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1일 미셀 오바마 여사가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인 지미 팰런이 진행하는 ‘투나잇 쇼’에 초대됐다. 백악관에 머물 기간이 채 10일도 안 남은 상황이었다.

팰런이 오바마 여사에게 백악관을 떠나는 소회를 물었다. 그녀는 “떠나는 것이 이렇게 감상적일 줄 몰랐는데 지금도 눈물이 날 것 같다”고 고백하고 오바마 대통령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다.

“당신이 ‘레임덕(lame duck·절름발이 오리)’이 아니라 나만의 ‘실버 폭스(silver fox·은빛 여우)’라는 걸 증명해줘서 고마워요”

그녀가 말한 레임덕은 실권(實權)이 떨어진 권력자, 실버 폭스는 매력적인 노신사를 의미하는 영어 표현이다.

그녀는 굳이 남편을 절름발이 오리인 레임덕이라고 표현했을까. 1월20일 정권을 이양해야 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처지가 꼭 그랬기 때문이다. 재임시절 국민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던 오바마였지만 좋든 싫든 쥐었던 권력을 내려 놓아야하기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국민들의 관심 역시 떠나갈 대통령이 아니라 새 대통령에게 집중됐다.

레임덕은 임기 종료를 앞두고 영향력이 떨어진 공직자의 모습을 기우뚱거리며 걷는 오리의 모습에 빗대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용어다. 주로 미국에서 임기가 끝나는 대통령이 남은 기간 동안 정책집행에 차질이 생길 때 사용한다.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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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힘이 떨어진 권력자의 모습을 왜 하필 수많은 동물 중에 오리에 비유했을까. 지금은 레임덕이라는 말이 주로 정치용어로 사용되지만 원래는 사냥꾼들이 쓰는 말이었다. ‘총에 맞아 절뚝거리며 도망가지만 곧 잡힐 것이기 때문에 탄약을 낭비할 필요가 없는 오리’를 뜻했다. 곧 죽을 오리에 괜히 힘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 말을 영국 증권가에서 먼저 차용해 증권용어로 활용했다. 1700년대 영국 증권가에서 레임덕은 ‘파산 직전에 이른 증권 거래인’을 의미했다. 이후 1860년대부터 정치권에서 본격적으로 레임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정치용어로 정착됐다.

레임덕은 권력의 임기가 끝나 가면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미국은 그 폐해를 줄이기 위해 헌법까지 바꿨다. 당초 11월에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에서 패한 현직 대통령은 다음해 3월 4일까지 재직하도록 규정돼 있었으나 헌법을 바꿔 새 대통령 취임일을 1월 20일로 앞당겼다. 최대한 레임덕 기간을 줄이자는 취지였다.

레임덕이 없을 수는 없을까. 권력자들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수많은 권력자들이 이를 피하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독재국가를 빼놓고 실제로 이에 성공한 권력자는 찾기 힘들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이란 게 허니문 기간을 거쳐 레임덕으로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흐름이다.

새로운 권력이 등장하면 ‘허니문 기간’이라고 정해 일정기간 동안 의회와 언론에서 배려해 준다. 말 그대로 갓 결혼한 부부의 신혼 때처럼 비판하고 헐뜯기보다는 사랑으로 감싸주는 기간이다. 정권을 이양 받은 임기 초반에는 서툴 수밖에 없는 만큼 일단 지켜봐주겠다는 의미다. 보통 취임 후 100일이 관행이다. 누구든 이런 허니문 기간을 거쳐 정권 말년에 레임덕을 겪는 것은 숙명이다.

물론 이론상으로는 레임덕의 반대도 존재한다. ‘레임덕이 없는 대통령’이라는 뜻의 ‘마이티 덕(mighty duck·힘센 오리)’이다. 하지만 상당수 권력자들이 마이티 덕을 추구했다가 오히려 본인뿐 아니라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기곤 했다.

대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우리 국민의 관심도 현 정권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자로 옮아가고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정세균 국무총리 그리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이르기까지, 연일 이들의 행보가 언론에 크게 보도되는 것은 모두 잠재적인 대선경쟁 후보자들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들의 행보는 더 주목을 끌면서 자연스레 이 정권에 대한 관심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설령 지지도가 높거나 정권이 재창출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별반 차이가 없다. 결국은 역사의 뒷켠으로 물러나게 된다.

1년 남은 기간 동안 레임덕에 빠지지 않기 위해 거창한 개혁프로젝트를 내걸기보다는 조속한 코로나19 탈피와 경제 회복에 전력을 기울이는 게 바람직한 방향 아닐까 싶다. ‘취임사는 꿈으로 쓰고 퇴임사는 발자취로 쓴다’고 했는데 이제는 발자취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다.  <편집국총괄 부사장>