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오후에 고속도로를 운전하다 눈(目)을 제대로 만났습니다.

큰 화물 트럭을 따라가게 되었는데, 트럭 트렁크 뒷면에 동그랗고 커다란 눈이 있었습니다.

오후 시간이라 살짝 느슨했었는데, 정신이 번쩍 차려졌습니다.

그 효과를 노린 것인지는 몰라도 다소 생뚱맞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저런 발상이 ‘어디서 비롯되었을까’라는 생각에 자료를 찾다가

아이 카우 프로젝트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아프리카에서 실험이 있었는데, 방목하는 소를 맹수로부터 지키려고,

소의 엉덩이에 눈 모양을 표시해서 효과를 보았다고 합니다. 대다수 맹수들은 사냥하기위해 매복했다가 갑자기 공격하게 된다고 하네요. 그런데 이렇게 소에 맹수를 쳐다보는 눈 모양을 해놓으니, 맹수들은 매복이 드러난 것으로 알아 샤냥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4년여의 실험 결과 엉덩이에 눈 그림을 한 무리들은 피해를 입지 않았고,

아무 표시를 하지 않은 무리들의 일부는 공격을 받아 죽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합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지역이라 맹수들에게 총도 쏠 수 없고,

소를 방목하는 주민문제도 해결해야 하는 입장에서 대학연구팀이 연구를 해서

이 프로그램을 마련한 거라 하니 나름 이해가 되었습니다.

우리네 트럭에 그려진 그림도 기실 가짜 눈 아닌가요? 애교에 가깝다고 할까요.

실제로 가짜 눈 그림에 신경과민이 되는 것은 그보다 우리 생활 속에 깊고, 널리 설치된 CCTV, 진짜 눈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벌써 십여 년 전에도 우리가 하루 동안 찍히는 CCTV가 80회를 넘는다는 기사가 있었으니, 코로나로 촘촘해진 지금은 휠씬 더 많겠지요.

어느 대학 동아리에서 바로 이러한 사생활의 심각한 노출에 대해 우려하며 ‘코로나가 끝나면 안면 인식 방어용 마스크를 써야할 판’이라고 했는데, 격하게 공감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사회는 어디까지, 어느 수준까지 진보라는 이름으로 변화할까요?

인류의 달리기 본능을 다룬 책에서 보니 흥미 있는 대목이 나왔습니다.

오래 전부터 맨발로 살아온 인류가 자신보다 더 빠른 동물들을

아무런 도구 없이 어떻게 사냥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계속 따라다니며 동물들을 지치게 만들어 사냥했다고 합니다.

까마득한 인류의 조상들이 이러했을 진데, 우리 후손들은 어디까지 진화하며 나아갈지

문득 아득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 소의 해라서 연초 인사말로 우보(牛步) 같은 한해를 걷자고 인사했던 기억이 나는데,

벌서 3월말로 들어갑니다.

앞서 얘기한 가짜 눈 그림이나 CCTV는 말할 것도 없이

발전해 나가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려니,

우리가 믿을 것은 우리뿐이라는 생각에 더 외로워지고

시각을 포함한 오감의 지나친 혹사로 더 피곤한 일상의 나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봄날을 제대로 느끼며,

여유 있게 소걸음으로 세상을 걸어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