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동훈 기자] 환경부가 순수전기차, 수소전기차 등 ‘무공해차’를 국내 확산시키기 위해 일종의 보급목표를 제안하자 일부 국내 완성차 업체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특히 신형 전기차 출시 계획이 없는 업체들의 고민이 크다. 환경부는 올해를 일종의 '적응기간'으로 보고 내년부터 실적을 채우지 못한 업체에 기여금 부담 등을 청구한다는 방침이지만, 업체들은 혹시나 모를 불이익이 있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무공해차 보급목표제 대상 업체들의 판매실적과 보급목표. 출처= 현대자동차, 기아,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한국수입자동차협회, 환경부
무공해차 보급목표제 대상 업체들의 판매실적과 보급목표. 출처= 현대자동차, 기아,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한국수입자동차협회, 환경부

환경부는 최근 수년간 국내 시장에서 완성차를 일정 수준 이상 판매한 업체들을 대상으로 무공해차 보급목표를 부여했다. 18일 환경부에 따르면 무공해차 보급목표제의 올해 대상 업체는 현대자동차, 기아, 한국지엠, 르노삼성자동차, 쌍용자동차,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이하 벤츠), BMW코리아(이하 BMW), 한국토요타자동차(이하 토요타) 등 8개사다.

이들 업체가 무공해차 보급목표제 대상에 오른 이유는 지난 2017~2019년 기간 연평균 국내 판매실적이 최소 2만대를 넘었기 때문이다. 대기환경보전법 시행령 별표12의2에 따르면 저공해차를 보급해야하는 자동차판매자의 범위는 저공해차 보급계획서 제출 대상 회계연도(2021년)의 4개년 전 1월1일부터 전전년도 12월31일까지 자동차 판매량을 기준으로 정해진다.

환경부가 집계한 지난해 기준 저공해차 보급목표제 대상 업체들의 차종별 판매실적. 이들 가운데 올해 무공해차 보급목표제 대상 업체에 꼽힌 쌍용차, BMW, 토요타 등 세 업체의 무공해차 판매실적(빨강 테두리 안)은 비교적 저조한 수준을 보였다. 출처= 환경부
환경부가 집계한 지난해 기준 저공해차 보급목표제 대상 업체들의 차종별 판매실적. 이들 가운데 올해 무공해차 보급목표제 대상 업체에 꼽힌 쌍용차, BMW, 토요타 등 세 업체의 무공해차 판매실적(빨강 테두리 안)은 비교적 저조한 수준을 보였다. 출처= 환경부

최근 실적을 급격히 끌어올리고 있는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는 이번 무공해차 보급 목표 대상에서 제외됐다. 해당 기간 디젤게이트의 여파로 국내 영업을 일시 중단함에 따라 판매실적(벤틀리·람보르기니 포함) 연평균 1만6,684대(총 5만53대)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아이오닉5. 출처=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아이오닉5. 출처= 현대자동차

현대차, 올해 ‘아이오닉 5’ 1.8만여대 팔면 보급목표 달성

각 대상 업체들은 과거 연평균 판매량 범위에 따라 연간 전체 완성차 판매실적의 4%나 10%에 달하는 비중을 무공해차로 채워야 한다. 과거 연평균 판매량 범위가 2만대 이상 10만대 미만인 업체는 4%를 충족하고, 10만대 이상인 업체는 10%를 달성해야 한다. 이때 무공해차 판매실적은 단순히 전체 완성차 판매실적에서의 비중이 아니고 해당 출시차량에 부여된 환산 점수의 총합으로서 산출된 판매실적으로 해당 비중에 도달해야 한다.

대기환경보전법 시행령에 기재된 무공해차 보급실적 산정방식. 출처= 법제처
대기환경보전법 시행령에 기재된 무공해차 보급실적 산정방식. 출처= 법제처

무공해차 차량별 판매실적은 해당 차량의 복합연비, 무공해 주행거리 등을 대입한 공식으로 산출된 1대당 환산점수에 판매량을 곱하면 된다. 예를 들어 복합연비 5.1㎞/㎾h, 무공해 주행거리 429㎞ 등 성능을 갖춘 현대차 아이오닉5 롱레인지 2WD 익스클루시브(19인치 휠, 빌트인캠 미적용) 트림의 대당 환산점수는 4.1점으로 산출되지만 제도상 최고점수인 3.0점으로 산정된다.

업체의 연간 무공해차 보급실적은 해당 기간 판매한 무공해차 모델의 대당 환산점수에 판매량을 곱한 다음, 2017~2019년 기간 연평균 승용차 및 15인승 이하 승합차 등 차종 판매실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산출된다.

현대자동차가 올해 보급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판매해야 할 아이오닉5 대수를 추산한 내용의 표. 출처= 현대자동차, 환경부, 자체 추산
현대자동차가 올해 보급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판매해야 할 아이오닉5 대수를 추산한 내용의 표. 출처= 현대자동차, 환경부, 자체 추산

현대차가 아이오닉5 롱레인지 2WD 익스클루시브 트림 1종 만으로 무공해차 보급실적 10%를 달성한다고 가정할 경우 연간 1만8,074대 가량 판매해야하는 셈이다. 현대차가 지난 4월 아이오닉 5를 출시한 뒤 연말까지 9개월간 판매목표를 2만6,500대로 잡은 점을 고려하면 무난한 보급목표다.

