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올림픽 개최 D-121일

지난 3월 23일, 도쿄 올림픽 성화봉송이 후쿠시마에서 시작됐다. 1년 전 같은 날, 일본 정부는 도쿄 올림픽 연기를 공식 발표했었다. 성화 봉송이 시작된 마당이니, 이제 도쿄 올림픽 개최는 기정사실이 되었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은 한, 두 개가 아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스가 요시히데 총리도 불참한 성화 출발식. 후쿠시마 현의 축구시설 J빌리지에서 거행된 행사에는 하시모토 세이코 도쿄 올림픽과 패럴림픽 조직위원회 회장과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 등만 참석했다. 간소한 행사였다.

첫 성화 봉송 주자로는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던 2011년 여자 월드컵 독일대회에서 우승한 일본 대표팀 멤버들. 성화 봉송은 도쿄올림픽 개막식이 열리는 7월 23일까지 121일 동안 진행된다. 1만 명 봉송 주자가 일본 전역의 47개 도도부현을 달린다.

일본 정부와 대회 조직위는 성화 봉송 과정 중 코로나19가 확산하지 않도록 방역 대책을 마련해 길거리 밀집 응원이나 거주지를 벗어난 원정 응원을 자제토록 했다. 또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성화 봉송 장면을 인터넷으로 시청할 것을 권고했다.

주최 측은 올림픽이 개막해도 해외 관중을 수용하지 않고, 국내 관중 규모도 대폭 제한한다는 방침이다. 국내 관중 상한선은 상한 없음, 50% 삭감, 무관중 등 3개안 중 하나를 다음 달 최종결정할 예정이다. 현재 50% 삭감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림픽이 1년 연기된 것도 사상 최초지만, 해외 관중을 받지 않는 올림픽도 역사상 처음. 이로 인한 손실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 관중을 받지 않고 국내 관중을 50%로 제한했을 때 손실은 1조 6,258억 엔(17조 원)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일본의 코로나19 재확산 우려

같은 날, NHK는 일본 전역에서 새롭게 확인된 코로나19 감염자는 총 1,917명으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전날 1,918명에 이어, 이틀 연속으로 신규 확진자가 2천 명 선에 근접한 것이다. 긴급사태가 발효 중이던 지난 2월 4일(2,578명) 이후 최다 기록.

이날까지 누적 확진자는 463,727명, 전체 사망자는 하루 새 27명이 늘어 8,984명이 됐다. 일본에서는 지난 3월 22일부터 수도권 지역을 마지막으로 코로나19 긴급사태가 전면 해제된 뒤 신규 확진자가 다시 늘고 있다. 도쿄 지역은 12일째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2021년 1월 절정을 이뤘던 제3파(3차 유행)를 능가하는 수준의 급격한 재확산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감염 확산을 막을 특단의 대책이 없어 도쿄도청 내에는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교도통신은 오사카, 오키나와 등 각지에서 신규 감염자가 다시 늘어 긴급사태가 전면적으로 풀린 지 1주일도 지나지 않아 재확산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규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스가 총리를 향한 비판의 여론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감염 확산이 진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긴급사태를 푼 것이 도쿄 올림픽 준비를 고려한 조치였기 때문이다. 도쿄에서는 반대 시위가 펼쳐지는 등 올림픽 취소를 요구하는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도쿄 올림픽 개최를 포기하기 쉽지 않다.

동일본 대지진 10년

지난 3월 11일은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지 꼭 10년 되는 날. 지진, 쓰나미, 원전 폭발로 이어진 사상 초유 재난 상처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남아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일본이 도쿄 올림픽을 강행하려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충격적인 재앙은 시작되었다. 도쿄에서 300km 떨어진 미야기현 앞바다에서 규모 9.0의 강진이 발생했다. 일본 관측 사상 최대 규모로, 20세기 이후 발생한 세계 지진 중 4위를 차지할 정도의 아주 강력한 지진이었다.

바다에서 일어난 지진은 쓰나미를 일으켰다. 최대 파고가 9.3m 이상으로 관측된 쓰나미는 동일본 해안 지역을 전부 휩쓸었다. 훗날 동일본 대지진으로 명명된 당시 사태의 사망자는 15,000여 명, 실종자는 2,500여 명. 대부분은 쓰나미의 희생자였다.

더 큰 문제는 쓰나미의 거센 물살이 후쿠시마 제1원전을 덮친 것. 바닷물이 들이닥치면서 전력 공급이 끊겼고, 내부 핵연료를 식히지 못한 원전이 폭발하며 다량의 방사능이 누출되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같은 최고 레벨 7의 대재앙이었다.

방사능 공포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 후쿠시마현은 연간 방사선 피폭량이 여전히 기준치를 넘어서면서 사람이 살 수 없는 ‘귀환 곤란 구역’이다. 일본이 도쿄 올림픽 개최하려는 것은 동일본 대지진의 참화를 이겨낸 모습을 알리기 위함이다.

2019년까지 밝은 청사진이 그려졌던 도쿄 올림픽은 코로나19라는 복병을 만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현재까지 벌어진 결과만 놓고 따지자면, 도쿄 올림픽은 10년이 지나도록 회복하지 못한 동일본 대지진의 참상만 전 세계에 널리 알리게 된 형국이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도쿄, 후쿠시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서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와 사흘 뒤인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결국 1945년 8월 15일 정오, 쇼와 천왕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원자폭탄의 위력은 그만큼 대단했다.

원자폭탄 투하의 충격은 일본에게 엄청난 트라우마를 안겨줬다. 전후 무장 해제를 당한 일본은 원자폭탄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핵에 대한 공포감 제거와 친근감 확산, 올림픽 개최를 통한 경제 재건이었다.

핵에 대한 공포감 제거와 친근감 확산을 위해서, 일본은 국토 전역에 52개 원자력 발전소를 설치했다. 10년 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던 후쿠시마에는 대규모 피해가 발생한 제1원전 외에도 5기가 더 가동 중이었다. 현재는 지진으로 전부 가동 중단.

패전의 충격을 이겨내기 위해서, 일본은 1964년 도쿄 올림픽도 개최했다. 패전을 딛고 부흥하는 일본의 이미지는 도쿄 올림픽을 통해서 세계에 확산되었다. 도카이도 신칸센 개통, 정지 궤도 위성 실시간 생중계, 컬러텔레비전 보급이 이때 이루어졌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충격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었던 것처럼, 2020 도쿄 올림픽은 동일본 대지진의 극복을 과시하기 위한 상징이었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오폐수 관리 책임만 만방에 알리게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