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날씨로 직행하는 와중에 백신 접종률이 올라가면서 다음 달부터 해외여행이

성급히 얘기되고, 관련된 기업들의 주가가 올라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그런 성급한 기대처럼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면서 나 또한 코로나 종료 이후에 치유되거나 남을 문화나 흔적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며,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었으면 하는 것들을

이르게 생각해보게 됩니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확찐자나 집콕 같은 말들이 현상이 되었고,

부부관계 갈등에 기인된 코비 디보스나 타인에 대한 경계나 무관심 등도 얘기되었습니다.

확찐자나 집콕 같은 것들은 시간이 해결하겠지만, 코비 디보스나 타인에 대한 무관심 등은

한번 누른 후에 원상회복이 안 되는 자국처럼 남을 듯합니다. 나는 애경사 참석, 연중행사로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는 휴가, 우르르 유행을 따르는 문화 등, 너무 한 방향으로 몰리거나 형식적인 모임, 과시적인 행사 등은 지금처럼 없어지거나 절제된 채 그대로 유지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큽니다. 내용보다 형식이 중요한 만남, 똑같이 한 방향으로 달려가지 않으면 뒤 떨어 진다고 생각하는 문화에서 탈피했으면 하는 거죠. 물론 이 문화라는 게 확대하면 라이프 스타일, 직업, 교육, 가치관 등 매우 복잡다단해서, 시간을 가지고 해결을 논해야겠지만, 여기서는 다른 것은 제쳐두고 만남, 관계 등에만 국한해서 얘기해보는 겁니다.

그런 만남, 관계 등에 다양성이 있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기를 바라는 거죠.

여기서 구현된 다양성이 훗날 다른 분야로도 확대되길 바라면서 말이죠.

다양성을 생각하다 우연히 나무의 생장에서 다양성의 중요성이 언급된 것을 보았습니다.

목수이자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이 거의 박물학자급인 스파이크 칼슨이 쓴 책에서 모두가 선호하는 단일품종 나무로 정원수나 가로수가 통일되었을 때 닥친 비극을 보았습니다.

지난 125년 동안 북미의 도시 및 시골 지역에서 질병으로 인해 엄청난 크기의 숲과 가로수들이 여러 차례 수난을 겪었습니다. 20세기 초에 미국인들이 사랑한 밤나무가 곰팡이 균으로 해서 온갖 방지책을 동원했음에도 미국 전역에서 밤나무 40억 그루가 사라졌고, 그 주변에서 번창했던 경제와 문화가 피폐해지고, 다람쥐와 새, 나방의 개체수도 급감하는 수난이 있었습니다.

당시 그 현상을 지켜본 밤나무 전문가의 탄식이 내게는 오래 남았습니다.

‘4천만년 동안 적과의 모든 싸움에서 살아남았던 미국 밤나무가 40년 만에 사라졌다’

이후에도 유사한 원인들로 인해 느릅나무, 물푸레나무, 참나무도 같은 비극을 겪게 됩니다. 나무를 재배하는 사람들이 이런 재난을 연달아 겪은 후에나 나무가 보내는 메시지에 귀 기울이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다양성의 이해였습니다. 이후 도시의 산림당국은 15-10-5 규정을 만들어 권장했다고 합니다. 특정 과안에서는 15퍼센트 이하, 특정 속안에서는 10퍼센트, 한 종안에서는 5퍼센트 이하의 나무 심기를 권하는 것이죠. 과거 학교에서 식물의 분류체계를 공부할 때 종-속-과-목-강-문 체계 들어보셨지요. 이를테면 소나무 과에는 소나무 속과 전나무 속이 있고, 다시 소나무 속에는 소나무 종과 잣나무 종이 있는 겁니다. 결국 완벽한 나무란 없으니 질병 같은 위험에 대비하려면 여러 종류를 혼합해서 심으라는 거였지요.

사람 문화에서 나무로 너무 비약이 심했나요?

내 개인적으로는 코로나가 가져다준 가장 좋은 결과물이

다들 똑같은 방향으로만 가는데서 이탈해도 감당이 되는 문화,

이름 하여 다양성 보장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