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침에 집사람이 출근하면서 베란다에 피어있는 동백꽃 마지막 한 송이를 사진 찍어 남겨놓자는 말을 건네었습니다. 그간 1개월여 넘게 빨갛고 탐스러운 꽃을 피고 지우며 우리를 행복하게 했던 꽃인데, 이제 다가 올 봄까지는 볼 수 없음의 아쉬움 표현이었겠지요.

얼른 사진을 찍어 가족 단톡 방에 다시 겨울이 오고, 봄이 와서야 볼 동백꽃의 마지막 인사라고 보냈습니다. 사진을 보냈습니다만, 그건 부가적인 게고, 이미 마음속에 동백이 자리 잡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요즘 지천에 온갖 꽃들이 만발입니다. 한 선배님은 이쁜 꽃 사진을 보내며 이 꽃들을 맘껏 즐기라고 권합니다. 우리가 이봄을, 현재를 제대로 즐기고, 기억하는 방법이 무얼까로 생각이 확장됩니다.

지난 이십여 년 넘게 꾸준하게 이어오는 습관이 하나 있습니다. 미술관, 박물관 같은 전시장 순례입니다. 보통 일주일에 한차례 정도씩 가게 되는데, 정보를 미리 알고 가는데도 있지만, 길 가다가 들어가게 되는 조그만 갤러리도 있습니다. 사진, 회화, 조각, 건축물, 설치 작품 등.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먼저 내가 느끼고, 감정이 이끌리는 대로 보게 되죠.

그 다음에 작가의 의도나 설명을 보거나 안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친구 중 하나가 질문합니다. ‘왜 그렇게 미술관이나 박물관등을 순례 하는가’

다소 무모하고, 실현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정말 작품 앞에서 감동으로 얼어붙어서 발길을 뗄 수 없는 순간을 열망하는 마음이라 대답합니다.

그럼 그런 순간이 있었느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아직은 그런 절정의 순간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근처(?)까지는 가서 일주일여 열병에 빠졌던 적은 있었습니다.

십오년 전 런던 출장길이었습니다. 일정을 다 마치고 다음날 오후에 비행기를 타게 되었습니다. 오후에 박물관, 미술관등을 보았는데, 늦은 오후 들른 내셔널 갤러리에서 마음에 맞는

작품을 만났습니다. 성경에 기초한 아주 쓸쓸한 회화 작품이었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제자 두 사람이 슬픔, 낙심, 두려움에 빠져 서둘러 고향으로 내려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예수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할 거라는 믿음이 없는 그들로서, 그렇게 자기 연민과 슬픔에 꽉차 있어서 정작 부활한 예수가 그들 앞에 나타났음에도 몰라보게 됩니다. 무엇보다 그대목이 인생 같아 보였습니다. 쓸쓸함이 짙게 베인 표정들이었습니다.

그 밤 호텔에 들어왔는데, 그 작품이 던져주는 인상이 계속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호텔에 짐을 맡기고, 다시 갤러리를 찾아 작품을 마주하고,

허겁지겁 공항으로 달려갔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당시 사진을 찍을 수 없었지만, 작품의 모습이 지금도 온전히 내 마음속에 남아있습니다.

이렇듯 오래 기억하고, 제대로 즐기려면 사진에 맡기지 말고, 눈에, 마음으로, 몸으로 기억됨이 어떨런지요. 작품도 좋지만, 우리가 이봄에 부딪치는 일상의 특정 순간, 사건들도

우리를 더 풍성한 마음의 세계로 인도할 수 있으니, 일단 몸을 써서 세상을 만나볼 일입니다. 푸드 트럭에서 만드는 샌드위치로 미슐랭 3개별을 받은 프랑스 유명한 세프가 응원합니다. ‘요리사의 몇 가지 작은 손길로 손님은 단지 하나의 음식이 아니라 인생의 어떤 순간을 마음에 담을 수 있다’ 백 프로 맞는 말이라 생각했습니다. 요리사가 건네는 하나의 음식 속에 음식 맛 이상의 인생 순간들이 소환되어 음미되고 행복으로 눈 감게 되는 게 상상됩니다.

그러려면 우리의 기억 속에 다채로운 기억, 추억들이 일단은 듬뿍 담겨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