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신 일대일로 계획

지난 3월 26일, 바이든 대통령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전화 통화했다. 그리고 기자들에게 “나는 전 세계의 도움이 필요한 지역을 지원하는 근본적으로 (일대일로와) 유사한 이니셔티브를 민주주의 국가들로부터 끌어내야 한다고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중국 견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전날 취임 후 첫 공식 기자회견에도 “내가 보는 앞에서 중국이 최강국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 했었다. 이후 중국과 갈등을 빚는 존슨 총리와 통화해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견제를 논의한 것이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존슨 총리도 이 제안을 환영하며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영국 언론은 바이든 대통령과 존슨 총리가 이 프로그램에 수억 파운드를 투자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영미의 반중 연합이다.

미국이 일대일로 견제 구상을 밝힌 것은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부터이다. 2019년 11월 동남아국가연합(ASEAN) 정상회의가 열린 방콕에서, 미국은 인도·태평양 비즈니스 포럼을 열었고, 미국, 일본, 호주가 주도하는 블루닷 네트워크 계획을 발표했다.

지속 가능한 인프라 개발을 목표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투자와 교역을 늘리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중국은 “아태 지역 국가들의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민감한 반응을 보였고, 현재는 “고무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미래도 어둡다”고 평가한다.

중국의 일대일로

일대일로는 2013년 중국이 처음 기획했다. 이후 중국은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육상 실크로드, 동남아에서 유럽·아프리카로 이어지는 해양 실크로드를 잇는 일대일로를 추진 중이다. 주변 국가와 경제협력을 확대, 경제 영토를 넓히는 프로젝트.

지난 1월 말 기준,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140개국, 31개 국제기가 205건의 협력문서에 서명했다. 현재 일대일로와 연계해 추진하는 철도, 항만, 고속도로 등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는 2,600개가 넘고, 금액으로는 3조 7,000억 달러(4,200조 원)에 달한다.

지난 2013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일대일로를 추진했을 때, 세계는 황당하다는 태도였다. 그래서 일대일로의 성공 가능성보다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맞서는 세력 확장 구상으로만 여겼다. 그러나 7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미국이 일대일로 대항마를 구상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이제 오히려 중국이 자신감을 갖는 양상이다. 미국이 다른 나라의 인프라 구축 요구를 충족시키려면 실질적 투자가 뒤따라야 하는데, 미국 정부가 감당하기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글로벌타임스는 “바이든 대통령이 추진하는 국내용 3조 달러(3,400조 원)의 경기부양 패키지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라며 “심지어 민주당조차 전체가 찬성하는 건 아니다”고 지적했다. 제아무리 미국이라고 할지라도,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일대일로 견제 구상에 동참한 존슨 총리가 과거에 “영국이 유럽에서 중국에 가장 개방적인 시장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사실을 부각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반된 태도는 중국에 대한 장기적인 이해와 전략이 부족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동서양을 이어 준 실크로드

실크로드는 고대 중국과 서역 각국 간에 비단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무역을 하면서 정치, 경제, 문화를 이어 준 교통로이다. 총길이 6,400㎞의 실크로드는 독일 지리학자 리히트호펜이 명명했다. 중국 중원에서 시작해, 지중해 동안과 북안에 이르는 길이다.

실크로드가 처음 열린 것은 전한시대(BC 206 - AD 25). 한 무제는 대월지, 오손과 연합, 중국 북방 변경 지대를 위협하던 흉노를 제압하고 서아시아로 통하는 교통로를 확보하길 원했다. BC 139년 장건을 보내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흉노에게 붙잡혔다.

10년의 우여곡절 끝에, 장건은 대월지국 도착하지만, 대월지국은 동맹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장건은 여러 가지 자료를 수집하고, 한나라로 귀국한다. 장건은 서역으로 갈 때는 타클라마칸 사막 북쪽 길을 이용했으나, 귀국 여정에는 남쪽 길을 택했다.

한 무제는 장건의 귀국 보고를 아주 흥미롭게 생각했다. 서역에는 명마, 금은화를 사용하고, 한으로부터 칠기, 비단을 구매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한 무제는 BC 104년부터 101년까지 페르가나국에 군사를 보내, 교통의 요지 누란을 점령했다.

그리고 BC 60년, 흉노마저 굴복시킴으로서 서역을 완전히 손에 넣었다. 이때부터 중국의 비단은 본격적으로 로마까지 팔려 나갔다.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에 기린, 사자와 같은 진귀한 동물과 호마, 호두, 후추, 깨 등이 전해졌고, 유리 가공 기술도 전해졌다.

중국에서는 비단, 칠기, 도자기 같은 물품과 양잠, 화약 기술, 제지 기술 등이 서역으로 건너갔고, 종이 만드는 기술이 서역으로 건너가서 중세 유럽의 암흑기를 밝혀 인쇄술 발달과 지식 보급에 원동력이 되었다. 이후 요새를 세워 장사 길을 보호했다.

실크로드에 대한 중국과 미국의 오해

지난 3월 29일, 중국 글로벌타임스는 “지난 수년간 일대일로 구상에 오명을 씌운 미국이 중국을 모방해 자체 버전을 개발하는 것이 쉽겠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리고 “미국은 일대일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며 비현실성을 지적했다.

글로벌타임스는 또 “현재 미국은 이러한 계획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자본이나 의지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일대일로에 대항할 민주주의 국가 인프라 구축 계획을 제안하자, “돈도 의지도 없다”고 강하게 맞받아친 것이다.

일대일로 논쟁으로, 미중 패권전쟁은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나아간 듯한 모양새이다. 그러나 일대일로든, 일대일로 대항마이든, 본질적인 문제를 놓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대일로의 근간이 된 실크로드는 동서 교역을 위한 제품이 존재했었다는 점이다.

4차산업을 주도하는 미중의 갈등 속에, 중국은 다양한 IT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일대일로의 경유지인 유럽은 중국의 IT제품보다는 저가 기초생필품에 주목하고 있다. 결국 일대일로는 인적교류를 위한 교통망 역할로 발전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또 미국 주도의 일대일로 대항마는 구체적 비전도 제시되지 않았다. 하지만 제시된다고 하더라도 일대일로와 같은 구체적 실체가 없는 피상적인 네트워크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인적교류를 이끌 촉매도 없는 네트워크란 결국 희망사항에 불과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