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다녀온 부산 일정의 여운이 짙게 남아있습니다.

한 기업가가 지난 40여년 동안 지극한 정성으로 가꾼 개인 정원을 인생 스승의 추천으로

둘러보러 간 거였습니다. 부산에서 30여년 넘게 살아 부산 사람이 다 된 고향 친구가 현지 동행을 위해 부산역에서 만났는데, 에스컬레이터로 이동시 둘이 섰다가

내가 습관적으로 한쪽으로 서기위해 내려서니

친구 왈 “서울 사람 표내지 마라. 여기는 그리 바쁘지 않다”하는 겁니다.

무심한 친구의 말에 “맞아. 그리 급할 게 없는 게 귀한 나무를 만나러 가는 마음이지”라 화답했습니다. 내가 간 곳은 화승원(和承苑)입니다.

부산 금정산의 얕으막한 산자락 13,000여평 정도 되는 부지에 주인장이 예술품을 콜렉션하듯 지난 40여년 국내 각지서 모으고, 정성을 쏟아 키운 오래되고, 귀한 나무들이 싱싱한 봄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오래된 나무들에 우선 놀랐습니다.

150여년 된 잘 생긴 백송(白松)이 그 정원서는 젊은 나무 축에 속했고, 팔백여년 된 와송에,

천오백년이 넘었다는 향나무까지 나무마다 쌓인 오래된 세월에 아찔해졌습니다만,

모두들 청청함을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멋지고 인상적이었습니다.

한 나무에서 시작된 나무 가지가 초가집 지붕처럼 수많은 가지로 지붕을 만들어 아래에 사람들이 쉼터로 이용할 수 있는 나무부터, 헌헌장부처럼 잘 생긴 향나무, 큰 줄기 하나로만 전체를 이루는 일필휘지 모습의 나무까지 아름다운 나무들이 저마다 거리를 지키며 서있었습니다.

또 면면히 이어온 우리네 삶의 굴곡처럼 끈질긴 생명력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어느 항구 포구에 있었을 천년된 팽나무는 아랫동 부분에 아이가 들어가 숨을 만한 공간을 내주고 있음에도 늠름함을 잃지 않고 있었으며, 온갖 풍상을 다 겪어서 아랫부분이 군데군데 비어서 위태로워 보이는 천오백여년 된 모과나무도 봄꽃을 준비하며, 가을 열매를 기약하고 있었습니다. 천년 이상 되어 나무 모습은 볼 품 없어졌지만, 배롱나무도 작년에 이어 올해도 봄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지난 태풍에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 잘 살고 있는 노목도 걱정할 일 없다는 말을 건네는 듯 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오래된 향나무의 죽은 부분인 사리로서, 나무의 죽은 부분과 살아있는 반쪽이 한 줄기로, 아니면 각각의 줄기로 한 나무로 묶여서 서로 의지하고 있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국내 먼 지역에서 실려와 여기에 둥지를 튼 한 향나무 역시 낮은 줄기는 죽은 채, 산 줄기와 같이 있는데, 죽은 줄기의 일부분들에 현지에서 마을 사람들이 제사지낼 때 향 피우기 위해 조금씩 뜯어간 흔적이 남아 있음에도 살아남아 곁에 있음에 새삼 경외감이 들어

가만히 올려다보았습니다.

정원을 돌다가 정자 옆 의자에 잠시 앉으니 나무들에서 실려 오는 소나무, 향나무의 향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앉아 둘러본 나무들을 그려보니, 100여년도 안 되는 인생살이가 다 인양, 거기서 큰소리치고, 실망하고, 분을 냈던 일들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러며 어느 시인이 잠언처럼 한 말이 생각되었습니다.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 한다’

오래된 나무들의 숲이 긴 울림을 주고 있었습니다.

‘겸허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