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전경. 사진=권동철
전시전경. 사진=권동철

[이코노믹리뷰=권동철 미술전문기자 ] 예화랑(藝,GALLERY YEH)이 기획, 지난 4월1일 오픈하여 오는 24일까지 성황리 전시 중인 <회(洄,거슬러 올라가다), 지키고 싶은 것들>전(展)에 애호가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1918년 창립된 서화협회(書畵協會,1918~1937)발기인들인 심전 안중식, 소림 조석진, 청운 강진희, 위창 오세창, 해강 김규진, 우향 정대유, 소호 김응원, 관재 이도영 등의 작품들과 서화협회에서 그림을 배운 이당 김은호, 소정 변관식, 정재 최우석, 수재 이한복 등의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전시는 조선후기 문화예술의 르네상스 정신성을 이어받아 문화사적으로 최고의 꽃을 피울 수 있는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라는 우리 역사상 가장 참혹한 질곡의 시간을 건너 온 구한말 출생세대의 고뇌와 열정의 예술혼을 만나 볼 수 있다. 한국미술사 맥락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전시로 평가 된다.

김방은 예화랑 대표는 “올해는 민족서화가들의 최초근대미술단체 서화협회창립전시가 1921년 4월초 서울 중앙중학교강당에서 열린 지 꼭 100년 되는 해이다. 그 당시 참으로 어려운 때 전시를 열었던 서화협회인들의 예술에 대한 사랑을 이번 전시에서 공유하시길 기대한다.”라고 배경을 밝혔다.

서화협회는 1918년 서울에서 발족, 1936년 제15회전을 가졌고 1937년 총독부의 정지령에 중단됐다. 1921년 4월초에 창립전이 열렸는데 창립직후 3·1운동의 격랑 속 안중식, 강진희, 조석진의 타계 등이 있었다.

“서화협전은 공공을 대상으로 개최된 근대적 전시회로써 조선총독부주최인 관전(官展) 조선미전보다 1년이나 앞선 참신한 시도였다. 중앙고등보통학교에서 열린 제1회전에는 총100여점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안평대군, 겸재 정선, 추사 김정희 작품을 특별전시하여 법고창신(法古創新) 취지를 드러냈다. 이와 함께 서화협회원 및 심사를 거친 비회원의 입선작을 전시했다. 동양화출품작이 60여점에 달하여 전시작품의 대다수를 차지했고, 3일 동안 무려 2천300명의 관람객이 전시장을 찾았다.”<김소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

 

△(왼쪽)나수연, 김응원, 김규진 3인 합작 8곡 병풍 작품 △(오른쪽)강진희=매화도 소영암향,93×21.5㎝,1900년대 추정. 서예,31.5×126㎝. 사진=권동철
△(왼쪽)나수연, 김응원, 김규진 3인 합작 8곡 병풍 작품 △(오른쪽)강진희=매화도 소영암향,93×21.5㎝,1900년대 추정. 서예,31.5×126㎝. 사진=권동철

전시장에 들어서면 심전 안중식(心田 安中植,1861–1919) ‘성재수간’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가야금병창 황병기 선생 ‘밤의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소봉 나수연(小蓬 羅壽淵,1861-1926), 소호 김응원(小湖 金應元,1855-1921),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1868-1933) 3인 합작 8곡 병풍 작품이다. 오른쪽 청운 강진희(靑雲 姜璡熙, 851–1919)의 매화도(梅花圖) ‘소영암향(疎影暗香)’과 서예작품이다.

 

△(왼쪽)안중식=대나무-랑간임풍,86×21㎝,1910년대 추정,46×102㎝ △(오른쪽)조석진=팔준도, 1910년대 중엽추정. 청록산수,31×65㎝,1898. 사진=권동철
△(왼쪽)안중식=대나무-랑간임풍,86×21㎝,1910년대 추정,46×102㎝ △(오른쪽)조석진=팔준도, 1910년대 중엽추정. 청록산수,31×65㎝,1898. 사진=권동철

전시장에 들어서면 처음 마주하게 되는 대나무에 바람이 스치듯 심전 안중식 ‘랑간임풍(琅玕臨風)’이다.

소림 조석진(小琳 趙錫晉,1853–1920)의 팔준도(八駿圖)작품은 고사(古事)의 여덟 마리 준마를 소재삼은 그림으로, 조석진의 회화 역량과 격치의 색다른 일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세필선으로 정확하고 세밀하게 묘사한 준마들의 어울림과 야생적인 움직임이 털색과 생태감을 간결하게 나타낸 수묵 및 엷은 황갈색조의 면 처리와 더불어 투명하고 담백한 선묘(線描) 담채화를 보는 느낌을 준다. 그러면서 놀랍게 빚어진 화격(畵格)이 주위의 암석 및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한 맨 오른쪽 선면(扇面) ‘청록산수(靑綠山水)’는 조석진의 중년기를 대표하는 가작(佳作)이다. 1898년 가을에 그린 작품인데, 1900년 이전의 간기(干紀)가 있는 조석진의 남아있는 작품이 드물어 이 점에서도 크게 중요시되는 작품이다. 부채꼴 선면을 잘 이용한 정돈된 화면구성, 깔끔한 필치에 옅게 칠해진 담채, 화면에 짙게 깔린 차분한 분위기는 문기(文氣)까지 간취(看取)된다.

