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편은지 기자] 2030세대 여성을 중심으로 커진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이라는 이슈는 이제 산업계를 넘어 사회 전반이 주목하는 이슈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이들이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선 어떤 방안이 있을까.

전문가들은 혐오와 낙인 등으로 얼룩진 현 젠더갈등을 풀 수 있는 열쇠는 여성과 남성이 아니라 정치권의 몫이라고 입을 모은다. 표심을 잡기 위해 ‘이대남’들을 달래는 식의 정책이 아닌, 20대가 사회로부터 받는 차별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우선돼야한단 의미다. 또 기업들 역시 젠더갈등을 비롯한 사회 전반의 평등 의식에 대한 끊임없는 공부를 통해 방향성을 잡고 소비자보다 한발 앞서 나가야한다고 조언했다. 

젠더갈등 악용하는 정치권, 깊어지는 갈등

전문가들은 극한으로 치닫은 젠더갈등이 지난 4·7 재·보궐선거를 기점으로 짙어졌다고 분석한다. 재보궐선거에서 20대 남성 유권자 72.5%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를 지지했다고 나타난 출구조사 결과에 대해 정치권에서 ‘지속적인 민주당의 여성 중심 정책에 반발한다’는 해석을 내놨기 때문이다. 공개적으로 민주당의 여성 중심 정책을 문제 삼으며 민주당의 패인을 여성에게 돌리면서 젠더갈등을 부추겼단 것이다.

이를 두고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 최고위원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SNS를 통해 공개적으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는 이 전 최고위원이 지난 9일 재보궐선거 결과를 두고 “민주당이 2030 남성의 표 결집력을 과소평가하고 여성주의 운동에만 올인했으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며 이대남의 표가 야당으로 몰린 배경으로 젠더갈등을 지목하며 불거졌다. 여기에 진 전 교수는 “아주 질 나쁜 포퓰리즘”이라고 전면 반박했다.

실제 정치권에서는 여야 할 것 없이 지난 재보궐선거 이후 이대남을 달래기 위한 각종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젠더갈등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군복무’와 관련한 정책이 대부분이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군 복무자를 국가유공자로 예우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김남국 민주당 의원은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론화하겠다고 했다. 전용기 민주당 의원도 공기업 승진평가에 군경력 반영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역시 군 전역자들에게 사회출발자금 3000만원 지급 구상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전문가들은 정치권에서 이대남, 이대녀 등 20대 남녀를 구분 짓고 정치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젠더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20대 남성들이 젠더 갈등에서 주장하는 ‘차별’의 중점에 도사리고 있는 사회적 불안감, 고립감이 정말 젠더갈등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대해 정치권에서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하단 것이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이대남의 표심을 얻기 위해 포퓰리즘적으로 젠더갈등을 점화시키거나 남혐 논란을 그대로 이어받아 이대남을 대표하려는 정치인들의 행위는 오히려 이대남들에게 ‘남혐에 대한 시각이 틀렸을 리 없다’는 확신을 주게 된다”며 “2-30대 청년세대가 심리적 고립감, 경제적 어려움,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정책을 마련해야하는데 이를 마치 젠더갈등이 원인인 것처럼 부채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연 그들이 어떤 불안감을 갖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주거문제, 고용문제, 경제적 어려움 등 근본적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라며 “청년세대들의 모든 고통과 불행의 원인을 다른 성별로 돌리고, 그것이 진짜 잘못인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정치인들의 행위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 선행돼야 사회적인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홍희진 진보당 인권위원장(전 전국여성연대 사무국장)도 “사회적으로 20대 청년들이 평범한 아르바이트 구하기가 어려워졌을 만큼 살기 어려워지고 있고, 이 상황에서 객관적이고 보편적으로 점점 심해지는 빈부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해소가 우선돼야 한다”며 “정치권이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기 때문에 20대 청년이 가질 수 있는 파이가 점점 줄고 있고, 청년 남성들은 문제제기를 할 때 여성들이 빼앗아가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젠더’ 위기관리는 초면이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감

GS25의 ‘손가락 포스터’로 갑작스레 젠더갈등을 맞닥뜨린 기업들 역시 앞으로 젠더 이슈를 기업 내 중요한 가치로 설정하고, 끊임없는 교육을 통해 방향을 재설정해야한다고 전문가들은 바라봤다. 그간 기업 내에서 권력을 가진 기성세대들이 2030세대를 중심으로 펼쳐진 젠더갈등을 깊이 파악하지 못한 탓에 일어난 첫 사례란 평가다.

남성들이 젠더 이슈를 문제삼아 기업을 향해 이토록 목소리를 높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때문에 위기관리 전략을 오랜 시간 동안 구축해왔음에도 사실상 이번에 논란의 대상이 된 기업들은 모두 고개를 수그리는 것 말곤 방도가 없었다. 당장 고객을 대거 뺏길 수 있는 상황이란 불안감과 전례없던 위기 의식이 결합된 결과다. 실제 논란이 시작된 GS25에서부터 한국맥도날드, BBQ 등은 모두 논란이 불거지자마자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없던 종류의 불만이 아주 큰 규모로 몰려왔고, 기업 윗선에선 생소한 이슈인데다 정확히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데 시간이 꽤 소요됐을 것”이라며 “MZ세대를 이해해야 한다는 흐름은 이미 유통업계 전반에 퍼져있지만, 이번 사태로 젠더 감수성에 대한 기업들의 문제 의식이 생겼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페미니즘이 과도기에 있으며 젠더 갈등이 격화되는 만큼, 기업들 역시 책임 의식을 갖고 각 기업이 이와 관련한 입장을 정확히 갖고 있어야한다고 꼬집었다. 급한불 끄기 식의 사과와 진정성 없는 이해는 젠더 갈등에서 남녀 간 힘겨루기를 부추길 수 있단 우려에서다.

윤김 교수는 “처음 문제가 제기됐을 때 많은 업계 관계자들이 억측이라고 해명 했으나 사실상 목소리가 묻히지 않았나. 집게손가락의 의미가 남초 사이트에서 해석한 의미와 달랐을 때 기업들은 무릎 꿇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며 “이번 상황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이 포스터의 내용이 이렇게 읽힌다’는 기업의 견고한 입장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평등이라는 가치를 지향하는 기업이며 편가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스탠스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며 “평상시 컨텐츠 등에 대한 사내 교육 프로그램, 젠더갈등에 대한 위기관리 등을 통해 기업들이 평등 의식에 있어 앞서가고 있다는 것을 소비자들에게 보여준다면 이번과 같이 진땀 흘리는 상황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