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지현 기자] #. 2018년 5월. 30대 남성 A씨는 버스에서 레깅스 입은 여성 B씨 하반신을 8초간 촬영한 이유로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일명 '레깅스 몰카'로, A씨 죄목은 '성폭력'이었다. 1년 뒤 A씨는 2심에서 무죄를 판결받았으나 지난해 12월 대법원은 2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낸다.  

#. 2021년 10월. 서울 시내 오피스텔에 사는 40대 여성 C씨는 최근 퇴근길 집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무척 당황했다. 총 6명 여성 중 4명이 몸매 굴곡이 드러난 레깅스 차림이었기 때문. 좁은 공간 영향인지 같은 여성인데도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는 C씨. 그녀는 "민망하다는 생각마저 구시대적 발상인지 '레깅스女(녀)'가 이토록 많아졌다는데 더 놀랐다"고 말했다.

레깅스(Leggings)가 청바지를 대체하는 시대가 왔다. 시선을 강탈하는 쫄쫄이 바지란 말도 옛말. 주변을 돌아보면 집앞에서도, 헬스장에서도, 마트에서도 두꺼운 스타킹 같은 레깅스 착상 여성들이 즐비하다. 요가, 필라테스 등 실내(Indoor)에서 시작된 레깅스는 이제 밖으로 뛰쳐 나왔다.

등산복 시장 대체한 애슬레져 열풍, 레깅스 성장의 기원

국내에서 레깅스패션 성장이 시작된 것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내 3대 토종 레깅스기업으로 꼽히는 뮬라웨어가 2013년 설립됐지만 가성비 레깅스로 자리잡은 안다르가 2015년 6월 등장하면서 한국인 체형에 맞춘 저렴한 레깅스로 대중들에게 입지를 다진 것이 국내 레깅스시장 형성의 기원이다. 이후 이듬해 글로벌 레깅스 1위 기업 룰루레몬이 한국에 상륙하며 인지도가 높아졌다. 

특히 룰루레몬 한국상륙 작전은 레깅스 열풍 불씨를 당겼다. 매장을 단순 제품을 판매하는 쇼룸이 아닌 체험형 공간으로 꾸미며 '커뮤니티'를 형성, 여성소비층을 유인한 것이다. 매장 내에서 요가뿐 아니라 필라테스, 발레, 명상 등 다양한 운동강좌가 정기적으로 열리고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소비자들끼리 정보도 주고받는 '사랑방' 전략이었다. 바이럴(입소문)에 강한 여성층이 서로의 패션을 탐색한 뒤 제품 구매로 이어지게 하는 입소문 마케팅이다. 이어 현재 1위 레깅스 브랜드인 브랜드엑스코퍼레이션 젝스믹스가 2017년 설립되면서 레깅스시장에 불이 붙는다. 

국내 레깅스시장 성장 배경을 살피려면, 지난 10년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눈여겨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 2005년 1조원대에 불과했던 아웃도어시장은 '주 5일제' 정착으로 2009년 이후 매년 20~30%씩 고속성장했고 2014년 7조원대까지 커졌다. 

그 중심엔 등산이 있었다. 전국 국토 70%가 산악지형인 한국의 지리적 특성과 국립공원 무료개방 및 베이비부머세대 은퇴가 맞물려 등산과 트레킹을 중심으로 한 아웃도어 열풍이 인 것이다. 여기에 웰빙에 대한 관심고조와 예능버라이어티 인기가 더해지면서 캠핑과 여행 인구가 늘었다. 겨울시즌엔 다운패딩이 인기를 얻으면서 아웃도어시장은 국내 패션시장 큰 축으로 자리매김한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주기가 긴 제품군 영향과 신생·수입 브랜드 난립으로 재고가 쌓였기 때문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때부터 따뜻한 겨울까지 지속됐다. 그리고 이내 소비자는 지갑을 굳게 닫았다. 결국 등산복 시장은 2014년을 정점으로 찬밥신세가 됐고 아웃도어시장은 스포츠웨어로 재편된다. 

일상생활에서도 착용 가능한 스포츠웨어를 의미하는 '운동(Athletic)'과 '레저(Leisure)'의 합성어 '애슬레저(Athleisure)' 용어가 번진 것도 이때였다. 삶의 질 향상으로 자기 계발과 건강을 중요시하는 분위기 형성된 영향이 컸다. 이어 주 52시간 근무제, 워라밸 문화가 확산되면서 애슬레저패션이 주축이 된 스포츠웨어에 소비자 관심이 급증한다. 패션의 한 축을 담당했던 등산·캠핑 중심의 아웃도어 트렌드는 인도어 중심의 애슬레저로 옮겨간다.

