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회사에서 함께 일해 온 분이 최근 경사를 맞았습니다.

국가 지정 무형문화재 한지 장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축하 자리를 갖기 위해 그의 공방이 있는 저 멀리 의령까지 다녀왔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후 60년 넘는 외길 인생이었습니다.

허리는 굽었고, 얼굴은 쪼글쪼글 해지고, 힘든 일과(日課) 마치고 매일 술 한 잔이

위로가 되는 고된 삶이었습니다.

막상 그를 보니 수고의 대가로 맞은 영광, 축하 이런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의 어깨와 거친 손을 꼭 잡아드렸습니다.

문득 십여 년 전 101 세로 작고한 작은 할머님이 생각났습니다.

시골을 지키며,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까지 밭일을 하셨던 분입니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입원했는데, 맑은 정신이 아닌 상태였습니다.

병상 침대에서 가만히 계시지 못하고, 무언가 농사짓는 모습

그러니까 호미질 하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는 자식들을 마음 아프게 했습니다.

마지막 떠나기 전까지의 모습마저도 시골에서 농사지어온 전 인생을 보여주었다고 할까요?

그렇듯 그날 함께 한 한지 장인도 평생 작업 자세인 허리 굽히기가 신체화되어,

식사 자리에서 미안해하는 우리를 올려 다 보고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일을 하는 한 그의 굽은 허리는 펴지기가 힘들어 보였습니다.

다행일까요?

그의 공방이 있는 지역이 양파 산지로 유명한데, 그의 이웃들 모두는 집을 비우고

그 시간, 그 더위에 양파 밭에서 역시 허리를 굽히고 있었습니다.

우리야 잠시 왔다 떠나지만, 늘 함께 하는 이웃들이 또 그런 같은 모습들로 어울림이

진심이 느껴지고, 진정한 이웃, 좋은 이웃 같아 보였습니다.

모임을 마무리하고 올라오기 전 건강 조심하라는 인사에 허리를 애써 펴며 80까지 몇 년

안 남았으니 더 열심 내겠다는 화답을 하더군요. 해주고 싶은 말이 생각났는데 입에 담고

말았습니다. 그건 포장이 꼼꼼하게 된 소포를 가위로 자르려는 며느리에게

어느 시어머니가 건넨 말(*)입니다.

‘얘야 끈은 자르는 게 아니라 푸는 거란다’

이제 유명인도 되었고, 후배도 길러야 하는 입장, 무엇보다 힘든 나이가 되었으니

여유 가지고, 쉬엄쉬엄 일하라는 의미에서 내 나름의 끈 얘기를 하고 싶었지요.

그럼에도 그의 남은 생에서 얼마 남지 않은 작업 기간 동안에 좋은 한지 작품을 남기기 위해 오히려 더 열심을 낼 분임을 알기에 입을 닫았지요.

모쪼록 이번 국가적인 인정을 계기로 그간 국제적으로 관련 분야에만 좁게 알려졌던 그의 이름과 실력이 제대로 빛을 발해, 전 세계에 동양 전통종이하면 일본 화지, 중국 선지만이 아니라 우리 전통 한지도 살아 있음이 제대로 알려졌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그의 천년 가는 한지에

나는 무엇을 담을 것인지 그걸 고민해 보아야겠습니다.

(*유인경/기쁨 채집/위즈덤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