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전화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네가 다시는 전화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평생을 뒤척였다.‘

최승자 시인의 시 한 구절입니다.

시는 연인 사이의 환희, 슬픔을 얘기하는 것이겠지만,

나는 사람 사는 관계, 사람들 사이의 관계로 생각이 확장되었습니다.

사람 사이에서 갈등 상황이 생겼을 때, 내가 먼저 나서서 사과하거나 마음 고백하지 않으면

여기 시처럼 내가 괴롭고,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불편한 일이 생기면

잘잘못을 떠나 내가 먼저 나서서 사과하거나 손을 내미는 일이 많았습니다.

물론 그러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만...

얼마 전 시골을 갔더니 부친이 동행을 부탁해서 부친 40년 지기의 묘소를 어렵게 찾았던 일이 있었습니다. 사연은 이랬습니다. 40여년 직장에서 각별하게 교류해왔던 분으로 퇴직 후도 월에 한번 씩은 만나 식사도 하고 세상 얘기도 나누어 왔습니다. 코로나가 심해지던 시기에 갑자기 그분께서 몸이 좀 안 좋으니 편해지면 연락하겠다고 전화를 해 온 겁니다. 코로나는 나아지지 않고,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날 때 부친께서 궁금해서 전화를 드렸더니 전화가 안 되었습니다. 그러다 그분 형님을 우연히 길에서 만났는데, 얼마 전 작고해서 고향 선산에 모셨다는 얘기를 들은 겁니다. 황당하고, 황망한 마음에 벼르고 있다가 내게 가자고 요청을 한 게지요. 주소만 가지고 간 동네서 다들 모르는 상황이라 헤매고 있는데 마침 현지 농협조합장인 분을 만나 어렵사리 묘소를 찾았습니다. 부친은 묘소 앞에서 한동안 묵념을 한 후, 꽃 사들고 정식으로 다시 오겠다는 말씀을 남기고 어둑해지는 길을 내려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부친은 탄식하듯 혼잣말을 했습니다.

‘허참, 그렇게 갑자기 갈 수가 있나? 경황이 없었겠지만, 최소 고인과 내 관계를 알면 알려 주었어야하는데... 요즘 문상을 가보면 꼭 와야 할 사람들의 얼굴도 볼 수 없는 세상이 되었던데, 혹시 그런 인심과 세태를 반영해서 연락 안 한 건가? 허참!’

구순 가까워진 부친이 몇 시간을 마을과 산으로 왔다 갔다 한 게 내심 걱정되어

한 마디 드리려다 그만 가만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최근 아들과 여러 얘기를 나누다 아들이 내게 물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아들은 훗날 자기에게 아빠로서 무엇을 남길 것인지를 물어왔습니다.

아무리 부동산 광풍에, 모든 것이 다 오르는 시대라 해도

아들이 내게 집이나 돈 같은 그 지점을 물어본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내 가족 최우선’으로 살아오지 못한 내 입장서 순간 답이 막막했습니다.

할아버지가 도리를 찾아 저렇게 마을과 산을 헤매듯이,

아빠도 훗날 밤에 뒤척이지 않기 위해서 오래가는 가치나 정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살고, 남길 것이라고 말해야할지 많이 망설여졌습니다. 마음 편히 사는 게 지혜로운 거라고 얘기하려는데, 너무 밝은 5월의 찬란한 햇살에 내가 낡아짐을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