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손자가 태어난 지 이제 막 4주차에 이르고 있습니다.

병원서 1주, 산후조리원서 2주 지내고 나서 지난 주말 자기 집에 3주 만에 입성(?)을 한게죠.다른 한편으로는 아직 왕초보인 아이의 엄마, 아빠의 본격 수행이 시작되기도 하는 겁니다.

기대 반 우려 반이 아니라 걱정 반 우려 반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미역국과 몇 가지 반찬을 준비해 집으로 갔는데, 분위기가 예상대로 난해했습니다.

그간 신생아 전문가들이 만지고 보살폈던 손길과 분위기와는 영 다른 느낌 때문인지 아이가 자주 보채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전문가였던 집사람이 나서서 일단 아이를 진정시키자 집안에 반짝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낮 시간을 함께 하고 저녁 때 제 부모에게 밤을 처음으로 맡기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여전히 마음은 거기에 가 있는데, 전혀 연락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때는 참아야 한다는 집사람 말을 따라 전화기를 숱하게 들었다 그냥 내려놓았지요. 그렇게 침묵의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점심에 간다는 연락을 하고 찾아갔습니다.

문을 열어주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세상에! 애 엄마, 아빠가 반쪽이 되었습니다.

전날 낮과 밤에 계속 힘들었던 게지요. 정상적으로도 두 시간 마다 분유를 먹이고, 트림하고 자거나 놀다가 하는 일정을 따라가기도 힘들 터인데, 새 집과 새 손길에 적응이 안 된 아이가 그 간격이 깨지고, 울고, 보채니... 초보 엄마, 아빠로서 그야말로 혼줄이 난 겝니다. 집사람이 긴급 투입되어 아이를 돌보며 둘에게 좀 쉬거나 햇빛을 쬐고 오라고 권했습니다.

과거 경험 있는 아내가 나서도 많이 민감해진 아이가 쉬 진정되지 않는데, 저들은 얼마나 힘들었을지 쉬 짐작이 되었습니다. 안정을 찾은 아이를 놓고, 저녁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월요일에는 사위가 출근하는 대신, 산후도우미 분이 와서 3주간 주 5일씩 낮 동안 보아주기로 해서 적잖이 안도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주변 전문가가 도와줌 속에 아이도, 아이의 부모도 조금씩 나아지고, 적응도 하리라는 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 3주간 아이의 부모가 밤과 주말은 온전히 맡아야 하는 과제가 주어지는데, 그건 공부할 때 꼭 자기가 풀어보는 심화학습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점차 아이를 완전히 넘겨받는 과정을 보니 조금은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새에 대한 책(*)에서 읽은 대목인데 갓 태어난 기러기 새끼는 식별 능력이 뛰어나지 않아 처음 본 존재를 부모로 생각한다고 하네요. 기러기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는 부화 후 열세시간에서 열여섯 시간인데, 이때 처음 접하는 존재를 부모로 생각하고 열악한 둥지 환경에서 살아남으려 부모에게 강한 애착을 갖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부화한 새끼는 얼마 되지 않아 둥지를 떠나는데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면 그시기에 부모에게 붙어 보호를 받아야 하는 본능적인 욕구가 있다는 겁니다. 이제 아이 부모도 그간 도움을 준 전문가들로부터 아이의 부모권(?)을 온전히 되찾아야한다고 할까요? 그러나 지금 마음과 몸으로 함께 하는 아이 부모의 헌신, 애정이 아이에게 크고도 깊게 남고 받아들여지며 아이가 성장할 것을 생각하면 괜하고, 엉뚱한 생각이었겠지요.

밤에도 두 시간 마다 깨어 밥 달라는 아이를 비몽사몽 속에 응대하고, 토닥거릴 아이 부모에게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내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라서 아쉽지만 그게 과정이겠지요. 대신 아이의 새근새근 잠자는 세상 편안한 얼굴이 그들에게 진심의 평안과 위로, 버틸 힘이 충분히 되리라고 믿어봅니다.

(* 데이비드 앨런 시블러/새의 언어/월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