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동훈 기자] BMW, PSA, 랜드로버. 이들 완성차 업체는 유럽 국적을 가지고 있으면서 최근 승용 수소차 시장 진출을 선언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현대자동차와 토요타 등 두 브랜드가 사실상 ‘하드캐리’하고 있는 승용 수소차 시장에 과감하게 도전한 셈이다.

쉬운 싸움은 아니다

승용 수소차 시장은 현재 현대차·토요타 등 양사의 텃밭으로 분류되고 있다. 15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 수소연료전지차 시장에서 현대차 6,500대, 토요타 1,600대씩 판매했다.

토요타의 중형 수소전기 세단 미라이(MIRAI) 2세대 모델.  출처= 토요타 미국법인
토요타의 중형 수소전기 세단 미라이(MIRAI) 2세대 모델. 출처= 토요타 미국법인

점유율로는 현대차 69.0%, 토요타 17.0% 등으로 양사 점유율만 전체(9,500대)의 86.0%를 차지했다. 혼다 200대, 지리 200대, 우룽(Wulong) 100대, 기타(etc) 800대 등으로 그 뒤를 이었다.

올해 들어서는 토요타가 수소차 모델 미라이(MIRAI)의 2세대 완전변경모델을 출시함에 따라 순위 변동이 있었으나 현대차와 서로 ‘그들만의 리그’를 진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장 지난 1분기 토요타 2,000대(49.0%), 현대차 1,800대(44.6%) 등으로 전체(4,000대) 가운데 93.6%를 차지했다.

현대차는 지난 1월 내비게이션 무선 업데이트, 10.25인치 계기반(클러스터) 등 보조사양들을 추가하고 가격대는 낮춘 중형 수소 SUV ‘2021 넥쏘’를 출시했지만 미라이의 아성에는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오는 2023년 넥쏘 2세대를 출시하기 전까지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자동차의 승용 수소차 넥쏘. 출처=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의 승용 수소차 넥쏘. 출처= 현대자동차

시장 잠재력 아직 크다...

전세계 수소차 시장은 현대차와 토요타 양사가 자웅을 겨루고 있다. 다만 아직 본격적인 성장세에 접어든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현대차가 지난 2013년 세계 최초의 양산형 수소차 ‘투싼ix 퓨얼 셀’을 출시한 뒤 2014년 토요타 미라이, 2016년 혼다 클래리티 2세대 등 순으로 양산형 모델을 선보였다. 다만 양산차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린지 7년만인 지난해까지 전세계 시장 규모가 1만대를 넘지 못했다.

양사를 제외한 완성차 업체들이 가솔린, 디젤 등 화석연료의 친환경성을 높이거나 배터리 전력으로 이동하는 순수전기차(BEV)를 개발하는 등 다른 파워트레인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기타 업체들은 수소연료전지 분야에서 현대차와 토요타 두 곳과의 기술격차를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승용 수소차 시장의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고 이 같은 결단을 내렸다.

허버트 디스(Herbert Diess) 폭스바겐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3월 미국 매체 파이낸셜타임스와 진행한 인터뷰 과정에서 “수소 승용차는 차량에 에너지를 전달하기 위해 연료전지와 전기 배터리, 전동 엔진 등을 모두 갖춰야 한다”며 “수소 승용차는 관련 물리한 이론의 불합리성 때문에 10년이 지나도 실용화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BMW가 최근 공개한 X5 기반 수소차 프로토타입. 출처= BMW
BMW가 최근 공개한 X5 기반 수소차 프로토타입. 출처= BMW

BMW “수소에서 희망 봤다”

반면 BMW와 랜드로버, 푸조 등 세 브랜드는 승용 수소차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이에 투자함으로써 비관론을 취한 브랜드와 대조된다. 이들 브랜드는 본사 소재지 정부의 정책에 편승하거나 수소차 시장의 잠재력에 대해 확신을 갖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하고 있다.