 

△(왼쪽)안중식=선면 노안도,50×15㎝,1913. △(중앙)성재수간,종이에 수묵담채,24×36㎝, 1910년대 중엽추정 △(오른쪽)청록산수 염계애련,비단에 채색,39×145.5㎝,1910년대 중엽추정. 사진=권동철
△(왼쪽)안중식=선면 노안도,50×15㎝,1913. △(중앙)성재수간,종이에 수묵담채,24×36㎝, 1910년대 중엽추정 △(오른쪽)청록산수 염계애련,비단에 채색,39×145.5㎝,1910년대 중엽추정. 사진=권동철

‘선면 노안도(扇面 蘆雁圖)’는 심전 안중식이 1913년 여름에 그린 작품이다. 환하게 뜬 커다란 보름달을 배경으로 갈대숲이 나타나 있고, 그리로 여섯 마리의 기러기 떼가 빠른 속도로 날아드는 광경의 노안도가 그려져 있다. 그림의 구도가 명쾌하게 잡혀있고 세필을 구사한 기러기들의 앞을 다투는 사실적인 비상묘사가 바람소리를 느끼게 생동감에 차있다.

 

안중식=성재수간,종이에 수묵담채,24×36㎝,1910년대 중엽추정. 사진=예화랑
안중식=성재수간,종이에 수묵담채,24×36㎝,1910년대 중엽추정. 사진=예화랑

안중식의 ‘성재수간(聲在樹間)’은 ‘나뭇잎사이로 바람소리가 들린다.’라는 의미이다. 미닫이문이 닫힌 서옥 안에는 책을 읽다가 문득 밖의 소리를 느끼며 머리를 들고 앉은 선비의 존재가 영상의 형태로 시사되어있고, 마당에 나와 서 있는 동자는 소리가 나는 데를 알아보려고 귀를 기울이고 있는 자세를 취하며 화면의 중심을 이룬다. 수목과 바위와 나뭇잎 표현에서 수묵필치가 자유롭게 구사되면서 대단히 알찬 화면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오른쪽, 청록산수(靑綠山水) 염계애련(濂溪愛蓮)은 안중식의 1910년대 중엽의 작품으로 여겨지는데 수려한 진채(眞彩)와 수묵담채를 조화시킨 표현이 매우 이색적이다. 화면에서 가장 부각되는 것은 온통 곡선 변화로 가득한 환상적인 암산 및 암벽의 입체감을 위하여 사용된 짙은 회청색의 아름다움이다. 게다가 그 위의 녹청이 얹힌 점태(點苔)의 치밀한 기법 또한 색채 표현의 묘에 생채(生彩)를 더해준다.

연꽃이 피어있는 연못가의 정자 안에 앉아있는 인물이 화제(畵題)의 염계 주돈이(중국 북송 때의 대학자)이다. 그리고 당나귀를 타고 오는 사람은 그를 찾아가는 벗인 듯하며, 왼쪽 암벽 위에서 폭포의 물소리를 들으며 술잔을 기울이고 앉은 세 사람 중 붉은 옷의 인물도 염계의 모습을 중복시킨 듯하다. 화면 밖으로의 끝없는 연결을 느끼게 하는 구도의 장엄함과 여러 기법의 독특한 조화가 안중식의 다채로웠던 표현 역량을 말해 준다.

 

△(왼쪽)=조석진,안중식,김응원,김규진,이도영 5인 합작 10곡병풍작품 △(오른쪽 벽)김용진=석화도,52.5×128.5㎝,1960(each). (맨 오른쪽)34×138㎝,1958. 사진=권동철
△(왼쪽)=조석진,안중식,김응원,김규진,이도영 5인 합작 10곡병풍작품 △(오른쪽 벽)김용진=석화도,52.5×128.5㎝,1960(each). (맨 오른쪽)34×138㎝,1958. 사진=권동철

소림 조석진, 심전 안중식, 소호 김응원, 해강 김규진, 관재 이도영 5인의 합작 10곡 병풍 작품이다. 오른쪽 벽은 영운 김용진(穎雲 金容鎭,1878-1968)의 작품들이다.

 

(왼쪽 두 점)김은호=화조도,33.6×135㎝,1958. 선면 꽃그림,55×16㎝ (중앙에서 오른쪽으로)이도영=도원문진-선면 산수화,15×51㎝,1914. 산고월소 수락서출,38×34.5㎝. 34.5×129㎝. 사진=권동철
(왼쪽 두 점)김은호=화조도,33.6×135㎝,1958. 선면 꽃그림,55×16㎝ (중앙에서 오른쪽으로)이도영=도원문진-선면 산수화,15×51㎝,1914. 산고월소 수락서출,38×34.5㎝. 34.5×129㎝. 사진=권동철

왼쪽 벽 두 점은 이당 김은호(以堂 金殷鎬,1892-1979) 화조도와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 꽃 그림이다.

