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29일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공시 대상 기업집단(대기업 집단)의 동일인 지정 결과를 발표한 가운데 총수 변경은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우 정몽구 명예회장에서 정의선 회장으로, 효성그룹의 경우 조석래 명예회장에서 조현준 회장으로 교체됐다.

신규 대기업 집단으로는 쿠팡, 반도홀딩스, 대방건설, 현대해상화재보험, 한국항공우주산업, 엠디엠, 아이에스지주, 중앙이 지정됐다. 셀트리온, 네이버, 넥슨, 넷마블, 호반건설, SM, DB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신규 지정됐다.

재계에서는 이번 공정위 발표에서 정의선 회장의 동일인 지정, 그리고 총수없는 대기업으로 지정된 쿠팡의 사례에 주목하고 있다.

21년만의 변경, 현대차 총수

공정위는 정몽구 명예회장이 생존한 상태지만 사실상 정의선 회장이 외형적 지배력과 내형적 지배력을 모두 가지고 있다 판단해 지난달 현대차가 제출한 동일인 변경 요청안을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 현대차는 정의선 회장 체제로 전환한 후 그룹의 주요 의사결정이 정 회장을 중심으로 작동하고 있다. 실제로 정 회장이 정몽구 명예회장이 보유한 현대차(5.33%), 현대모비스(7.15%) 등 주력회사에 대한 의결권을 받은 상태에서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 등 굵직굵직한 전략적 판단에는 항상 정 회장의 결단이 있었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현대모비스 등기이사직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정 회장은 현대차를 단순한 내연기관 자동차 회사가 아닌 통합 모빌리티 플랫폼 회사로 변신시키는 중이다. 그 연장선에서 공정위는 이번 동일인 변경을 통해 인공지능(AI) 등 신기술, 신산업 출현, ESG라는 신경영 패러다임 대두 등 급변하는 환경에 맞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한 상황임을 감안했다는 설명이다.

총수없는 대기업, 쿠팡

쿠팡이 총수없는 대기업이 된 점도 눈길을 끈다. 공정위는 쿠팡의 자산이 5조원을 넘어 대기업 지정에 나서면서도 10.2%의 지분을 가진 김 의장을 총수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뉴욕증시 상장 후 차등의결권을 무려 76.7%를 가지게 됐으나 김범석 의장은 총수가 되는 것을 피했다.

쿠팡이 총수없는 대기업이 된 이유로 공정위는 김범석 의장의 국적인 미국이기 때문에 관련 규제에 대한 제도가 미비하다는 점을 들었다. 일각에서는 미국과의 통상마찰을 우려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말이 나오지만 이 역시 확실치않다.

최초 공정위는 김범석 의장을 총수로 지정하지 않으려 했으나 외부 시민단체 등의 반발로 총수 지정에 무게를 뒀다. 이를 위해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전원회의 토의안건으로 해당 사안을 올리기도 했으나 발표 직전 ‘제도 미비’라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는 말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특히 공정위가 갖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네이버 등 국내 ICT 기업의 경우 이해진 창업주의 총수 지정을 강행한 가운데 소위 형평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대기업 총수로 지정되면 갖은 규제가 도입되기 때문에 ICT 기업들은 총수 지정을 피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런 가운데 쿠팡 김범석 의장이 미국 국적자라는 이유로 공정위의 총수 지정을 피해가자 특히 국내 ICT 업계에서는 “국내 ICT 대기업 오너들은 모두 국적을 바꿔야 한단 말인가”라는 자조섞인 말도 나온다.

다만 이와 관련해 쿠팡을 질타하며 ‘검은머리 외국인’에 대한 경각심을 필요이상 키울 필요는 없다는 말도 나온다. 공정위가 쿠팡을 ‘총수없는 대기업’으로 지정한 결정적인 변수가 바로 제도 미비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국내 사정만 염두에 둔 정책 자체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는 쿠팡의 속내와는 별도로 공정위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다. 글로벌 경제 시대 국경없는 시장의 충돌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공정위가 ‘아직도’ 한 발 앞서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다행히 공정위도 이와 관련한 논란을 의식해 추후 제도를 손질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아무리 변화의 속도에 가장 진중하게 움직여야 하는 공무원 조직이라도, 시대의 흐름을 선제적으로 따라가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