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난도, 140×50㎝, 종이 위에 먹, 2021
금난도, 140×50㎝, 종이 위에 먹, 2021

[이코노믹리뷰=권동철 미술전문기자 ] “거센 비바람에는 초목도 기뻐하는 듯하다. 천지에는 하루라도 온화한 기운이 없어서는 아니 되고 사람의 마음에는 하루라도 기쁨이 없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인생의 지혜를 밝히는 채근담(菜根譚), 홍자성 지음, 김용호 옮김, 프로방스刊>

한(恨)이란 허공을 가르는 바람의 소리인가. 하얀 손수건이 그 공간으로 뿌려지는 살풀이춤처럼 우아하게 휜 선(線)이 화면 밖으로까지 일순 꽃 벌어지듯 열어놓았다. 그윽한 난초향기가 부드럽게 번지며 어떤 구분을 허물어트린다. 바야흐로 싱그러운 바람이 스며들고 어떤 무언가를 시작하며 마음을 다잡는 평온가운데 미묘한 기운이 다사롭다. 메마름도 아닌 그렇다고 마냥 평온한 것도 아닌 무언가 잡도리한 팽팽한 대립양상의 심중을 드러낸 갈필(渴筆)의 선….

 

금난도(金蘭圖), 고지(古紙) 위 먹, 40×48㎝, 2020
금난도(金蘭圖), 고지(古紙) 위 먹, 40×48㎝, 2020

◇야생의 난초 영혼의 기원

고봉준령 센바람이런가. 상심의 날카로운 기운인 냥 앞으로 쓰러질 듯 한 난초 무리다. 바람이 한쪽으로 불어오면서 넓어진 여백의 공간엔 낙하하듯 화면 밖으로 나간 선들의 흔들림이 긴장감을 촉발시킨다. 그 긴 선이 요동치는 공중은 저 난초가 산의 정상에 피어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그 아래 무한공간이 펼쳐있다는 것을 내포한다.

 

금난도(金蘭圖), 140×55㎝, 2020
금난도(金蘭圖), 140×55㎝, 2020

한국전각의 주요작가 중 한사람인 윤종득 작가 난화는 전각 변(邊)의 자연스러운 깨진 틈처럼 외부영향력으로 선이 빠져나가 확장되는 에너지를 함축해 낸다. 사물을 패턴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획 방향의 안배, 장단변화의 다양한 구성력을 바깥으로 틔움으로써 풍만한 상상력을 가질 수 있는 해방공간을 선사한다. 이것은 전서(篆書)에 일가견을 이룬 화백의 운필이 자연스레 녹아있음을 방증한다.

그런가하면 살랑바람과 온화한 햇살아래 아기가 뛰어놀 듯 순수성의 난초가 피어났다. 몇 가닥이 반대편으로 쏠려 있는 잎을 당겨주어 서로의 기세를 잡아줌으로써 균형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작업실에서 화가 윤종득. 사진=권동철
작업실에서 화가 윤종득. 사진=권동철

한편 경북안동출신의 산하 윤종득(山下 尹鍾得,YOON JONG DEUK,윤종득 화백) 열두 번째 ‘금난도(金蘭圖)’개인전이 4월29일부터 5월5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백악미술관 1~2층 전시장에서 총75점 난초작품으로 열린다. 작업의 화두를 물어보았다.

“살다보면 한 곳에 갇혀 있는 마음을 깨달을 때가 있듯 난초가 바람 때문에 우측으로 쏠리고 있다. 풍상을 겪고 있더라도 그것이 잦아지면 언제든 원래 가지고 있는 고고한 평온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 그 고매한 근원에 주목했다.”

가녀린 야생의 난초가 질곡의 역사를 버텨낸 영혼의 기원은 무엇인가. 외유내강의 생명력엔 여럿이 손을 잡고 버텨낸 응축에너지가 기반 한다. 화합의 합심이야말로 평온의 일상으로 되돌아 갈 수 있는 길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삶의 예지를 ‘금난도’연작에서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권동철 미술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