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가스전. 출처=한국석유공사
동해 가스전. 출처=한국석유공사

[이코노믹리뷰=박민규 기자] 우리나라 석유 개발 사업의 첨병인 한국석유공사가 '완전 자본 잠식' 상태에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정부 시절 빚을 내 가며 무리하게 추진했던 해외 자원 개발 사업들이 실패한 데 따른 여파다. 

석유공사는 구조 조정과 부실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자력 구제를 꾀하고 있으나, 경영 정상화까지 험로가 예상된다는 것이 국내 석유 업계 안팎의 중론이다. 회사 내부는 "자본 잠식은 이미 예견된 일"이라며 크게 동요하지 않는 분위기지만, 장기적으로 해외 자원 개발 사업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러한 상황에서 석유공사가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라는 말이 나온다. 바로 국제 유가 회복과 동해 가스전 탐사 성공이다. 

창사 이래 첫 자본 잠식…"올 것이 왔다"

석유공사의 경우 지난해를 기점으로 부채가 자산보다 많아지면 지난 1979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완전 자본 잠식에 처했다.

20일 공공 기관 경영 정보 공개 시스템에 따르면 석유공사의 2020년 총 부채 규모는 약 18조6,449억 원으로, 전체 자산인 17조5,040억여 원보다 1조1,409억 원 더 많았다. 또 전년에 비해 부채는 약 5,139억 원 늘어난 반면, 자산은 1조1,578억여 원 줄어들었다. 2006년까지만 해도 3조5,000억 원 가량이었던 부채는 2011년에 약 20조 원으로 큰 폭 불어난 이후 17조~18조 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전체 자산의 약 83%에 해당하는 14조6,685억여 원이 이자 부담 부채로, 매년 나가는 이자만 4,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석유공사의 부채 급증은 전 정부에서 차입에 의존해 벌였던 해외 자원 개발 사업들이 실패한 탓으로 분석되고 있다.

당시 추진된 '자원 외교' 첨병이었던 석유공사는 이라크 쿠르드 유전-사회 간접 자본(SOC) 연계 사업에 1조원 가량을, 캐나다 하베스트 유전 인수에 약 4조8,000억 원을 각각 투입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해당 사업들의 대상이 '깡통 유전'이거나 물이 98% 가량인 원유가 나오는 유전 등으로 밝혀지면서, 석유공사는 막대한 손실만 떠안게 됐다.

해외 석유 매장량 확보를 위해 석유 개발 기업 인수 합병(M&A) 및 자산 인수 등을 확대하면서 이를 위한 차입이 증가, 2008년 이후 이자 부담 부채가 늘었다는 것이 석유공사 측의 설명이다.

설상가상으로 작년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국제 유가까지 급락하면서 석유공사가 과거에 배럴당 80달러~100달러 대에 매입했던 해외 유전들의 자산 가치도 함께 낮아졌다. 연 평균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해를 기준으로 배럴당 42.29달러를 기록, 전년 대비 약 33% 떨어졌다. 

안에서는 구조 조정, 밖에서는 부실 자산 정리

석유공사도 '부채의 늪'에서 탈출하기 위해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안에서는 구조 조정 등으로 허리띠를 조이고 밖으로는 부실 자산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재무 구조 개선에 나서는 모습이다.

석유공사는 페루 석유 업체 사비아페루 지주사(OIG) 지분 50%를 올해 초 모두 처분했다. 앞서 석유공사는 콜롬비아의 국영 석유 회사인 에코페트롤과 함께 2009년 사비아페루를 인수, 유전 1곳과 광구 1곳을 개발해 왔다. 또 석유공사는 캐나다 하베스트 유전 등 비우량·비핵심 자산을 매각하는 것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 석유공사는 내부적으로는 최근 2년에 걸쳐 구조 조정을 실시했으며, 2017년에 유동성 부족으로 2,200억여 원에 내놓은 울산 소재 본사 사옥을 다시 매입하는 것도 검토하는 중이다. 석유공사는 사옥 매각 이후 연간 85억 원 가량씩, 현재까지 총 426억원에 이르는 임대료를 납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석유 공사의 부채 문제는 가까운 시일 내에 개선되기 힘들 전망이다. 석유공사는 '2020년~2024년 중장기 재무 관리 계획'에서 당사의 부채가 오는 2024년에는 무려 2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온고지신의 해법, 통할까

석유공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가스전이자 한국을 산유국 반열에 올린 동해 가스전을 수소와 해상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의 메카로 만드는 것을 꾀하고 있다. 자원 매장량이 줄어 내년에 생산을 종료할 예정인 동해 가스전을 새롭게 활용하는 '온고지신' 전략이다. 

석유공사는 현재 동해 1 가스전을 활용한 200메가와트(MW) 규모의 부유식 해상 풍력 발전 사업을 노르웨이 국영 석유 회사 에퀴노르 등과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다. 현재 이에 대한 예비 타당성 심사가 진행 중이며, 그 결과는 이달 말에 발표될 예정이다.

또한 동해 가스전은 수소 생산 시 발생하는 이산화 탄소를 모아 저장하는 기지로도 활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실제로 동해 가스전을 미세 먼지와 온실가스 등을 저감하기 위한 지중 저장 실증 시험 용도로 활용하는 방안이 고려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CCU 사업은 당장의 수익성을 노리고 추진하는 사업이 아니다. 일단 석유공사에서 관심을 갖는 분야는 동해 '방어' 구조라는 것이 내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앞서 석유공사는 지난해 2월 동해에 있는 6-1 광구 동부·중부 지역에 대한 조광권을 확보, 해당 지역 내 '방어' 구조에 대한 탐사를 본격적으로 개시한 바 있다. 방어 구조는 동해 가스전에서 동쪽으로 약 40킬로미터(km) 떨어진 평균 수심 1,000미터(m)의 심해 지역에 자리한 심해 퇴적층이다. 통상적으로 심해 퇴적층에서 가스가 발견될 경우 그 양이 대규모일 가능성이 높아, 석유공사는 방어 구조에서 동해 가스전의 10배 이상 규모인 천연 가스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를 포함해 석유공사는 국내 대륙붕 발굴에 나서고 있으며, 오는 6월부터 대륙붕 유망 지역 내 시추를 착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석유공사가 국내 가스전 탐사에 성공하면 재무적인 측면에서도 도움이 되지만, 석유공사의 역할과 존재 가치에 대한 어필이 되므로 이는 곧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명분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추진하는 신사업들이 아무리 알짜더라도 전체 사업 및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 되지 않는 다는 것이 석유공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결국 핵심은 석유공사의 해외 자산 가치가 회복되는 것, 즉 유가와 원유 수요의 회복이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CNBC에 따르면 미국 투자 리서치 업체 펀드스트렛의 창립자인 톰 리는 올 여름 미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이 배럴당 80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했다. 미 투자 은행(IB) JP모건은 브렌트유를 기준으로 유가가 다음 달까지 70달러를 돌파하고, 올해 말에는 74달러 대까지 상승할 것으로 관측했다.

업계 관계자는 "석유공사의 경우 2020년에 실적이 개선됐어야 자본 잠식을 피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유가까지 박살나는 바람에 (자본 잠식은) 확실하다 보니 희망을 가져 볼 여지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