BMW 연말·토요타 내년 전기차 출시…쌍용차는 기약없어

다만 올해 저공해차 보급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업체들 가운데 쌍용차, BMW, 토요타 등 3개사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올해 들어 이달까지 6개월 가량 지났지만 무공해차를 일절 판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올 연말에나 출시하거나 아예 신차를 내놓을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쌍용자동차의 첫 순수전기차 모델인 코란도 이모션. 출처= 쌍용자동차
쌍용자동차의 첫 순수전기차 모델인 코란도 이모션. 출처= 쌍용자동차

쌍용차는 국산차 업체 가운데 이날 현재까지 유일하게 순수전기차나 수소전기차를 한번도 판매하지 않은 업체다. 지난 10일 평택공장에서 브랜드 첫 순수전기차 모델인 준중형 전기 SUV ‘코란도 이모션’을 양산하기 시작했지만 국내 출시 일정은 불투명하다. 반도체 수급난 등 문제로 국내 사양에 맞춰 신차를 충분히 생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쌍용차는 오는 10월 유럽에서 코란도 이모션을 출시한 뒤 국내 출시 일정을 조율할 예정이다.

이 경우 쌍용차의 전기차 내수 실적이 한동안 전무하기 때문에 올해 무공해차 보급 목표를 달성하긴 힘들다. 극적으로 오는 10월 코란도 이모션을 국내 출시하더라도 남은 3개월 간 연간 목표를 달성할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

BMW도 오는 11월 중형 전기 SUV iX를 내놓을 계획이기 때문에 보급목표에 도달하긴 사실상 불가능하다. 앞서 비인기 모델인 소형 전기 해치백인 i3를 판매해왔지만 이에 따른 지난해 BMW의 무공해차(1종) 판매실적은 0.7%에 불과했다.

토요타는 내년 상반기 들어서야 국내에서 처음 순수전기차인 렉서스 소형 전기 SUV인 UX300e를 출시할 예정이다. 올해 무공해차 판매 일정이 ‘0’인 셈이다.

BMW그룹코리아가 연말 이후 출시할 순수전기차 2종. 왼쪽부터 중형 SUV iX, 중형 세단 i4. 출처= BMW
BMW그룹코리아가 연말 이후 출시할 순수전기차 2종. 왼쪽부터 중형 SUV iX, 중형 세단 i4. 출처= BMW

환경부, 벌칙유예·실적대체 등 방안으로 계도기간 부여

쌍용차와 BMW, 토요타 등 3개사가 현재까지 출시 확정한 올해 이후 신규 전기차 라인업이 4종에 불과한데다 출시 일정이 투명한 점도 부정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업체별로 무공해차 보급 목표제를 수월히 달성하기 위해선 라인업을 늘려야 하지만 현재로선 신차 계획을 포괄적인 수준으로 제시한 상황이다.

쌍용차는 향후 코란도 이모션에 이어 중형 SUV, 픽업트럭 등 두 개 차종의 순수전기차를 출시할 방침이다. 이외 수입차 업체 2곳의 경우 BMW 2023년 12종, 토요타 2025년 15종 등 규모의 목표를 제시했다. 세 업체는 출시 일정을 더욱 세분화하지 않거나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청사진만 그린 형국이다.

토요타가 지난 4월 공개한 순수전기차 컨셉트카 bZ4X. 출처= 토요타
토요타가 지난 4월 공개한 순수전기차 컨셉트카 bZ4X. 출처= 토요타

물론 환경부는 업체들이 올해 보급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플랜B를 만들어 둔 상태다. 올해가 아닌 내년부터 무공해차 포함 저공해차 보급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업체에게 벌칙으로 기여금을 처음 부과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또 업체별 무공해차 개발 현황을 고려해 보급실적을 달성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했다. 보급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업체가 타사의 초과 실적을 매입하거나 충전 인프라를 구축한 실적을 무공해차 보급 실적으로 대체해주는 등 대안을 내놓았다. 환경부는 이 같은 대안을 담은 제도를 구체화해 오는 하반기 발표할 계획이다.

다만 환경부의 전기차 보급 목표에 미달될 경우 해당 업체게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번지며, 각 업체는 환경부의 유연성 있는 정책을 활용하는 한편 새롭게 도입된 무공해차 보급목표제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데 현재 주력하고 있다.

BMW그룹코리아 관계자는 “(무공해차 보급목표제를 비롯한) 국내 정책은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라고 본다”며 “BMW는 향후 순수전기차 신차를 잇따라 국내 출시하기로 결정했을 뿐 아니라 글로벌 사업장에서 친환경차 관련 설비 투자 규모를 확대함으로써 한국 정책 기조에 발맞춰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