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애플이 애플카 개발을 위해 최근 실무진들을 한국에 파견한 것으로 11일 확인됐다. 자동차 부품 업계 관계자는 "애플에서 애플카 실무진들이 최근 국내로 들어왔고 비밀리에 LG 및 SK와 접촉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임원급이 아니라 말 그대로 애플의 실무진들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디지타임즈도 9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애플카 실무진이 최근 한국을 방문해 애플카 사업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업계에서는 한 때 애플이 애플카 로드맵을 준비하며 현대차, 혹은 기아 등 다른 완성차 업체들과 함께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할 것으로 봤다. 그러나 완성차 업체들이 애플에 종속될 것을 우려하며 협력에 선을 긋자 애플은 자사 중심의 수직계열화 전략으로 선회했다. 애플카를 직접 설계한 후 하드웨어 제조사들에게 부품 등을 납품받는 방식을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애플의 애플카 담당 직원들이 한국에 들어온 것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다.   

독이 든 성배, 애플카
애플은 2014년부터 프로젝트 타이탄을 준비했으며 2015년에는 테슬라 직원을 연봉 60% 인상 조건으로 스카우트하는 한편 2018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교통당국으로부터 자율주행차 시범 운행허가를 받은 바 있다. 그 연장선에서 애플카 등장을 위한 다양한 실험에 나서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애플카 로드맵은 상당부분 부침을 겪기도 했다. 고 스티브 잡스의 측근인 밥 맨스필드(Bob Mansfield)가 은퇴하며 그가 주도하던 프로젝트 타이탄이 휘청인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으며, 애플이 증강현실에 집중하는 한편 퀄컴과 특허분쟁을 겪으며 5G 아이폰 출시에도 허덕였기 때문이다.

반전은 지난해 말 애플 내외부에서 애플카 비전 로드맵이 일부 공개되며 시작됐다. 당장 애플이 애플카 비전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는 구체적인 단서도 나오기 시작했으며 닛케이 등 외신은 지난해 12월 22일 애플이 2024년을 겨냥해 자율주행 전기차를 개발할 것이라 보도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연료전기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으며 전기차의 가격을 대폭 낮추는 점도 고민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애플의 인공지능(AI) 수석 부사장인 존 지안안드레아(John Giannandrea)가 애플의 프로젝트 타이탄 부서를 총괄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문제는 애플카를 현실로 끌어낼 수 있는 전략의 부재다. 애플이 당장 자동차 공장을 가동할 수 없는 상태에서 애플카는 필연적으로 자동차 업체와 협력해야 탄생할 수 있지만, 막상 애플의 손을 잡으려는 완성차 업체들이 없었다.

완성차 업체들이 걱정한 것은 애플 종속성 강화다. 애플이 ICT 패러다임 전략을 가동해 단숨에 완성차 업체의 정점에서 전체 산업을 지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결국 애플은 애플카 자체설계를 기반으로 외부 업체와의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후로는 애플카의 철학을 다듬는 작업이 이어졌다. 팀 쿡 애플 CEO는 4월 5일(현지시간) 미국의 유명 팟캐스트 스웨이(Sway)를 통해 애플카의 비전을 언급하며 프로젝트 타이탄 등 애플카 로드맵을 거론하지 않았으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를 연결하는 것이 애플의 특기며 그 핵심 기술을 확보할 것이라 밝혔다. 

나아가 그는 “자율주행 기술이 미래차의 핵심”이라며 “약간 멀리서 보면 자동차는 로봇과 비슷하다”고 강조했다. 모빌리티 플랫폼의 작동이 곧 로보틱스의 비전과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현대차의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 등을 통해 미래차의 핵심 프레임을 로보틱스와 연결하는 장면이 다수 연출되는 가운데 애플도 미래 플랫폼의 핵심인 미래차의 비전을 로봇에서 찾은 장면이 의미심장하다.

배터리 큰 그림에 LG 전장, SK 기반 모빌리티
애플은 완성차 업체와의 협력에 선을 그으면서도 자체 애플카 비전을 선택했다. 그 연장선에서 애플카 실무진이 국내를 찾아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한 것을 두고 업계에서는 "배터리 협력 파트너를 찾으려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애플 실무진들은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과 집중적으로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전기차로 움직이는 애플카의 가격 경쟁력을 결정하는 것이 배터리며, K-배터리의 존재감이 최근 선명해지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애플 실무진들의 방문 동기는 더욱 확실해진다는 평가다.

당초 애플은 애플카를 준비하며 TSMC와 반도체 협력을 추진하는 한편 배터리에서는 중국 제조사들과 접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용 배터리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선호하는 상태에서 이는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의 '주특기'에 가깝기 때문이다.

