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7일 종일 흐림. 강수확률 30%.

미세 먼지 보통, 초미세먼지 보통, 자외선 보통... '

요즘 모바일로 당일 날씨를 보면 나오는 내용입니다.

내용은 다르지만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형식이지 않나요?

'임진년(1592년) 5월3일

아침 내내 가랑비가 내렸다.

경상 우수사의 답장이 새벽에 왔다...'

예, 난중일기의 한 장면입니다.

통상 일기를 쓰게 되면 앞부분을 이렇게 시작하게 되는데,

사실은 나도 6월7일을 일기처럼 기록할 일이 있어 시작하다보니

과거와 달리 날씨 내용에 있어 많이 달라짐이 새삼 느껴졌습니다.

지난달 매스컴에서 인상적인 사진을 보았습니다.

골프 선수 이경훈이 미 PGA 골프대회에서 79전 80기만에 우승하며 우승컵을 들 때

7월 출산을 앞둔 그의 부인이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뱃속 아이를 양손으로 받쳐 든 만삭의

산모 모습을 내 옆에 있던 역시 만삭인 딸에게 보여주니 이번 달에 출산을 앞둔

자기가 선배라며 같이 안스러운 마음을 표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선배(?) 딸이 지난주 6월7일 출산을 했습니다.

만삭인 상태로 임신복을 입고, 식사라도 할라치면 무언가를 떨어뜨리는데,

하필 그자리가 아이가 있는 자리라서 우리가 농담으로 뱃속 아이가 무언가가 떨어지는

그게 궁금해서라도 빨리 나오고 싶겠다고 힘들어하는 딸을 놀렸는데,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조금은 일찍 새 생명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코로나로 병원은 보호자인 사위만 들어갈 수 있기에, 출산 날 병원 앞에서 격려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출산 후에도 코로나로 조심해야하기에 산모와 아이는 병원을 퇴원하는 주말이나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병원 앞에 있어도 어찌 할 도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딸의 출산 시간까지 아내와 함께 병원 주변을 돌았습니다. 구약 성경에 여호수아라는 선지자가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 여리고 성 주변을 그 백성들과 그냥 도는 것만으로,

성을 점령한 역사가 나옵니다.

딸애의 고생과 새 생명의 등장을 기대하면서 우리들 마음속에 바로 그 순전한 믿음의 마음이 간절히 일어났습니다. 과거 지금 고생하는 딸을 혼자 낳느라고 애썼을 아내 손을 너무 미안한 마음에 가만히 꼭 잡았습니다. 세 시간여 그런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사위로부터 기다리던 전화가 왔습니다.

순산했으며, 아이도 확인했고, 산모는 회복중이라고.

결국 사위가 딸애의 일차 보호자로서 산모보다 먼저 아이를 제일 처음 만나는 감격을 경험한 겁니다. 거기까지 확인하고 집으로 철수를 했습니다. 늦은 오후 시간대에 아이를 더 꼼꼼히 씻기고 분유도 먹인 모습을 동영상과 사진으로 보내왔더군요. 힘차게 우는 모습도.

그 모습을 집에서도 자꾸 보았고, 심지어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도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원래 밖에서는 소리 나는 동영상을 보는 걸 금기시했었는데 말이죠.

사위가 잠시 후에 가서 또 찍은 모습을 보내주었는데, 그사이 또 달라진 모습을 찾게 되며, 아이의 모습에 코 박게 됩니다. 새 생명이 벌써 너무 신기하고, 귀여운 게, 강력한 손자 바보가 되려나 봅니다.

바로 이렇게 순식간에 변하는 내 모습을 보니 여러 생각이 스쳐갑니다.

지내놓고 보면 아이를 낳아서 아이가 세살 무렵까지 크면서 보여준 귀여움, 신기함, 흐뭇함 등으로 내 아이가 내게 할 일, 효도는 99% 이상을 한 거라는데, 그걸 모르고 자식에게 기대하고 내 맘대로 하려 욕심 부리고 한 어리석음이 생각났습니다. 이제 딸은 산모가 되고, 아들은 결혼을 앞둔 오늘의 그들에게 너무 사랑 표현을 못하고, 일방적이기만 했던 과거의 미안함이 밀물처럼 밀려왔습니다. 수술을 한 산모는 정작 그날 아이를 보지 못하고, 다음날 아침에야 보게 됨이 많이 안타깝게도 생각되었는데, 그 또한 인생 같아 보였습니다. 사위와 딸도 지금은 아이를 유리창 너머로 밖에 볼 수 없음도 안타까워 보였습니다. 그러며 바라기는 이 순간 아이의 엄마와 아빠로서 아이를 직접 만지고 싶고, 안아주고 싶고, 함께 하고 싶은 간절한 지금의 마음들이 사진처럼 아주 오래 생생히 기억되고 남아있길 바랬습니다. 훗날 아이 키우는데 지치고, 시들해질 때 꺼내보라고 말이죠.

앞으로 시간대 별로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는 것처럼, 이제라도 좋은 할아버지가 되어야겠습니다. 이제 할배가 된 지 하루가 지난 입장서 너무 이른 생각이지만,

앞으로 바쁜 제 아빠, 엄마가 미처 챙기지 못하는 것을 뒤로 물러서 바라봐주고, 무조건 지지로 사랑을 전하는 게 할배의 역할 아닐까 하는 마음이 일었습니다. 그런 성숙의 시간들 속에서 아비로서 자식들에 부족하고 미안했던 점들도 풀어가면서 말이지요. 이제까지 주변 친구들 중에 할배 된 것을 자랑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을 그때 친구 할아버지들에게 흔쾌히 축하해주지 못한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 이 일기로 나 같은 기회를 열망하지만 본인들이 어쩌지 못해 속을 끓이는 친구들의 힘을 뺀 거나 아닌지 미안한 마음도 드네요.

앞서 언급한 5월3일자 난중일기는 나라 걱정에 비장하게 끝납니다만,

나는 누가 물어보지 않았어도 손자 맞는 감회를 이렇게 잔뜩 늘어놓았습니다.

하루가, 인생의 한 대목이 이렇게 또 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