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이 있는 가정의 달이 지나고 있습니다. 서구에는 어린이날이 별도로 없는데, 이유가 매일이 어린이날이라서 그렇다고 하는데, 실제 우리 아이들은 어느 쪽을 더 좋아할까요?

우리나라 같은 경우와 서구의 경우 중 어느 쪽이 좋은가 물으면? 아이들은 예외 없이 둘 중 하나가 아니라 양쪽 다를 택할 듯 한데요. 문득 얼마 전 들은 선배 손자가 생각났습니다.

평소 사부라 부르는 선배를 스승의 날 앞두고 만나 같이 식사를 나누었습니다.

여러 얘기들을 두서없이 나누다가, 당신이 초등 4년 때 만난 담임선생님 얘기를 전해 주었습니다. 너무 고마운 선생님이었다며, 그 어린 시절의 꼬마들에게 선생님은 자못 심각한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사람은 살기위해 먹느냐, 아님 먹기 위해 사느냐? 또 닭이 먼저냐 아니면 알이 먼저냐? 그 시절 자신을 포함한 아이들이 어떻게 대답하고, 선생님이 어떤 반응으로 대했는지는 생각이 안 나지만, 사는 것이 중요한 거라는 걸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희미하게 깨닫게 해주었다고 하더군요. 그게 또 처음 만난 철학이었겠지요. 스승의 날 근처에 자신의 어릴 적 나이를 지나는 손자에게 옛날 생각이 나서 선생님이 던진 질문을 던져보았다고 합니다.

손자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먹기 위해 산다고 답을 한 겁니다.

순간 선배는 머쓱해졌지만, 요즘 아이들 기준에서는 너무 당연하겠구나 생각하며

많이 먹고 쑥쑥 크며 살라고 마무리를 했다고 하네요. 내심 서운한 기색이 살짝 보였습니다.

할아버지가 되어 같은 상황이 되면 어떠한 마음이 드실 런지요?

나는 선배에게 너무 서운해 하지 말라고, 선배의 고마운 선생님도 요즘 아이들 마음 헤아려 충분히 격려를 할 것이라 얘기주고 싶었습니다.

요즘 나는 집을 들고 나며 텔레비전 앞에 놓인 대여섯 개의 꼬마 신발을 쳐다보며

그저 슬그머니 미소 짓게 됩니다. 웬 꼬마 신발이냐구요?

다음 달에 아이를 출산하게 되는 딸애가 그 소식을 주변 지인들에게 전하자,

순식간에 아이용품이 모아졌는데, 그중 아이 꼬마 신발 만해도 십여 개가 모였습니다.

‘신발의 여왕인 이멜다도 아니고...’ 라며 과(過)한 것 아닌가하는 생각은 전혀 안 들고,

오히려 신발만 추려서 텔레비전 앞에 놓아두고 즐기는 내가 있습니다. 너무 앙증맞아 장난감 같기만 합니다. 너무 귀여워, 볼 때마다 웃게 됩니다. 아이 자체가 신기고, 신비하니 그저 아이 우선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분위기에 처하니 아이다움이 자꾸 생각되고, 아이들의 마음도 잘 이해할 듯합니다. 자식 때와 너무 다른 마음입니다.

아주 예전부터 알고 지내는 선배가 한분 계시는데, 안동의 K가문으로 자칭, 타칭 양반인데, 남녀유별까지를 얘기했던 분이었습니다. 그분이 일찍 은퇴해서 강원도 깊은 산골로 낙향해서 산지 삽 십여 년이 되어갑니다. 얼마 전 만났는데, 거기서 나무 베고, 집 정리하고, 땔감 준비하고. 모든 일을 자체적으로 해나가는 입장이니 즐기기도 하지만, 많이 힘들겠지요. 또 같이 사는 유일 가족인 미안한 아내에게 최소한도 부탁을 모토로 살지만 서로 소통하고, 의지할 게 많을 듯 했습니다. 그중 나를 미소 짓게 한 게 무전기였습니다. 나무 가지를 베러 올라가면 위에서 아래로 무전기에 대고 말하고, 집밖에서 펜션 손님을 돕다가 필요한 걸 무전기로 얘기하면 집사람이 그걸 밖에 내놓는 식입니다. 장난스럽게, 재미있게 사는 게 보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고집스러웠던 얼굴이 많이 부드러워졌습니다.

결국 우리도 아이다움에 가까이 가려면 우리 스스로가 재미있게, 아이의 마음 근처로 가야함이 정답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부드러워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