너무 건드리기 쉬운 대상이었겠지요. 10개월 된 아이의 특성을 잘 몰라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아이의 얼굴 그중에서도 머리를 집중해서 몇 번이나 쥐어 잡아 울렸고, 그이후도 계속 잡으려했다고 합니다. 또한 우리 아이가 젖을 먹거나 누워서 모빌이라도 볼라치면 십개 월된 그 형이 우유병을 잡으려 하고, 자기도 모빌을 보겠다고 떼를 썼다고 합니다. 결국 딸애는 자기애를 보호하느라, 딸 친구는 여기 저기 집안 구석을 돌아다니고, 아이를 건드리려는 자기애를 잡으려 종일 씨름을 한 게지요. 나중에는 서로 지쳐서 빨리 헤어지자고 얘기하고 서둘러 돌아간 겁니다. 왜 안 그렇겠는지요?

문득 ‘식물에서 교육을 배운다’라는 책에서 아프리카의 기린과 현지에서 아카시아 나무라 부르는 두 종 사이의 장군 멍군이 생각났습니다. 현지 아카시아 나무는 기린이 먹을라치면 소화에 지장을 주는 독성 물질을 잎에서 분비합니다. 그걸 알아챈 기린이 먹기를 포기합니다.

아카시아 나무는 냄새를 주변에 퍼트려 이웃 나무들도 그런 준비를 하도록 해 기린의 공격을 막는다고 하네요. 그런데 그 속성을 이미 아는 기린은 원래 먹으려 했던 아카시아 나무로부터 100미터 정도를 이동해서 무방비 상태의 잎을 먹는 겁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 할까요? 누워있는 우리 아이와 6개월 앞선 형의 차이가 꼭 기린과 아카시아 나무의 차이처럼 뛰어넘을 수 없는 간격으로 생각되어졌습니다. 그만큼 오뉴월 하루 햇빛의 위력은 대단한 거겠지요.

누워서 평온하게 자는 녀석을 바라봅니다.

어제는 6개월 앞선 형에게 사회 생활하느라 시달렸고, 오늘은 예방주사를 맞고 ‘이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고 생각하며 앙 울었을 듯합니다. 그럼에도 집이라는 온실에서 벗어나

비와 바람도 맞고, 소음에도 놀라고, 파란 가을 하늘도 보며 그렇게 성장의 계단을 한 단계씩 올라서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