중앙 벽 작품이 관재 이도영(貫齋 李道榮,1884-1934) ‘도원문진(桃源問津)’이다. 그 옆 작품엔 중국 북송시대 시인 소동파의 후적벽부 구절 ‘산고월소 수락석출(山高月小 水落石出)’ 시문(詩文)으로 화제(畫題)를 삼았다. 내용은 “산은 높고, 달은 작게 보인다. 강물도 줄어서 얕게 된 물에 잠겨 보이지 않던 돌멩이도 나타나는구나.”이다. 이도영은 1909년 대한민보에 시사만평인 삽화를 연재하였고, 한국만화의 표현 기호와 묘사법 등을 창안한 선구자로 서화가이자 한국최초의 만화가이다.

 

△(왼쪽 벽 두 점)변관식=대련 산수화 무릉원,53×136㎝,1958. 고사관폭,35×26㎝ △(중앙 벽 두 점)이한복=봉래선경,비단에 수묵채색,130×33.5㎝,1915. 참새도,35.5×24cm,1916 △(오른쪽 벽 맨 왼쪽)강진희=40.5×29.5㎝,1910년대 △(오른쪽 벽 중앙 두 점)강필주=25×55㎝, 1915. 산수화=25.5×55㎝ △(맨 오른쪽 세 점)김재관=26×54㎝, 25.5×54㎝, 27×55.5㎝. 사진=권동철
△(왼쪽 벽 두 점)변관식=대련 산수화 무릉원,53×136㎝,1958. 고사관폭,35×26㎝ △(중앙 벽 두 점)이한복=봉래선경,비단에 수묵채색,130×33.5㎝,1915. 참새도,35.5×24cm,1916 △(오른쪽 벽 맨 왼쪽)강진희=40.5×29.5㎝,1910년대 △(오른쪽 벽 중앙 두 점)강필주=25×55㎝, 1915. 산수화=25.5×55㎝ △(맨 오른쪽 세 점)김재관=26×54㎝, 25.5×54㎝, 27×55.5㎝. 사진=권동철

소정 변관식(小亭 卞寬植,1899–1976)은 소림 조석진의 외손자이며 1917년에 조석진이 교수로 있는 서화미술원(書畵美術院)에 입학하면서 그림수업이 본격화되었다. 이당 김은호, 청전 이상범, 심산 노수현 등과 함께 서화미술원에서 수학하였고 1945년 광복 후 국전심사위원을 역임하며 창작활동을 활발히 하여 현대동양화 6대가로 인정되고 있다.

‘무릉원(武陵源)’작품은 1958년 가을에, 규당 김재관 회갑기념으로 그린작품이다. 화사한 꽃과 산수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가운데 냇가를 건너는 사람들과 촌락(村落)의 모습을 무릉도원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중앙 벽 두 점은, 수재 이한복(壽齋 李漢福,1897년-1940)작품이다. 이한복은 1911년에 설립된 서화미술회에서 스승 안중식, 조석진 등에게 서화를 배우며 비상한 재질을 나타내다가 1912년에 동양화전공자로는 처음으로 동경미술학교에 유학하였다. 이 그림은 중국인들이 상상했던 삼신산(三神山) 중 하나인 봉래산 선경을 그린 것으로 수묵의 점, 선과 짙은 청록채색의 산속에 신선과 누각 그리고 멀리 바다 위에 솟는 붉은 해가 표현되어있다.

오른쪽 벽 맨 왼쪽 작품은 청운 강진희(靑雲 姜晋熙,1851~1919) 글씨이다. 오른쪽 벽 중앙 두 점은 위사 강필주(渭士 姜弼周) 작품으로 1912년에 서화미술회 동양학과 교수로 조석진, 안중식 등과 8년간 활동하며, 동양화1세대의 대표적인 화가들을 배출하였다.

맨 오른쪽 세 점은, 규당 김재관(圭堂 金在瓘,1898–1976)소품작품으로 1911년대 중엽에 안중식, 조석진, 강진희, 정대유 등이 설립한 서화미술회(書畵美術會)에서 서화를 수학했다.

 

이상현=조선의 봄,Digital C-Print,110×172㎝,2008. 사진=예화랑
이상현=조선의 봄,Digital C-Print,110×172㎝,2008. 사진=예화랑

1906년 주일 독일대사관 무관인 헤르만 산더(Herman Sander)가 조선과 만주지방을 답사하다가 함경도 길주를 지나면서 산골장터 사진을 한 장 남겼다. 이상현 작가는 흑과 백으로 이루어진 1906년의 조선에 분홍색 복사꽃을 심었다.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권동철 미술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