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동훈 기자] 쌍용차의 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최근 정부에서 쌍용차 회생을 도울 수 있다는 메시지가 나와 눈길을 끈다.

<이코노믹리뷰> 취재 결과 정부가 쌍용차 회생을 목표로 공격적인 행보에 나설 가능성은 의외로 낮다는 것이 확인되지만, 여기에는 정부의 복잡한 셈법도 감지된다.

지난 14일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서 자구안에 대한 노사 조인식이 진행되는 모습. 출처= 쌍용자동차
지난 14일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서 자구안에 대한 노사 조인식이 진행되는 모습. 출처= 쌍용자동차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22일 배포한 보도자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부·경기도, 쌍용차 협력업체에 유동성 지원 확대’라는 제목의 자료는 산업부, 경기도 등 공공기관이 쌍용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의 유동성을 더욱 지원할 것이란 내용을 담고 있다.

산업부는 해당 자료에서 쌍용차 협력업체를 지원한 취지 가운데 하나로 “정부는 회생 기간 중에도 부품공급 생태계를 유지하는 것이 쌍용차의 경영 정상화를 위한 전제조건이라는 판단하에, 쌍용차 부품 협력업체들에 대한 유동성 지원을 지속해왔다”고 설명했다.

앞서 배포한 협력사 지원 관련 보도자료에서는 ‘쌍용차의 유동성 부족으로 협력업체의 어려움이 가중될 우려’를 표하는 등, 협력업체들을 돕는 방향으로 지원책 초점을 맞춘 것과 대조되는 표현이다. 협력사를 도움으로써 쌍용차 경영정상화에 일조하겠다는 의미로 비친다.

산업부에 이 같은 표현을 쓴 이유를 물었다. 돌아온 답은 “국내 자동차 산업 생태계를 유지하려는 차원에서 기재한 원론적 입장의 내용일 뿐”이다. 생태계 유지라는 정책 방향의 일환으로 쌍용차 협력사들을 돕고 있는 가운데, 쌍용차에 대한 정부의 관점이나 태도가 바뀐 건 아니라는 뜻이다.

쌍용차에겐 아쉽게 느껴질 답변이다.

쌍용차는 현재 정부나 지역사회가 기업 회생 과정을 적극 도와주길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쌍용차 노사는 최근 무급휴업 2년, 단체협약 주기 변경(3년), 임원 임금 추가 20% 삭감, 신규채용 중단 등 뼈를 깎는 자구안을 합의 도출하는 한편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1·2차 협력사, 영업점 등 쌍용차에 관련된 사업장 고용인원 20만명의 생계가 달려있는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산업부가 산업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쌍용차가 회생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일면 타당한 행보다. 쌍용차가 폐업할 경우 내부 구성원들의 생계를 위협할 뿐 아니라 관련 사업체들이 줄줄이 타격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덮어놓고 쌍용차 돕다간 ‘배임’

현재로선 정부가 쌍용차를 금전적으로 지원하는 등 직접 돕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쌍용차가 단기간에 혁신을 일으키거나 경영난을 타개할 가능성을 입증해보이기 어려운 가운데 수혈하는 것은 정부의 ‘배임’이라는 시장 반응이 나오기 때문이다.

쌍용차가 최근 자구안에 대한 노사 조인식을 가진 데 이어 전기차, 중형 SUV 등 신차 라인업을 확장할 계획을 발표하기 까지 했지만 업계 반응은 냉담할 따름이다.

공공기관 가운데선 산업은행이 이 같은 입장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14일 온라인 브리핑에 참석해 “(쌍용차 노사가 자구안을 마련하는 등의) 노력은 감사하지만 충분한 방안이 될지는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며 “쌍용차 인수 의향자들의 사업계획이 나오면 (금융지원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기업 금융지원 절차를 수행하는 산업은행이 쌍용차를 철저히 투자자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을 탓할 순 없다. 온정적인 지원책으로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결과를 초래하는 대신 현실적인 쌍용차 생존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합당하다. 빈틈없이 빚어져 물만 부으면 되는 장독을 채우지 않을 이유는 없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도 “쌍용차가 최근 신차 출시계획을 공개했지만 제품 혁신을 일으킨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다. 언급된 전기차 신차가 수익성을 낼만한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하기엔 부족하기도 하다”며 “이 가운데 정부가 세금을 들여 쌍용차를 (덮어놓고) 돕는 건 배임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나 산업은행 모두 쌍용차 회생의 전제로 ‘신규 투자자 확보’를 꼽았다. 자력갱생하기 어려운 쌍용차의 재무 건전성을 회복하고 다음 단계를 밟을 수 있도록 마중물을 투입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아야 한다는 뜻의 발언이다.

쌍용차는 신규 투자자를 확보하기 위한 과정의 일환으로 이달 말 입찰 공고를 진행할 계획이다. 복수의 국내외 업체가 쌍용차 지분을 인수하는데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현재 우선협상대상자를 예측하긴 어렵다. 시간만이 답을 알려줄 터다.

지난달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의 일원들이 기업 경영 정상화를 염원하는 취지로 도보행진을 진행하는 모습. 출처=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지난달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의 일원들이 기업 경영 정상화를 염원하는 취지로 도보행진을 진행하는 모습. 출처=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쌍용차 망하면 ‘산업 생태계 보호’ 정부역할 미완

정부가 이 같은 상황에서 쌍용차를 직접 지원할 의향이 있다면 이를 행하더라도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전기(轉機)도 마련해야 한다. 쌍용차는 유례없는 수준의 자구안과 미래 사업 비전을 내놓은 점으로 어필하고 있고, 협력업체들로 구성된 쌍용차협동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줄도산 가능성에 대한 위기의식을 고조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 쌍용차가 도움받을 수 있는 명분으로 받아들여지진 못하고 있다.

정부가 쌍용차 파산 이후 산업적 충격을 해소할 수 있다면 모를 일이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에서 쌍용차 폐업을 내버려두지 못한다. 쌍용차에 산소호흡기를 대주는 것만큼, 폐업하도록 방치했을 때 지불해야할 매몰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혹자는 최근 상승가도를 달리고 있는 부동산 시세로 높은 가치를 지닌 쌍용차 평택공장 같은 자산을 담보로 폐업의 완충장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의견을 내놓는다. 하지만 밥줄 끊긴 쌍용차 임직원이나 협력사들에게 ‘퇴직금’을 나눠주는 것이 그들의 지속 가능한 생존을 보장해줄 수 없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한편 쌍용차가 폐업하도록 내버려두는 건 산업 생태계를 보호하는 당국 역할론과도 어긋나는 행보다. 정부가 현실과 역할 사이에서 겪고 있는 딜레마다.

경기 평택시에 위치한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의 정문 전경. 출처= 쌍용자동차
경기 평택시에 위치한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의 정문 전경. 출처= 쌍용자동차

쌍용차는 지난 1954년 ‘하동환제작소’라는 모태 업체로 업력을 시작한 뒤 올해 67주년을 맞았다. 인생에 비유하면 아직 세상을 떠나기엔 이른 나이다. 국산차 업체 한 곳 없는 국가가 해외에 존재하는 점을 고려할 때, 쌍용차는 현대자동차와 기아 등 기업들과 함께 한국을 ‘완성차를 자급자족하는 나라’로 빛내고 있는 업체라는 점에서도 가치를 지닌다.

정부는 쌍용차를 도울 것이라면 반짝이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쌍용차에게 요구하고 있는 수준의 치밀함을 보여줘야 한다. 정부와 쌍용차 모두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