BMW는 내년 준대형 SUV 모델인 X5를 기반으로 상용화한 수소차 제품을 공개할 예정이다. 올리버 집스(Oliver Zipse) BMW CEO는 지난 12일 열린 연례 주주총회에서 X5 수소차를 소규모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수소 X5는 소비자에게 양산형 차량으로 제공되는 BMW 첫 모델이다. BMW는 이에 앞서 수소차 시제품을 테스트하는 등 자체 역량을 쌓아왔다. 지난 2015년 5시리즈 GT 모델을 기반으로 개발한 수소차를 시험 운행했고, 2012년 토요타와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을 공동 개발하기 시작했다.

2005~2007년 기간 수소와 화석연료를 동시에 사용하는 7시리즈 수소 하이브리드 모델을 선보임으로써 수소차 역량을 과시했다. 1979년 선보인 연구용 수소차 520h가 BMW의 첫 수소차 모델이다. BMW는 그간 순수전기차 시장의 성장세를 고려해 수소차를 연구 분야로 한정지어왔다. 다만 앞으로 수소차가 친환경차 시장의 주력 차종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고 수소차를 점진적으로 상용화하는데 공들일 방침이다.

BMW는 공식 홈페이지의 수소 사업 관련 페이지를 통해 “BMW는 앞으로 수소차가 순수전기차와 함께 지속 가능한 모빌리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며 “수소 인프라가 필요한 만큼 마련되고 수소가 좋은 가격에 제공되며 차량 가격이 인하할 경우 소비자에게 익숙한 무공해 기술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푸조의 전기 중형 밴 이-익스퍼트. 출처= 푸조
푸조의 전기 중형 밴 이-익스퍼트. 출처= 푸조

푸조, 수소차 사업 시작은 ‘밴’부터

프랑스 완성차 브랜드 푸조를 운영하는 스텔란티스(PSA-FCA 합병사)도 연말 중형 수소 밴 이-점피(e-Jumpy)를 유럽 등지에 출시할 계획이다. 이-점피 뿐 아니라 해당 차량과 동일한 플랫폼을 사용하는 시트로엥 이-익스퍼트(e-Expert), 오펠 비바로-이(Vivaro-e) 등 두 모델을 동시에 내놓을 예정이다.

해당 모델들은 동일한 차량 시리즈 명칭을 지닌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밴 모델의 플랫폼을 공유한다. 타이어 업체 미쉐린과 차량 전장업체 포레시아(Faurecia) 등 두 프랑스 기업의 수소분야 합작사 심비오(Symbio)가 개발한 수소연료전지 기술을 탑재했다. 한번에 250마일(약 400㎞)를 달릴 수 있고 최고출력 100㎾(약 136마력), 최대토크 260Nm(약 26.5㎏·m) 등 수준의 구동력을 낸다.

PSA는 브랜드 인수합병(M&A)을 실시하거나 프랑스 정부의 수소산업 관련 정책을 바탕으로 수소차 관련 역량을 쌓아왔다. 지난 2017년 수소차 관련 역량을 자체적으로 구축해온 완성차 브랜드 오펠(Opel)을 미국 완성차 업체 제너럴모터스(지엠)로부터 인수함으로써 시너지를 도모해왔다. 오펠은 독일 마인츠 카스텔(Mainz-Castel)에 대체동력센터를 운영하고 수소차 컨셉트카 하이드로겐(HydroGen) 시리즈를 개발하는 등 성과를 냈다. 푸조, 시트로엥 등 두 브랜드는 프랑스 원자력위원회(AEC)와 함께 지난 2006년 파리 모터쇼에서 첫 수소 컨버터블 이퓨어(Epure)를 공개하기도 했다.

PSA는 프랑스 정부의 수소산업 육성 정책에 힘입어 지난 2001년부터 푸조를 앞세워 수소차를 본격 개발해왔다. 프랑스 정부는 당시 푸조가 1990년대부터 전기차 관련 역량을 쌓아온 점에 주목해 수소차 개발 과정을 지원했다.

PSA는 현재로선 수소차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긴 주행거리를 필요로 하고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을 여유롭게 탑재할 만한 제원을 갖춘 경상용차 모델에 집중하고 있다. PSA가 통상 연 16만대의 중형 밴을 판매하는 등 경상용차 시장에 대한 경쟁력을 갖춘 점도 이 같은 제품 전략에 반영됐다.