실제로 LFP 배터리의 경우 에너지 밀도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안정성에 강점을 둔 배터리다. 배터리 소재 중 가장 비싼 코발트를 사용하지 않아 한국 배터리 제조사들의 주특기인 리튬이온 기반 배터리와 비교해 가격도 낮은 편이다. 이를 바탕으로 CATL 및 BYD는 시장 점유율을 크게 넓힐 수 있었다. 중국 전기차 시장에서 LFP를 탑재한 전기차의 점유율이 무려 80% 이상인 상태에서 역시 중국 시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애플이 중국 LFP 배터리 제조사들과 스킨십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여세를 몰아 중국 배터리 업계는 여세를 몰아 LFP 배터리에 망간을 추가한 LFMP 배터리를 개발하는 한편 나트륨이온 배터리 가능성까지 타진하고 있다. 애플 입장에서는 더욱 매력적인 카드인 셈이다.

그러나 애플은 애플카를 준비하며 리튬이온 계열의 K-배터리와도 협력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NCMA의 LG에너지솔루션은 추후 코발트 대비 저렴한 니켈의 함량을 비약적으로 키워 기술과 가격 모두 잡는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으며 삼성SDI는 니켈 함량 88% 이상의 하이니켈 기술이 적용된 젠5(Gen.5·5세대) 배터리 양산을 역시 하반기에 준비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도 니켈 비중을 90% 이상으로 잡은 NCM9 배터리를 내년에 양산하는 등 기초체력도 탄탄하다.

특히 미중 패권전쟁이 치열한 가운데 애플이 아무리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도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를 마냥 중국에 맡기기도 부담스럽다. 바이든 행정부가 신재생 에너지 인프라를 가동하며 자국 중심의 배터리 공급에 방점을 찍은 상태에서, 강력한 미국 투자에 나선 K-배터리와의 접점도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을 가능성이 있다. LG와 SK에 이어 삼성SDI도 미국 현지 라인 구축에 나서겠다고 발표한 가운데, 강력한 K-배터리 존재감을 의식했다는 말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애플이 배터리 밸류체인을 확보할 수 있는 기업이나, 혹은 관련 인프라를 보유한 기업과 접촉하고 있으며 그 협력 파트너로 LG와 SK가 유력했다는 말도 나온다. 전종훈 AST 인사이트 부대표는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세계 각국에 차량 등록된 전기 승용차의 배터리 에너지 시장 점유율을 보면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이노베이션이 나란히 2위와 5위, 6위를 기록하고 있다"면서 "애플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배터리 수급을 위해 1위 CATL, 4위 BYD 등 중국 제조사들과 접촉할 수 있겠지만 BYD는 전기차까지 만들고 있는데다 3위 일본의 파나소닉은 애플과 사이가 나쁜 테슬라의 주 파트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K-배터리의 기초체력은 물론 소재부터 완제품에 이르는 밸류체인에 주목할 경우 애플이 K-배터리와 접촉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전장, 그리고 모빌리티
애플카 실무진이 LG와 SK를 방문해 K-배터리 큰 그림을 그리는 선에서 벗어나 LG전자의 전장사업과의 시너지, 나아가 SK의 미래 모빌리티 전반에 대한 역량에도 주목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LG전자는 배터리 소재 사업부를 LG화학에 이관한 후 휴대폰 사업 철수 등으로 선택과 집중을 단행한 다음 전장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애플카의 비전과 연결된 것으로 알려진 마그나와 함께 엘지마그나 합작법인을 설립하며 공격적인 전장사업 전략을 가동하는 중이다. 애플카 입장에서는 소위 '상성'이 절묘하다.

SK는 그룹 차원의 모빌리티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텔레콤은 모빌리티 자회사 티맵모빌리티를 중심으로 우버와 협력하고 있으며 SK이노베이션 및 SK하이닉스 등 다양한 하드웨어 인프라로 미래 모빌리티 시장 전체를 노리고 있다. 역시 애플카를 준비하는 애플 입장에서 다양한 협력의 여지가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애플카의 비전과 상대적으로 긴밀한 연결고리를 가진 곳은 LG라고 본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LG베스트샵에 애플 아이폰이 깔리고 엘지마그나를 중심으로 LG와 애플의 협력전선이 넓어지고 있다"면서 "애플은 다수의 파트너와 함께 애플카를 만들 생각이라 특정 기업에 몰아주기 등은 없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전장사업 전반에서 힘을 키우는 LG와 배터리 이상의 '플러스 알파' 협력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