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조1700억원. 이 수치는 업계가 추정하는 패션산업 전체 시장규모다. 이대로라면 지난해 21조7000억원에 비해 2.2%가량 성장하는 셈.

그러나 지난 2007년 23조3000억원까지 치솟은 기록도 있어 오르락내리락하는 패션시장 부침 현상을 그대로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 중 이너웨어시장 규모는 얼마나 될까? 패션시장 전체 규모라고 추정하는 22조원 안팎 수치도 업계에서 추산하는 만큼 정확한 규모는 될 수 없다.

속옷시장도 마찬가지. 딱히 어느 누구도 “얼마다”라고 단언하지 못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각자 나름의 계산 방식대로 필요한 수치를 얻어내고 있다.

실제로 적게는 5000억원에서 많게는 1조2000억원까지 얘기하는 협회나 연구소, 속옷업체가 있다.

어떤 카테고리를 속옷에 넣느냐, 산업 범주를 어떤 범위까지 인정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 되는 것.

다만 시장을 선도하는 속옷 대기업들에 따르면 1조2000억원 정도가 정설. 문제는 이 수치가 지난 3~4년째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데다 소비 패턴이 고가물건을 소량소비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는 탓.

여기에 속옷 자체 가격이 자꾸 내려가는 추세도 시장을 쪼그라뜨리는 이유라고 분석되고 있다.

이런 패션업계 부침 현상 추세에서 도드라지게 반대로 급주행을 하고 있는 아이템이 있다. 다름 아닌 ‘보이는 속옷’ 시장. 이 시장은 수년 전부터 매년 10% 이상씩 급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일단 업계가 추산하고 있는 수치로만 올해 1500억원에 이른다. 지난 2006년 800억원에 그치던 수치가 3년 만에 2배에 육박하는 수준으르 신장한 것.

특히 국내 빅5(신영와코루, 남영비비안, 좋은사람들, 트라이브랜즈, BYC)와 오픈마켓 정도만 포함시킨 데다 평년보다 이르게 반응을 보이는 시장을 감안하면 올해 추정치가 더 커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

한 속옷업체 관계자는 “대체로 매년 10% 정도 성장하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각 업체마다 20% 이상 신장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이를 감안하면 올해 시장 규모는 판단하기 힘들 정도”라고 설명했다.

6월 예정 여름라인 4월부터 풀어
이너웨어 업계는 때 이른 무더위가 고맙기도 하다. 실제 매년 시장 성장세를 주목하던 좋은사람들의 경우도 올해는 노출 관련 속옷 매출이 20% 이상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올해 노출 관련 속옷 라인도 대폭 강화해 뒀다.

‘예스’ 브랜드의 ‘Y-girl’라인이 바로 그것. 올해 초 새로운 라인으로 선보인 ‘Y-girl’라인은 여름라인을 올 4월부터 앞당겨 출시했다. 시장 반응이 이렇게까지 빠르게 올지 몰랐다는 게 이 회사 관계자의 전언.

비비안의 경우 검은색 브래지어 판매가 빠르게 늘고 있다. 검은색 브라는 화이트 색상 겉옷과 시스루 매치할 경우 대비 효과로 멋스러움을 더할 수 있는 아이템.

지난해 5월 900매 판매되었던 이 아이템은 이달 들어 1300매까지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오픈마켓 업계도 특수를 누리고 있다.

G마켓에 따르면 시스루룩과 잘 어울리는 ‘레오파드 브라팬트 세트’의 경우 5월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가량 증가하고 있다.

엉덩이 부분이 T자형으로 과감하게 드러나기도, 센스 있게 감추기도 좋은 아이템인 ‘T백-팬티’도 주간 평균 200건씩 팔려나가고 있다. 이는 5월 판매량으로 전월 대비 37%나 급증한 수치다.

업계에선 불황에 화려한 속옷이 잘 팔린다는 속설이 있긴 하다. 아무래도 불황일 때 비싼 겉옷을 사기보다는 저렴한 속옷을 구입해서 대리만족을 얻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큰 신빙성이 있는 얘기가 아니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미니스커트가 불황에 유행한다는 말이 있지만 그 반대의 사례(호황에 미니가 유행)도 많은 것과 맥락을 같이하는 셈.

