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당시 새로운 디지털 안전자산의 지위까지 넘봤던 암호화폐의 기초체력이 무너지고 있다. 비트코인 시세가 14일 오후 4시 기준 3,800만원 박스권에서 좀처럼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시세 상승 동력이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시세 반등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하는 중이지만 큰 틀에서 경고음이 커지고 있는 것이 중론이다.

애플 쇼크? "사실무근"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시세는 테슬라 일론 머스크의 '입'에 속수무책으로 움직였다. 그가 테슬라 전기차 구매에 비트코인 결제 승인을 선언하자 가파르게 시세가 상승했으나 이를 번복하자 시세는 끝 모르게 하락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머스크가 5월 12일 오전 7시(한국시간) 트위터를 통해 비트코인의 전기차 결제를 중단한다고 선언하자 비트코인 시세는 크게 하락한 바 있다.

머스크는 부랴부랴 친환경 에너지 사용이라는 전제로 조건부 비트코인 결제 허용 정책을 발표했으나 한 번 내려가기 시작한 비트코인 시세는 '날개없는 추락'에 가깝다는 평가다. 나아가 중국 정부가 강력한 암호화폐 규제 정책을 발표하고 채굴장 셧다운까지 불사하자 시세는 더욱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한동안 시장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가운데, 최근 애플을 둘러싼 '설'도 파장을 일으켰다. 애플이 대규모 비트코인을 매입했다는 '설'이다.

비트코인 시세가 3,800만원 박스권에 갇히며 큰 반등을 보여주지 못한 상태에서 세계 최고 기업인 애플이 비트코인을 선택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만약 사실이라면 비트코인 시세가 크게 뛰어오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애플이 애플페이 등에 비트코인 결제 등을 지원할 것이라는 '설'은 꾸준히 제기된 바 있다. 여기에 애플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이 공개 행사에서 비트코인 찬양론을 설파하며 시장의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워즈니악은 11일(현지시간) 멕시코에서 열린 암호화폐 세미나에서 "비트코인은 혁신"이라 주장하면서 "금은 한정되어 있지만 비트코인은 다르다. 비트코인의 미래를 믿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2018년 CNBC와의 인터뷰, 지난해 12월 블록체인 행사에서도 비트코인의 가능성에 주목한 발언을 한 바 있다.

워즈니악의 깜짝 주장이 나온 후 시장에서는 애플이 무려 2조8,600억원에 달하는 비트코인을 매입했다는 주장이 나와 파장을 일으켰다. 13일(현지시간) 갤럭시 트레이딩은 트위터를 통해 애플이 2조8,600억원의 비트코인을 이미 매입했다고 밝혔르며 체인리크의 조슈아 룸스버그도 "애플이 비트코인을 매입했다는 설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애플이 비트코인을 대량 매입했다는 설이 알려진 것 자체가 시장의 호재다. 그러나 주요 거래소의 시세는 큰 변동이 없었다. 워즈니악의 비트코인 찬양론이 나올 당시 잠깐이나마 비트코인 시세가 8% 내외의 상승폭을 보였지만 애플의 2조8,600억원 비트코인 매입설에는 시장이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현 상황에서 애플 비트코인 매입설은 해프닝일 가능성이 높다. 벤징가 등 외신에 따르면 암호화폐 인플루언서인 코인 고단이 장난으로 애플 비트코인 매입설을 퍼트렸고, 애플이 실질적으로 비트코인을 매입한 사실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바이낸스. 출처=갈무리
바이낸스. 출처=갈무리

경고등 커진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난 9일 반기보고서에 처음으로 암호화폐를 거론했다. 기존 금융 시스템을 위협하지 않을 것으로 봤던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에 제도권 금융이 '불편함'을 느낀 시그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선명한 악재다.

최근 글로벌 거래소들의 위기가 커지는 것도 눈길을 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이낸스 사태다. 영국 금융당국이 지난달 27일 바이낸스를 대상으로 자국 내에서 모든 영업을 멈추라 발표한 가운데 다른 나라들도 속속 바이낸스 압박에 들어가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바이낸스는 중국인 자오창펑이 설립한 거래소며 세금 피난처로 잘 알려진 케이맨 제도에 본사를 두고 있다. 영국 및 일본 등 많은 나라들은 바이낸스의 창업주가 중국인이며, 실체가 불분명한 세금 회피처에 본사를 두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강력한 탄압정책을 펴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바이낸스는 거래소 먹통 사건에도 휘말려 투자자들과 소송전까지 벌이는 중이다.

악재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비트코인을 채굴하기 위해 사용하는 막대한 전기가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낙인찍힌 상태에서 당분간 암호화폐 시세 반등은 요원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이유다. 

2000년대 중후반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견한 블랙스완의 저자 나심 텔레브는 13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은 취약한 자산"이라며 "비트코인 가치는 제로"라 혹평하기도 했다. 비트코인 ETF 상품 출시가 줄줄이 연기되는 것도 시장의 리스크다.

비트코인의 강점인 보안 인프라 능력에도 의문부호가 달린다. 실제로 미 법무부는 지난 6월 7일 러시아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해커조직 다크사이드가 송유관회사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을 해킹해 인프라를 마비시킨 후 비트코인을 챙겼으나, 그 상당부분을 회수했다고 밝혔다. 비트코인의 견고한 암호화 ‘강점’이 무력화되는 순간이다.

미 국세청(IRS)은 1만달러가 넘는 암호화폐 거래에 대한 자료 수집을 위해 분명한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것을 미 의회에 전달하기도 했다. 이는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가 가진 익명성 강점을 부정한다.

대표적인 암호화폐 옹호론자이자 CNBC의 간판 프로그램 ‘매드머니’의 진행자로 잘 알려진 짐 크레이머도 돌아섰다. 불과 두세 달전 비트코인으로 모기지 상환에 나서며 암호화폐 예찬로자로 활동했지만, 그는 최근 “비트코인은 필요없다”면서 “보유분을 다 팔았다”고 고백했다.

반등에 배팅한 이들
현 상황에서 드라마틱한 비트코인 시세 반등이 벌어질 가능성은 낮다. 강경수 크립토데이 이사는 "시장 분위기가 너무 나빠진 것이 사실"이라며 "당분간 어떤 호재가 생겨도 비트코인 시세가 크게 반등할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했다. 다만 그는 "주목할 부분은 박스권에 시세가 갇혀 상승도 못하지만 하락도 하지 않는 대목"이라며 "비트코인 암흑기를 논하기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분위기도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지금의 박스권을 추가 시세 하락의 시그널이 아닌 '반등을 전제로 한 바닥'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 다량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는 마이크로 스트래티지는 지난 6월 22일 비트코인 1만3,005개를 4억8,900만달러에 매수했다고 밝혔다. 마이크로 스트래티지가 보유한 총 비트코인은 10만5,085개에 이른다.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등록한 엘살바도르도 큰 틀에서는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의 비전에 배팅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탄압에 따라 현지 채굴장이 속속 문을 닫고 있으나 최근 미국 및 카자흐스탄에 새로운 채굴장이 열리는 현상을 두고 "시장의 건전성이 담보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