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과 시진핑 주석의 중국이 벌이는 대결이 총력전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지난 세기 미국과 소련이 벌였던 냉전과 달리 현재의 미국과 중국은 글로벌 경제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 ‘선’을 넘는 전쟁은 불가능하다는 말도 나오지만, 현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강경 기조를 이어받은 미국의 압박과 이에 맞서는 중국의 대응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무한경쟁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사실이다.

전장의 안개가 짙어지는 가운데 두 슈퍼파워의 사이에 선 한국의 입장은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다. 노골적인 진영 가르기 전쟁이 시작된 가운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넘어선 결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모든 역량 총동원..중국 압박

미 상원 외교위원회가 ‘2021년 전략적경쟁법’이라는 대중 견제 법안을 준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8일(현지시간) 미 의회가 대중 압박을 위한 초당적 법안인 2021년 전략적경쟁법을 가다듬고 있으며 오는 14일(현지시간)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이 법을 논의될 예정이라 밝혔다.

2021년 전략적경쟁법을 한 마디로 축약하자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중국을 압박한다’로 말할 수 있다.

실제로 법안을 살펴보면 2026년까지 인도태평양 지역에 6억5,500만달러 규모에 달하는 외교적 군사지원을 단행하는 한편 대만해협 등에서 벌어지는 중국의 군사무력시위에 대항해 추가로 4억5,000만달러를 지원하는 방안이 포함되어 있다. 이미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은 아시아 전략의 핵심을 기존 한반도가 아닌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이동시킨 상태며 그 연장선에서 한국은 물론 대만, 인도까지 아우르는 대중 포위망 형성에 방점을 찍는 분위기다.

나아가 중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에 대북 유엔제재 이행을 압박하고 심지어 홍콩의 민주주의를 지원하기 위해 1000만달러를 책정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시진핑 주석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대한 견제구도 나온다. 일대일로에 참여하는 국가들에 대한 압박과 더불어 중국과 남중국해 분쟁을 벌이고 있는 필리핀을 측면지원하는 전략도 가동될 전망이다.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의 심사 범위를 확장해 중국의 기술약탈을 막는다는 플랜도 법안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앞서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이어진 대중국 압박기조를 강화하는 한편 화웨이를 비롯해 다수의 중국 기업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있다. 반도체 및 희토류 등 글로벌 원자재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기 위한 구체적인 액션플랜에 나서는 한편 8일(현지시간)에는 텐진 파이티움 정보기술, 상하이 고성능 집적회로 디자인센터 등 중국의 슈퍼컴퓨팅 관련 기업 7곳을 블랙리스트에 추가하기도 했다. 중국의 해킹 공격 배후에 이들이 있다는 것이 미 상무부의 설명이다.

“중국이 기다려줄 것 같나” “모기에 불과”

미국의 대중국 압박은 자국의 경제 인프라 확충 전략에서도 발휘된다.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시도하며 중국의 추격을 내세우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이든 미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2조2,500억달러에 달하는 메머드급 인프라 투자 입법 및 법인세율 인상 필요성을 강조하며 “중국이 기다려줄 것 같은가”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서 경기회복을 위해 인프라 투자 및 법인세율 인상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가운데 28%로 제안한 법인세율을 소폭 낮추거나 재무제표상 이익을 낸 기업에 예외 없이 15%의 최저세율을 매기는 대상을 축소하면서도 공화당을 대상으로 ‘초당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내는 중이다.

그 연장선에서 중국의 추격을 논하며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전략이 가동되고 있다.

중국도 당연히 반격에 나서고 있다. 자국 중심의 경제 전략을 가동하는 한편 ICT 기술 패권에서도 미국과의 대결에서 물러나지 않을 각오다. 당장 미 상무부가 중국 슈퍼컴퓨팅 기업 8곳을 블랙리스트에 올리자 관영 글로벌 타임스 등 중국 매체들은 “모기에 물린 정도에 불과하다”고 맞받아쳤다. 메이신위 상무부 국제무역경제협력연구소 연구원은 “미국은 이미 수년간 중국을 이런 방식으로 괴롭혔기 때문에 한 번 더 물어도 큰 일은 아니다”면서 “오히려 자체 연구 개발을 가속하게 하는 동기 부여일 뿐”이라 강조했다.

일찌감치 미국의 손을 잡은 대만에 대한 공세도 강화하는 중이다. 지난달 28일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팔라우의 수랭걸 휩스 대통령이 대만을 방문할 당시 존 헤네시닐랜드 팔라우 주재 미국 대사가 동행하며 중국을 자극한 가운데, 이날 중국은 대만 ADIZ에 무려 10여대의 군용기를 보내며 무력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최근 글로벌 공급망에 상당한 타격을 준 수에즈 운하 사태 당시에도 중국은 이를 일대일로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무대로 삼았다. 글로벌 물류 공급망의 중요한 역할을 중국이 핵심인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해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총력전, 그리고 한국의 선택

다자주의에 방점을 찍은 미국의 대중국 포위전선이 두터워지는 상황에서 중국도 강구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동원해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핵심 동맹국 중 하나이자 중국의 중요한 무역 파트너인 한국의 입장이 난처해지고 있다.

두 슈퍼파워가 총력전을 벌이는 가운데 이렇다 할 액션플랜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이 탈퇴한 후 일본 중심으로 작동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 가입문제를 두고 전 미국무역대표부(USTR) 부대표인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ASPI) 부회장이 “한국은 우선 가입 후 미국을 기다리는 것이 좋다”는 입장을 냈으나 아직 명확한 한국 정부의 판단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CPTPP 중국의 가입 가능성까지 열린 가운데 현재 정부는 연내 가입이라는 기본적인 정책적 판단만 고수하는 중이다. 지난해 한국이 사실상 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에 가입한 상태에서 미국과 중국의 미묘한 신경전이 시작된 가운데 그 간극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시작됐다는 평가다.

반도체 전략도 마찬가지다.

최근 각 국의 반도체 거점 전략이 탄력을 받는 가운데 미국은 대만의 TSMC를 품은 상태에서 인텔의 파운드리 시장 재진입, 글로벌파운드리(GF)의 대규모 투자 등 사실상 인프라 확충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반도체 품귀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삼성전자 등 다수의 반도체 기업들을 12일(현지시간) 백악관으로 불러 대책을 논의할 전망이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기회일 수 있고 위기일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반도체 거점 전략을 강화하는 미국 정부의 기조와 발을 맞출 경우 글로벌 시장 점유율 확대가 가능하지만, 중국의 반발을 살 경우 거대 내수시장을 놓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청구서를 받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이유로 업계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총력전이 시작된 가운데 한국의 발 빠른 대책을 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지난달 29일 취임 첫 간담회를 통해 “미중 분쟁은 1, 2년 이내에 끝날 문제가 아니며 코로나19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특단의 정책적 결단이 나와야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