업계에서는 불황에도 정도가 있다고 말한다. 불황이 적당할 때에는 어느 정도 소비가 가능해져서 비싼 겉옷보다 속옷으로라도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는 주장이 그중 하나.

또 불황이 심한 경우 디자인이나 취향에 따라 여러 벌의 속옷을 구입하기 어려워 기능성 위주의 속옷을 찾게 된다는 논리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명확히 검증되지 않아 정설로 보긴 힘들다. 가장 확실한 건 “속옷도 이젠 패션”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 경제학 이론을 빌리자면 속옷이 저관여 제품에서 고관여 제품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소리다.

"이상 고온 현상까지 겹쳐 ‘노출 속옷’이 때이른 호황을 맞고 있다. 이너웨어 전문 브랜드부터 오픈마켓까지 대부분 업체들이 전년 동기대비 20% 이상 매출 호조세를 이어가고 있다."

초 미니스커트와 더불어 보이는 속옷이 올여름 뭇 남성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것으로 보인다.

‘속옷도 패션’ 인식 확산 탓인 듯
올여름 패션업계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스타일은 바로 ‘시스루룩’. ‘비치는 옷감을 사용해 피부를 드러내는 스타일’을 말한다.

속살이 드러나니 속옷이 그대로 보여지는 것은 당연지사. 그런데 올여름은 이쯤에서 그치지 않을 듯싶다. 나노 미니스커트와 손바닥만 한 핫팬츠 열풍을 타고 속옷도 과감하게 겉옷 밖으로 뛰쳐나오고 있다.

실제로 브라컵이 보이는 스타일부터 청바지 위로 팬티가 그대로 드러나는 T백-팬티 등 제품들이 이상 고온 현상 호재(?)가 겹치면서 때 이른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애리 G마켓 패션총괄 차장은 “브라 끈 노출은 기본일 정도로 노출 패션이 인기”라면서 “노출 관련 매출이 5월 들어 1만5000건 판매되며 전년 대비 25%나 늘고 있다”고 밝혔다.

브라컵 노출까지 ‘과감’…해외 명품도 가세
노출 마니아들이 넘쳐나다(?) 보니 스타일 역시 과감해지고 있는 추세. 남성들이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과감한스타일이 올여름 거리를 점령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대표적인 아이템이 바로 T백-팬티. 추세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초미니스커트를 비롯 핫팬츠, 스키니진을 입을 때 가리기 위한 팬티에서 이제는 보여주는 팬티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

실제 허리라인에서 드러나는 밴드 부분만을 강조한 T팬티는 맵시 나게 노출하는 패션 아이템으로 패셔니스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여기에 해외 명품업체도 열풍에 가세하는 분위기. 패션시장을 선도하는 외국 브랜드답게 스타일 자체도 파격적이다.

명품 브랜드 ‘프라다(Prada)’는 올여름 신상품으로 브라탑(Bra Top)을 선보였다. 브라탑은 브라를 일상복처럼 재킷 안에 입거나 스커트와 함께 매치해 세련되게 연출할 수 있게 한 것.

매년 새로운 스타일링으로 업계를 이끌던 프라다가 과감한 브라탑 스타일을 선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 프라다코리아 관계자는 “여성성을 강조해 보인 것”이라며 “치마는 심플한 라인을 강조하고 겉에는 재킷으로 멋스러움을 더했다”고 밝혔다.

시장 선점 놓고 전운 감돌아
‘보여주는 속옷’이라는 대세에 따라 시장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이너웨어 브랜드들이 저마다 각자의 브랜드나 해외 유명 브랜드를 수입하는 형태로 시장 확장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

여기에 연예인 속옷 브랜드와 오픈마켓들까지 가세해 진검승부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게스 언더웨어가 올여름 선전포고를 예정하고 있다. 다음 달 6일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론칭쇼를 시작으로 한국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선다.

스타일리시와 기능성을 비롯해 실루엣 고기능까지 더해 선택을 받겠다는 전략이다.
좋은사람들은 리바이스 바디웨어를 내세웠다.

현재 명동 1호점을 시작으로 백화점 매장과 가두점 9곳을 확보했고 연내 30개 매장을 추가로 열어 매출 100억원을 올리겠다는 목표다.

이외에도 버버리와 돌체앤가바나, 빅토리아시크릿도 언더웨어를 국내에 론칭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김성배 기자 sbkim@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