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동훈 기자] 현재 국내 소비자들은 순수전기차를 살 때 옵션 가격을 제외한 차량 트림별 기본가격을 기준으로 매겨진 구매지원 보조금을 받는다. 이 같은 보조금 정책은 차량 가격을 인하하도록 완성차 제조사들을 유인할 수 있는 반면, 국산차 업체의 도덕적 해이나 수입차 업체에 대한 차별을 조장할 소지가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다.

현재 정부는 국내 소비자와 완성차 업체들 등 시장 주체들의 니즈를 고려해 전기차 구매 보조금 정책을 다듬어가고 있다.

10일 업계 및 환경부의 ‘2021년 전기자동차 보급 및 충전인프라 구축사업 보조금 업무처리지침’에 따르면 산출방식에 따른 보조금은 차량 가격대별로 6,000만원 미만 전액(100%), 6,000만원 이상~9,000만원 미만 50%, 9,000만원 이상 0% 등 비중으로 지급된다.

환경부는 연비(전비), 주행거리, 전년도 저공해차 보급목표제 이행실적(일부 업체) 등을 기준으로 차량별 보조금을 산출한다. 이어 해당 차량의 가격에 따라 보조금을 차등 지급한다. 가격이 저렴한 전기차에 더 많은 보조금을 지급하는 이유는 제조사의 차량가격 인하 결정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환경부는 당초 지난해 12월 보조금 지침 개정안 초안을 행정예고할 당시 보조금 지급 기준 가격을 공장도가로 삼았다. 공장도가는 취등록세, 개별소비세 등 차량에 붙는 세금을 모두 배제한 최초 가격으로 일종의 단가다. 환경부는 당시 차량의 단가 경쟁력을 높인 제조사에 더 많은 인센티브를 부여하려는 취지로 보조금 산정방식을 마련했다.

환경부가 올해 적용한 전기승용차 보조금 산출방식. 출처= 환경부
환경부가 올해 적용한 전기승용차 보조금 산출방식. 출처= 환경부

하지만 제조사가 차량 공장단가에 얹는 영업마진까지 보조금 지급 기준으로 적용하지 않을 경우 마진 경쟁을 유도하기 어려울 수 있다. 환경부는 이를 고려해 보조급 지급 기준을 변경함으로써 정책의 합리성을 높였다. 환경부에 따르면 선진 자동차 시장인 독일도 제조사별 트림 시작가를 기준으로 구매보조금을 소비자에게 지급함으로써 혜택을 분배하고 있다.

‘아이오닉 5’ 출고가, 5800만이든 6,100만이든 보조금은 동일

현재 적용된 보조금 지급 기준에는 맹점이 있다.

소비자에게 지급되는 전기차 보조금의 산정 기준은 제조사별로 임의 책정한 차량 트림별 시작가(권장소비자가격)로 두고 있다. 트림은 각 차량을 사양 수준에 따라 구분하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 아이오닉5 롱레인지 AWD 모델의 경우 익스클루시브(5,280만원), 프레스티지(5,755만원) 등 두가지 트림으로 구분된다. 익스클루시브보다 프레스티지에 더욱 다양한 사양이 장착되고, 그만큼 가격도 높다.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5. 출처=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5. 출처= 현대자동차

현재 도입된 전기차 보조금 정책 상 프레스티지 트림에 파킹 어시스트(135만원), 솔라루프(130만원), 디지털 사이드 미러(130만원) 등 옵션을 추가함으로써 최종 판매가가 6,150만원에 달해도 국고보조금 773만원을 모두 지급받을 수 있다.

이는 일면 소비자 편익을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소비자가 옵션을 아무리 많이 추가해도 권장소비자가격에 맞춰 지급되는 보조금을 모두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 같은 정책은 제조사들에게 기본 사양 수준을 높이는 동시에 권장소비자가격을 낮추도록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영업마진처럼 ‘옵션가’도 보조금 적용기준 포함돼야

이는 자칫 제조사가 옵션 가격의 마진을 비교적 자유롭게 높이도록 조장하는 근거로 작용할 수 있는 점에서 우려할 만하다. 최근 신차에 제공되는 옵션들은 모든 소비자들에게 필수적이진 않지만 첨단 사양이라는 이유로 값비싸게 제공되고 있다. 한국 시장의 경우 현대차와 기아 양사와 사양 경쟁력으로 어깨를 견줄 만한 업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두 기업이 내놓은 옵션 가격의 합리성을 분석할 대조사례를 찾기 어렵다. 양사가 옵션가격을 낮추도록 견제할 방안이 없는 셈이다.

제네시스 G80 전동화 모델. 출처= 제네시스
제네시스 G80 전동화 모델. 출처= 제네시스

또 관세, 물류비 등을 이유로 국산차 제조사만큼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수입차 제조사들이 보조금 정책으로 차별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제네시스 G80 전동화 모델의 가격은 단일 트림으로 부가세 포함, 개별소비세율 3.5% 기준 8,281만원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파퓰러 패키지, 듀얼 모니터, 빌트인캠, 솔라루프, EV 스페셜 컬러 등 모든 옵션을 탑재할 경우 9,861만원까지 올라간다. 비슷한 가격인 9,560만원에 판매되는 벤츠 중형 전기 SUV ‘EQC 400’가 상품성 측면에서 G80 전동화 모델을 따라잡긴 쉽지 않다.

수입차들이 브랜드 고유 감성을 앞세워 국산차의 사양 경쟁력을 극복하고 있지만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최소 요구사항이 높아질수록 수입차 입지는 더욱 협소해질 수밖에 없다.

르노삼성자동차가 국내 출시한 르노 조에. 출처=르노삼성자동차
르노삼성자동차가 국내 출시한 르노 조에. 출처=르노삼성자동차

현재 보조금 정책은 결과적으로 현대차와 기아 양사의 국내 지배적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는데 크게 이로운 방향으로 설계됐다. 이는 수입차 제조사 뿐 아니라 한국지엠, 르노삼성자동차, 쌍용자동차 등 나머지 국산차 제조사들의 설 자리를 좁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현대차와 기아가 전기차 제품의 경쟁력을 높여나갈수록 보조금 정책도 더욱 정교해져야 궁극적으로 시장을 더욱 성숙시킬 수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업계 “개인 출고가 천차만별, 보조금 분류 어려울 것”

다만 환경부나 업계 일각에서는 보조금 지급 범위를 기준으로 개개인을 분류하는 작업이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보조급 지급기준 가격대는 단지 세 구간으로 나뉘지만 개인 소비자마다 다른 출고가를 따지기는 행정상 난제라는 의미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전기차 보조금 정책은 앞으로 언제 이를 일몰시키느냐를 두고 논의될 뿐 크게 손볼 여지를 찾긴 어려울 것”이라며 “조정될 경우 보조금 지급 가격 상한선을 낮추거나 차량 성능별 지급 기준을 더욱 세분화하는 수준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국내 완성차 제조사들이 기본적인 사양을 옵션으로 제공하는 꼼수를 부리지 못하도록 지속 감독할 것이란 계획을 밝혔다. 한편 제조사와 소비자들의 의견을 지속 청취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을 개선해나갈 방침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보조금 정책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우려 사항들에 대해 감독할 것”이라며 “또 해당 문제가 발생한 정황이 포착될 경우 그에 대처할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