다만 아직은 소규모 시장으로서 잠재적 기회가 존재하는 수소차 시장에서 승용차까지 라인업을 확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는 상황이다. PSA는 실제 수소사업 관련 언론설명자료를 통해 “스텔란티스는 수소전기 경상용차를 첫발(first step)로 수소 경제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재규어랜드로버는 지난 2월 공개한 전동화 전략 리이매진의 일환으로 5년 안에 순수전기차 6종을 출시할 계획이다. 출처= 재규어랜드로버
재규어랜드로버는 지난 2월 공개한 전동화 전략 리이매진의 일환으로 5년 안에 순수전기차 6종을 출시할 계획이다. 출처= 재규어랜드로버

랜드로버, 영국정부의 수소사업 주체로 ‘픽’

랜드로버는 다른 두 브랜드에 비하면 수소차 모델을 늦게 출시할 예정이다. 다만, 수소차의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신차에 관해선 무소식인 타 브랜드보단 앞서 차량 출시 일정을 구체화하는데 성공했다.

지난 2월 랜드로버 브랜드를 운영하는 영국 완성차 업체 재규어랜드로버는 내년 안에 수소연료전지를 탑재한 SUV의 시제품(프로토타입)을 시범 운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규어랜드로버는 당시 새로운 전동화 전략 ‘리이매진(Re imagine)’을 공개하는 과정에서 수소차 부문 개발 계획을 밝혔다. 비교적 크고 값비싸지만 구매력 강한 소비자의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SUV 모델에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을 탑재할 예정이다. 해당 모델의 구체적 제원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업계에서는 해당 수소차 모델이 SUV 전문 브랜드 랜드로버의 준중형 모델 이보크(EVOQUE)를 기반으로 생산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재규어랜드로버가 영국 정부의 수소연료전지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던 데엔 모회사인 인도 완성차 업체 타타 모터스의 관련 역량이 존재하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재규어랜드로버는 앞서 지난해 6월 민관 협력 수소사업인 프로젝트 제우스(Project Zeus)의 주축 업체로 선정된 사실이 알려진 후 수소차 분야에서 급부상했다. 프로젝트 제우스에는 국고 7,350만파운드(약 1177억원)가 투입됐다. 재규어랜드로버와 델타 모터스포츠, 마렐리 오토모티브 시스템즈 등 민간기업과 공기관인 영국 배터리 산업화 센터(UKBIC) 등 민관 주체들이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해 수소연료전지를 개발한다.

타타모터스는 지난 2008년 재규어랜드로버를 인수한 뒤, 2017년 인도 정부 부처와 협력해 수소연료전지 버스 모델인 스타버스(Starbus)를 공개했다. 상용차에 초점 맞춰 수소연료전지 기술을 개발해왔지만, 수소차를 상용화한 점에서 재규어랜드로버의 수소차 사업과의 시너지를 도모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재규어랜드로버는 정부 지원을 받기 전까진 내연기관차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로서 입지를 구축한 가운데 순수전기차 시장만 제한적으로 공략해왔다. 다만 영국 정부의 강력한 수소차 산업 육성책과 모기업의 수소사업 역량을 등에 업고 관련 역량을 더욱 강화해나갈 것이란 방침을 세웠다.

재규어랜드로버는 지난 2월 리이매진 전략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재규어랜드로버의 목표는 오는 2039년까지 공급망, 제품 등 운영 전반에 걸쳐 탄소 배출량을 제로(0)화하는 것”이라며 “이 야망의 일환으로 (수소를 비롯한) 청정 연료전지 전력을 채택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최근 글로벌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속속 수소 사업에 뛰어듦에 따라 수소차 시장이 갈수록 가파른 성장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당장 미국 시장조사업체 리포트링커(ReportLinker)는 수소연료전지차 시장의 규모가 올해 2만168대에서 오는 2028년 59만6,255대로 성장할 것이라 전망했다.

리포트링커는 “각국 정부가 수소차 관련 보조금 정책을 적극 펼치고 있는 가운데 완성차 업체들과 협력해 입지를 강화해나가고 있다”며 “이 가운데 승용차 부문에선 기업 전략과 개인 소비자 수요 증대 등 요인이 시장 성장세를 견인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