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 이매뉴얼 사에즈ㆍ게이브리얼 저크먼 지음, 노정태 옮김, 부키 펴냄.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2018년 40억 달러의 소득을 올린 것으로 추산된다. 페이스북이 200억 달러의 이익을 냈는데, 저커버그가 페이스북 지분의 20%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페이스북이 배당하지 않은 탓에 저커버그는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저커버그는 연봉이 1달러라서 근로소득세도 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개인 경비 등의 명목으로 2019년 한해 회삿돈 2340만 달러를 썼다.

미국 정부가 페이스북에 법인세를 부과할 수는 있다. 하지만 서류상으로 페이스북의 이익은 케이먼제도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돼 있다. 케이먼제도의 법인세율은 0%다. 결국 2008년 이래 매년 40%씩 재산을 불려 600억 달러를 거머쥔 저커버그는 ‘합법적’으로 세금을 전혀 내지 않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기술기업들 말고도 제약산업의 화이자, 씨티그룹 같은 금융회사, 나이키 같은 제조업체, 피아트 같은 자동차회사, 케링 같은 럭셔리회사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조세 회피가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저자들은 세금 문제에서 이처럼 불의(不義)가 승리하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가 부정되고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따라서, 민주주의와 국제적 개방성이 융성한 21세기를 누릴 수 있으려면, 이제라도 다국적 기업, 조세 회피처를 중심으로 형성된 정의롭지 못한 조세 체계부터 고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들은 국제 협력과 국제 공조를 통해 조세 도피처를 무력화하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세계 각국 정부가 자국의 다국적기업이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자회사를 두고 영업하든지 간에 실질적으로 최소 25%의 세율을 부담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 기업 애플이 저지섬에서 2%의 세율로 세금을 냈다면 미국 정부는 나머지 23%를 걷는다. 프랑스의 케링이 스위스에서 5%의 세율만을 부담했다면 프랑스 정부가 나머지 20%를 세금으로 물리면 된다.

이러한 국제 공조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국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곳에 본사를 둔 거대 기업에 대해서도 국제적으로 합의한 최저 세율을 부담시킬 방법이 있다.

가령 네슬레의 세계시장 판매액 중 20%가 미국에서 발생하고 있다면, 미국 정부는 네슬레가 세계시장에서 얻은 이익의 20%에 대해 과세하면 된다. 이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주법인세를 징수해 온 방식이기에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저자들은 이외에도 초고소득층을 겨냥한 부유세 신설을 요구한다. 막대한 부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소득세의 대상이 될 만한 소득은 그리 많이 벌지 않는 상위 부유층에게는 ‘부유세’를 부과해 실효세율을 60%가 되게 하자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누진적 소득세야말로 부의 집중을 막아낼 수 있는 가장 큰 잠재력을 지닌 도구였다. 실질적인 누진세를 위해 충분히 강력한 법인세가 필요하다. 법인세율이 낮다면 부자들이 법인으로 변신하여 낮은 법인세의 혜택을 만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