러닝·자전거 즐긴다...밖으로 뛰쳐나온 '운동女'

그렇게 애슬레저 바람을 탄 국내 패션시장은 기존 중장년층 남성 위주에서 20~30대 운동을 즐기는 젊은 여성으로 소비층이 이동·확대됐다. 덕분에 누가봐도 등산복인 '형형색색 패션'은 도시에서도 어울리는 생활복으로 유행이 변했고, 강렬한 원색 위주의 전통 등산복은 산에서 거리로 내려온다. 과거 등산이나 트레킹, 캠핑이 주도했던 시장성장은 급전환된 라이프스타일로 일상 속 아웃도어화 흐름이 시작된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여성의 스포츠시장 참여다. 과거 스포츠 관람과 헬스, 요가 등 인도어 스포츠에 머물렀던 여성들이 2015~2016년을 기점으로 밖으로 나온 것이다. 특히 건강한 몸매가 인기를 얻으면서 필라테스, 피트니스, 러닝, 자전거 등을 즐기는 '운동녀(운동하는 여자)' 활동이 활발해졌다. 

이들은 운동할때도 아무 옷이나 걸쳐입는 남성과 달리 기능뿐 아니라 일상복 수준의 자연스러움과 스타일을 갖춘 멋스러운 패션에 아낌없이 돈을 쏟아부었다. 운동 중에도 보디라인을 잡아줘 슬림해 보이는 '핏(Fit)'과 스타일리시해 보이는 '패션(Look)'을 놓치지 않았다. '핏슬레저룩(Fithleisure Look, 스타일리시하면서도 건강미를 강조한 피트니스웨어)'이다. 

'핏슬레저룩 붐'이 일면서 여성 소비자들은 스포츠시장의 강력한 소비층으로 대두되고 2016년과 2017년 스포츠웨어업계도 여성라인을 강화한다. 스포츠 매장, 특히 '우먼스' 매장도 확대됐다. 이곳은 요가나 필라테스, 스피팅/사이클링, 크로스핏을 즐기는 여성들이 모이는 일종의 '커뮤니티 공간'이 되며 크롭탑과 함께 입는 레깅스가 주목받는다.

'운동녀'들은 운동할 때 착용하는 옷과 신발을 일상생활, 출근시에도 활용하기 시작했다. 일례로 스피닝 클래스에서 입는 레깅스를 헐렁한 티셔츠나 코트와 매치하고 부츠와 함께 착용하는 '스트리트 패션'으로 번진 것이다. 건강을 의식하는 소비자들에게 애슬레저는 라이프스타일로 정착하고, 옷은 패셔너블해야 하지만 동시에 편안하고 기능성을 갖춰야 한다는 인식이 대두된다. 

韓 레깅스 시장 글로벌 3위 '우뚝'

애슬레저 열풍을 타고 스포츠웨어가 인기를 얻으면서 운동복과 평상복의 경계를 허문 대표 아이템 레깅스시장도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레깅스 시장 매출은 2016년 6,386억원에서 지난해 7,620억원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시장규모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미국(6조9,000억원), 일본(3조4,000억원)에 이은 글로벌 3위다.

현재 레깅스는 패션 메인 카테고리로 자리잡은 상태다. 지난해 초 발생한 코로나19가 레깅스 전성시대를 열었다. 한동안 내리막길을 걸으며 지지부진한던 패션시장에 심폐소생을 하고 있다는 말마저 나온다. 재택근무와 자택교육이 실시되면서 편안하면서도 근거리 활동에도 입기 좋고 운동복으로 활용할 수 있는  레깅스시장 팽창을 불러일으켰다. 

다만 레깅스시장은 과거 우후죽순 늘어났던 등산복 브랜드 난립과는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레깅스는 일상복을 넘어 여성뿐 아니라 남성 수요도 높아져 시장이 확대되고 있어서다. 과거처럼 단순하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트렌드로 생각하기엔 애슬레저는 강력한 '장르'로 인식되며 대중화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애슬레져 브랜드 젝시믹스를 운영하는 브랜드엑스코퍼레이션 관계자는 "애슬레저가 일시적 유행이 아닌 대중적 문화로 자리잡았다"며 "코로나19 팬데믹 종식 후에도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