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웨스턴디지털이 키옥시아 인수에 나선다는 외신 보도가 나온 가운데, 엔비디아와 SK하이닉스의 행보에도 시선이 집중된다. 이들은 웨스턴디지털의 키옥시아 인수합병'설'이 나오기 전부터 일찌감치 연대를 선언했으나 생각보다 다양한 난관에 부딪쳐 신음하고 있다.

출처=갈무리
출처=갈무리

엔비디아 '장탄식'

GPU 업계 최강자인 엔비디아가 영국의 암(ARM) 인수에 나서고 있으나 예상하지 못한 암초를 만났다. 영국 정부가 기술 유출을 우려해 엔비디아의 암 인수를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국 경쟁시장청(CMA)이 7월 엔비디아의 암 인수를 부정적으로 보는 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한 후 엔비디아의 암 인수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소프트뱅크는 5년 전 암을 243억파운드(약 35조원)을 주고 인수한 바 있다.

암은 반도체 칩 설계회사로 활동하면서 사물인터넷 시장에서도 두각을 보였다. 실제로 암은 저전력 반도체 설계도와 명령어셋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모바일 혁명을 발판으로 삼아 크게 몸집을 불린 상태에서, 사물인터넷 시대의 초연결 생태계 인프라 구축에 가장 근접한 기업으로 평가됐다. 소프트뱅크는 이에 착안해 전격적으로 암을 품은 셈이다.

문제는 소프트뱅크가 주목한 암의 핵심인 사물인터넷 시장의 성장이 부진하며 벌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암의 중국 지사 지분율이 현지 정부에 절반 이상 넘어가며 매출 구조 자체가 휘청이는 한편 소프트뱅크의 자금난이 심해지자 결국 엔비디아가 암을 품는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났다.

엔비디아의 큰 꿈이 이뤄지기 직전이었으나 업계에서는 큰 우려가 나왔다. 엔비디아가 모든 반도체의 '두뇌'를 설계하는 팹리스의 팹리스 암을 인수할 경우 기술 독과점 및 유용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엔비디아는 영국 정부의 태클까지 직면하며 사면초가에 몰렸다.

SK하이닉스도 '긴장'

SK하이닉스도 인수합병을 통한 몸집 불리기에 나섰으나 중국 반독점 당국의 규제에 걸려 지지부진한 분위기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0월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부 인수합병을 선언했다.

SK하이닉스는 인텔에게 70억 달러를 우선 지급하고 인텔의 낸드 SSD 사업(SSD 관련 IP 및 인력 등)과 중국 다롄팹 자산을 SK하이닉스로 이전하기로 했다. 이후 2025년 3월 SK하이닉스는 나머지 20억 달러를 지급하고 인텔의 낸드플래시 웨이퍼 설계와 생산관련 IP, 연구개발 인력과 다롄팹 운영 인력 등 잔여 자산을 인수하기로 했다.

인텔은 계약에 따라 최종 거래 종결 시점까지 다롄팹 메모리 생산 시설에서 낸드 웨이퍼를 생산하며 낸드플래시 웨이퍼 설계와 생산관련 IP를 보유한다.

SK하이닉스 이석희 CEO는 “낸드플래시 기술의 혁신을 이끌어 오던 SK하이닉스와 인텔의 낸드 사업부문이 새로운 미래를 함께 만들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다”면서 “서로의 강점을 살려 SK하이닉스는 고객의 다양한 요구에 적극 대응, 낸드 분야에서도 D램 못지않은 경쟁력을 확보하며 사업구조를 최적화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가 인텔을 품을 경우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의 격변은 불가피하다. 웨스턴디지털의 키옥시아 인수와 비견되는 판의 변화가 예상된다.

무엇보다 SK하이닉스는 낸드플래시를 통해 더욱 큰 꿈을 꾸고 있다. SK하이닉스는 CTF(Charge Trap Flash) 기반 96단 4D 낸드(2018년)와 128단 4D 낸드(2019년) 플래시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등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했기 때문이다. 그 연장선에서 팹 건설 확충에 나서며 규모의 경제를 키우려는 노력도 병행했다.

128단 기반의 모바일 솔루션과 기업용 SSD 제품 판매를 확대해 3분기에 흑자전환을 이루고, 연말부터는 176단 양산에 돌입한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문제는 중국 반독점 당국의 심사 지연이다. 미중 반도체 패권 전쟁이 치열한 가운데 유일하게 중국 당국만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 인수를 승인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웨스턴디지털의 키옥시아 인수와 더불어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 인수도 시장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업계가 숨 죽이고 있는 이유다.

출처=SK하이닉스
출처=SK하이닉스

인텔의 선택과 집중

SK하이닉스에 낸드플래시 사업부를 넘기는 인텔의 움직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텔은 지난해 말 “제국의 붕괴”를 경험했다. 1990년대 앤디 그로브의 시대가 끝나고 시작된 오랜 위기의 터널이 끝나지 않은 가운데 애플은 WWDC 2020을 기점으로 탈 인텔을 선언했으며 혈맹으로 불리던 마이크로소프트(MS)도 인텔을 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MS가 인텔을 버린 것은 충격이 컸다. 1980년대 초반 IBM이 16비트 컴퓨터 기술을 바탕으로 표준을 완성한 후 CPU와 같은 하드웨어 생태계는 인텔이, 윈도의 소프트웨어 기술은 MS가 맡아 시장을 선도하는 것이 일종의 공식처럼 여겨진 바 있다. 앤디 그로브가 인텔 인사이드 정책을 펼칠 수 있었던 결정적 배경으로는 인텔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강했기 때문이지만, MS의 윈도라는 강력한 우군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다만 스마트폰이 등장하며 인텔과 MS의 동맹은 크게 흔들렸으며, ARM 기반 CPU가 새로운 시대에 특화된 강력한 존재감을 자랑하자 결국 MS도 인텔의 손을 놓아 버렸다.

반전은 팻 겔싱어 CEO의 등판과 함께 시작됐다.

그는 지난 3월 밥 스완을 대신해 인텔 CEO에 올라 처음으로 연 미디어 간담회에서 IDM 2.0 시대를 선언했다. 밥 스완이 지난해 CES 2020에서 "파운드리 파트너들과 협력할 것"이라며 탈 IMD 전략을 가동했다면, 팻 겔싱어는 오히려 IMD 전략을 강화해 파운드리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겠다 강조한 셈이다. 실제로 그는 간담회를 통해 "7나노 공정 생산이 가지고 있던 문제를 일부 해결했다"면서 "2023년 7나노 공정 제조를 내부에서 진행할 것"이라 자신했다.

이후로는 개혁의 연속이다. 특히 파운드리에 집중하며 미국 중심의 투자 로드맵을 가동하는 한편 막대한 투자도 약속했다. 이미 200억달러(약 22조6,600억원)를 투자해 애리조나 지역에서 신규 반도체 공장 2개를 건설하겠다 밝혔다.

기술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의지도 강하다. 팻 겔싱어 CEO는 7월 27일 인텔 액셀러레이티드를 통해 2024년 2나노 공정의 20A를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2025년에는 인텔18A가 목표다. TSMC 및 삼성전자가 아직 3나노 공정 청사진을 그리는 수준이지만 인텔은 파운드리 역량 강화를 통해 2나노 로드맵을 전격 선언한 셈이다.

인텔은 파운드리 회사인 글로벌파운드리(GF) 인수설에도 휘말렸다. 최종적으로 ‘없었던 일’이 되어가는 분위기지만 인텔이 파운드리 시장에서 공격적인 투자나, 혹은 의미있는 인수합병에 나설 것이라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