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십여 일 전 무더위가 맹렬할 때 코로나 와중이라 조심스럽지만 주말을 이용해 전시회를 다녀왔습니다. 화단에 흔히 ‘왼손 없는 무학의 화가’로 알려진 한국화가 박대성(76)의 전시였습니다. 전시된 그림에는 대작인 금강산 설경과 불국사 설경 같은 눈 그림이 계절을 뛰어넘어

넓게 펼쳐졌습니다. 실제로 금강산 겨울 모습을 그린 ‘금강설경’의 작품 제작 뒷얘기를 들으니

전시장 입구에서 벌써 시원해졌습니다. 영하 20도가 넘는 겨울 금강산 현장을 직접 보며 스케치를 하려 먹물을 준비해갔는데, 당연히 꽁꽁 얼어 버렸겠지요. 마침 그때 가져간 도수가 높은 술인 고량주를 이용한 먹물로 재빨리 스케치를 했다고 하네요. 당시 스케치한 작품이 그랬으니까, 거기 전시된 그림에서는 술 냄새도, 겨울 찬바람도 없었습니다만 그래도 당시 추위는 온전히 느껴졌습니다.

그런 배경을 알기에 금강 설경 그림 앞에서 그림을 더 꼼꼼히 보게 되었습니다.

눈 덮인 산봉우리나 소나무 등을 색의 짙음과 옅음을 말하는 농담(濃淡)의 차를 둔 먹(黑)으로 표현하고, 나머지 여백은 다 눈이었는데, 그게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 한참을 붙어있었습니다. 특히 단지 종이 여백으로 남아있는 눈이 먹으로 묘사된 바위산, 소나무, 하늘과 적절하게 대비되어 백색의 눈으로 너무 실감나게 표현된 것이 신기했습니다. 그래서 서양화처럼 눈에 흰색을 입혔나하는 호기심이 일어서 바위에 내려앉은 눈과 그림 가장 구석의 남은 여백의 종이 흰색과 비교해보는 촌극도 벌였죠. 전시장을 나오자 그가 이번 전시회를 열면서 관람객들이 무더위에 설경을 보며 더위를 극복하라는 기원을 했는데, 그 바람대로 시원함을 넘어 서늘해졌습니다.

더구나 어려서 부모 잃고, 남은 팔 하나의 기구한 운명을 극복하고, 살아남아서

꽉 막힌 현실에서도 2022년 미국 전시를 말하는 노화가의 활달함에서 서늘함을 넘어

진정의 가을 열매가 생각되어졌습니다. 그의 호는 소산(小山)입니다.

그의 할아버지가 지어준 건데 처음에는 안 좋았다고 합니다.

대산이 아니고 소산이어서 그랬다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작거나 커도 산은 산이라는 것을.

그렇게 겸손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오늘을 지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그의 작품 전시가 있던 경주에서 소동이 있었습니다.

그의 대작 그림은 가로는 물론 세로도 길어서 전시장 바닥까지 작품이 펼쳐지는데,

부모와 함께 전시장을 찾은 꼬마가 그만 그림을 밟고, 미끄럼틀 놀이를 했으니...

전시장 측의 관리 부실이나 그 부모를 향해 전시장에서의 예의가 부족함을 탓할 만도 했지만, 더 이상 문제 삼지 말자고하며, 그 아이의 소동으로 자기가 유명해졌다고 말한 겁니다.

그러며 ‘그 아이는 장차 그림사랑이 될거라’고 덕담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소산으로서 대산 모습, 대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그였습니다.

조병화 시인의 ‘9월 시’가 생각납니다.

“인간은 누구나/스스로의 여름만큼 무거워지는 법이다/스스로 지나온 그 여름만큼

/그만큼 인간은 무거워지는 법이다/또한 그만큼 가벼워지는 법이다

/그리하여 그 가벼움만큼 가벼이/가볍게 가을로 떠나는 법이다”

그에게서 제대로 익은 가을 열매가 생각되었습니다. 그 열매는 타인에게는 가볍고 관대하지만, 스스로에게는 엄격하고 무거워 세상에 꼭 필요한 열매이지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