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민규 기자] 어느덧 여름이 성큼 다가오면서 국제 유가에 대한 '낙관론'도 힘을 받고 있다. 

유가 등락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변수로 꼽히는 코로나19 확산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나 금융 투자 업계는 유가 상승에 베팅하는 분위기다.

미국 투자 리서치 업체 펀드스트랫의 창립자인 톰 리는 지난 19일 현지 매체 CNBC에 출연해 올 여름 WTI 가격이 배럴당 80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측했다. 미 투자 은행(IB) JP모건의 경우 브렌트유를 기준으로 유가가 다음 달까지 70달러를 돌파하고, 2021년 말에는 74달러 대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20일(현지시간) 유가는 하루 만에 하락했다. 5월 인도분 WTI는 전장 대비 1.5%(0.94달러) 내린 배럴당 62.44달러에 청산됐고, 근월물로 넘어온 6월 인도분 WTI도 1.2%(0.76달러) 떨어져 62.67로 거래를 마쳤다. 영국 북해 지역 브렌트유 6월물은 0.7%(0.48달러) 밀린 66.57달러에 정산됐다.

최근 인도를 중심으로 파동을 키워 가는 코로나19 확산세와 이란 핵 합의(포괄적 공동 행동 계획; 이하 JCPOA) 관련 협상의 진전이 유가를 끌어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럼에도 큰 틀에서 유가 강세 전망은 견고한 모습이다. 석유 수요 회복이 수치적으로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근거 있는 상승세

유가를 대표하는 두 벤치마크인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과 브렌트유의 가격은 지난주 동안 6% 넘게 뛰었다. 이는 지난 3월 첫째 주 이후 6주 만의 최대 상승 폭이다.

같은 기간 미국의 원유 재고는 시장 예상치보다 2배 넘게 급감하며 석유 수요 증가를 시사했고, 세계 최대 원유 수입인 중국은 올해 1분기 국내 총생산(GDP)이 24조9,310억 위안(약 4,290조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8.3%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중국의 이번 경제 성장 폭은 분기별 GDP를 집계하기 시작한 지난 1992년 이후 최대 수준이다.

중국 통계 당국에 따르면 중국의 1분기 원유 정제 규모는 전년 동기에 비해 16.5% 확대됐으며, 코로나19가 확산한 지난 1년간 오히려 정유 시설을 증설해 왔다. 대표적으로 중국 최대 석유 기업인 시노펙은 하루 평균 20만 배럴의 원유를 처리할 수 있는 정유 시설을 신설했다고 미국 에너지 전문 시장 조사 업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 플라츠 등이 보도한 바 있다. 또한 3월 들어 중국 정유사들이 유지 보수에 돌입하면서 현지 원유 정제 규모가 일 평균 70만 배럴 가량 줄어들기는 했으나, 이미 중국 정유 업체들은 1월~2월 중 석유 수요 증가에 맞춰 정유 규모를 증대한 상태였다.

코로나19발 유가 폭락으로 고사 위기를 맞은 미국 셰일 업계도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며 유가가 지난 6개월 동안 크게 반등하면서, 미국 석유 개발 및 유전 서비스 업체들의 파산 신청 수도 작년 3분기 44개에서 올해 1분기 13개로 크게 감소했다.

또한 미국 내 원유 시추 활동 및 유전 관련 서비스 분야 일자리 수도 증가세를 띄고 있다. 시추 리그는 작년 10월 174기에서 올해 3월 289기로 약 66% 늘었으며, 수압 파쇄 인력도 지난 6개월 동안 50% 가량 증가해 지난 3월에는 2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현지 유전 서비스 일자리는 지난해 1억2,000개 감소했으나, 지난 3월 2만3,000개가 다시 생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프랑스 석유 기업 토탈이 우간다와 탄자니아의 미개발 유전을 시추하는 프로젝트를 조만간 승인 받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해당 사업은 50억 달러(약 5조6,000억 원) 규모로 추산되며, 우간다의 알버트호 연안을 시추하는 것과 탄자니아 탕가항에 원유를 보낼 1,400여 킬로미터(km) 길이의 송유관을 건설하는 것이 골자다.

입 모아 '유가 상승'

여름을 앞두고 있는 현재 눈에 띄는 동향은 석유 시장 분석 기관들이 수요 회복에 입을 모으고 있는 점이다. 

세계 석유 수요 전망에서 때때로 엇박자를 내곤 했던 국제 에너지 기구(IEA)와 석유 수출국 기구(OPEC)도 이달에는 2021년 석유 수요 예상치를 일제히 상향했다.

석유공사 석유 동향팀의 이정성 과장은 지난달 '포스트 팬데믹, 증가한 유가 급등 위험성'이라는 보고서를 발간, '원유 슈퍼 사이클' 전망을 재강조했다.

이정성 과장은 유가 급등 가능성을 제기하며, 네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 및 보급으로 올해 하반기부터 바이러스가 통제되기 시작하면서 석유 수요가 회복되고 ▲저유가로 인해 미국을 중심으로 원유 생산 능력이 파괴되면서 석유 공급 부족이 발생하며 ▲미국 민주당 집권으로 대규모 경기 부양책이 시행되면서 유가가 상승 압력을 받고 ▲이로 인해 유가 강세가 유발되지만 결국 에너지 전환 가속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이 과장은 "올 여름 미국에서 휘발유 수요 다이너마이트가 터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휘발유를 소비하는 나라인 데다, 드라이빙 시즌에는 휘발유 소비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그는 "현 속도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진행될 경우 석유 수요는 올해 미국 드라이빙 시즌 때 부분적으로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풀 스케일'로 발생할 것"이라며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되지 않더라도 상황 개선이 뚜렷하고 이른바 '보복 소비'가 발생하면 휘발유 뿐 아니라 다른 석유 제품들에 대한 수요까지 증가하면서 총 (석유) 수요는 평년을 초과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라고 언급했다.

이어 이 과장은 "실제로 지난해 코로나19 통제에 일찌감치 성공했던 중국의 경우 항공유 수요 부진과 수출 침체에도 불구하고 전체 석유 소비량이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을 넘어섰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일부 석유 시장 전문가들은 아직 항공유 수요가 좀처럼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말까지 세계 석유 수요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인 하루 1억 배럴 이상으로 회복할 것을 전망하고 있다.

또한 코로나19 백신 보급 등의 상황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유럽 국가들도 2분기 이후에는 백신 수급이 개선되면서 유가 강세가 이어질 확률이 높다는 진단이다.

그러나 엇갈린 전망도 나온다.

글로벌 시장 조상 업체 IHS마킷의 다니엘 예긴 부회장은 앞으로 1년간은 유가가 현재와 유사한 수준으로 유지될 것으로 예상했다. 글로벌 경제가 회복돼도 원유는 향후 1년간 배럴당 60달러~75달러 범위에서 거래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예긴 부회장은 "석유 수요가 급증하더라도 이에 대한 공급이 충족될 수 있을 것"이라며 "또한 유럽의 경제 회복 여부가 불분명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유가와 관련한 불확실성은 산재해 있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